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대규모 유상증자 결정 과정에서의 과오를 인정하고,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유상증자 규모를 자본시장 역사상 최대 규모인 3조6000억원에서 2조3000억원으로 줄이고, 나머지 1조3000억원은 계열사 대상 제3자 배정 방식으로 조달한다.
회사는 이번 유상증자를 통해 확보한 자금을 포함, 총 11조원을 방산 및 조선·해양·에너지 분야에 투자해 '초일류 육해공 방산업체'로 도약하겠다는 청사진도 재차 확인했다. 이를 통해 오는 2035년 연간 매출 70조원, 영업이익 10조원을 달성하는 게 목표다.
"부족했던 부분 많았다"
8일 안병철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전략총괄 사장은 서울 중구 한화빌딩에서 설명회를 열고 "증시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유상증자를 하면서 주주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점은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며 사과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달 20일 3조6000억원 유상증자를 결정했지만 일부 주주의 반대에 부딪혔다. 지난해 최대 실적을 기록했음에도 주주에게 손을 벌리는 유증을 시행할 만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비판이었다.
여기에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증자 직전 그룹 계열사인 한화에너지·한화에너지싱가포르·한화임팩트파트너스가 보유한 한화오션 지분 7.3%를 1조3000억원에 인수한 것을 두고 뒷말도 나왔다. 그룹 지배구조 개편에 회삿돈을 쓰고, 미래 투자 자금은 주주에게 손을 벌렸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에 대해 안 사장은 "부족했던 부분이 분명히 많았다"고 시인하며 "많은 소통의 자리를 만들어 이와 같은 논란이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특히 그는 이번 유상증자가 승계 작업과 증여세 절감을 위한 도구가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서도 강력히 부인했다.
안 사장은 "유상증자는 승계, 증여세와 관련 없이 사업적인 목표하에 이사회가 충분히 숙고해 결정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쏟아진 비판에 한 발 물러섰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시장의 오해를 불식시키고 대외적 지지를 얻기 위해 유상증자 계획 변경에 나섰다는 입장이다.
안 사장은 이날 유상증자 변경 배경에 대해 "경영적으로 옳은 길이라도 결국 주주, 시민단체, 정부 지지 없이 밀어붙이는 건 아니라고 봤다"며 주주 가치를 올리는 방법으로 변경하지 않으면 환영받지 못할 것이기에 모두에게 환영받는 방향으로 가자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검토 중인 방안은 유상증자 규모를 줄이고, 한화에너지·한화임팩트파트너스·한화에너지싱가폴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제3자배정 유상증자에 1조3000억원을 투입하는 방안이다.

비상장사인 한화에너지는 김 회장의 △장남 김동관 50% △차남 김동원 25% △3남 김동선 25% 등이 지분을 가진 개인회사다. 한화임팩트파트너스는 한화에너지의 손자회사, 한화에너지싱가포르는 한화에너지의 해외법인이다.
신주 인수 시 한화에너지는 할인 없이 참여하고, 기존 주주들은 15% 할인된 가격으로 유상증자에 응하도록 했다.
안 사장은 "결국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한화오션 주식을 매입하면서 한화에너지에 지급했던 1조3000억원을 다시 되돌리는 방식"이라며 "주주 보호를 위해 대주주들은 락업(보호예수) 1년도 걸었다"고 부연했다.
사측은 이번 계획 변경을 통해 기존 주주들의 지분 가치가 희석된다는 우려도 불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안 사장은 "3조6000억원 유증 시 희석 가치는 13% 정도인데 유증 규모를 2조3000억원으로 줄이면 대략 9% 정도로 떨어지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날 오전 이를 골자로 한 정정신고서를 제출했고, 현재 이사회가 법률적 논의에 돌입한 상태다. 제3자 배정 유증 결의는 주주배정 유증의 1차 발행가액이 확정되는 이달 21일 이후 이뤄질 전망이다.

2035년 '영업익 10조' 회사로
이날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대규모 유증 당위성의 근거로 중장기 투자 계획도 함께 발표했다. 방산 분야뿐 아니라 조선∙해양∙에너지 분야에 11조원의 선제적인 투자를 통해 미래를 선도하는 '글로벌 탑 티어'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목표다.
주주배정 유증과 제3자 배정 유증을 통해 확보한 3조6000억원 외 나머지 7조5000억원은 향후 확보할 영업이익과 회사채 발행, 차입 등으로 조달한다.
구체적으로 주주배정 유증으로 확보한 2조3000억원은 유럽 및 사우디의 방산 JV(합작법인) 지분 투자와 미국 현지 스마트 팩토리 구축을 통한 생산 능력 구축 등에 활용할 계획이다.
제3자 배정 유증을 통해 확보한 1조3001억원은 무인기 시장 진입을 위한 양산 시설 구축 등과 해외 조선업체 지분 투자 등에 투입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올해 매출 30조원, 영업이익 3조원을 거두고 2035년에는 매출 70조원, 영업이익 10조원까지 달성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안 사장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방산 국가대표라는 자부심을 갖고 사업을 하고 있는데, 이번 유증 과정에서 회사가 성장한 만큼 주주 권익 보호를 위해 노력했느냐에 대한 반성을 뼈저리게 했다"며 "주주 가치 제고를 최고 덕목으로 보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