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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Story]①기촉법, 생명연장의 꿈

  • 2014.04.17(목) 11:04

내년말까지 시한연장..금융당국 상시화 주장
금융권 vs 법조계, 기촉법 `미묘한 시각차`

경기가 어려울 때마다 구조조정, 워크아웃, 법정관리 등 `살벌한` 단어가 신문지면을 장식합니다. 워크아웃을 받던 쌍용건설이 올해 초 법원에 몸을 맡겼고 벽산건설은 파산선고를 받았습니다. STX, 동양 등 대기업들도 금융기관이나 법원의 도움없이는 빚을 갚을 수 없는 처지에 몰렸습니다.

정부는 부실이 터진 뒤 해결하기에는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다며 이럴 때일수록 선제적 구조조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꺼낸 카드가 '기업구조조정 촉진법(이하 기촉법)'의 상시화입니다. 걸러낼 곳은 걸러내고 도와줄 곳은 빨리 도와주자는 건데요. 단지 그 의도만 있는 걸까요?

◇ 3번 살아남은 기촉법

기촉법은 2001년 제정돼 3차례나 연장된 끈질긴 생명력을 갖춘 법입니다. 원래는 한시법이었죠. 처음엔 2005년까지만 적용하기로 했다가 팬택사건이 터지면서 2007년 부활했고 2011년엔 건설사 위기, 올해는 STX·웅진·동양 위기 등을 발판으로 수명을 연장했습니다. 기촉법은 내년 말이면 수명을 다하는데요. 정부는, 정확히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이 법을 상시화해야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 기촉법은 2001년 한시법으로 제정됐다. 이후 3차례의 연장을 거쳐 내년 말까지 효력을 갖는다.(그래픽=한규하 기자)


만약을 대비하자는데 토를 달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하지만 지난주 한국금융학회와 한국금융연구원이 개최한 '기업구조조정 제도 개선방안' 정책심포지움에 가보니 이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날 심포지엄에선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부 판사 2명이 참석해 직접 주제발표를 한 것도 눈에 띄더군요.

 

◇ 닮은듯 다른 기촉법과 도산법

 

구조조정을 하려면 규칙이 있어야합니다. 여럿이 돈을 꿔줬는데 어느 한명만 먼저 돈을 돌려받았다면 다른 채권자(돈을 빌려준 사람)들이 가만있진 않겠죠. 서로 '내 돈 먼저 돌려달라'고 할 것이고 그 순간 채무자(돈을 빌린 사람)는 '배째라' 식으로 빚갚는 걸 포기하고 말겁니다.

이런 일을 예방하기 위해 마련한 법이 기촉법과 '채무자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이하 통합도산법)'입니다. 두 법 모두 빚을 못갚을 기업은 빨리 정리하고, 조금만 도와주면 살아날 수 있는 기업은 신속히 도와줘 빌려준 돈을 갚게 하자는 취지입니다.

기촉법에 의해 시행되는 조치가 기업개선작업입니다. 흔히 워크아웃이라고 하죠. 채권금융기관들이 '당신 기업은 부실해질 가능성이 있어. 우리의 관리를 받아야겠는 걸'이라고 해당기업에 통보하면 기업은 워크아웃을 신청합니다.

기촉법이 금융기관이 주도하는 구조조정이라면 법원에 의해 주도되는 구조조정은 기업회생입니다. 흔히들 법정관리라고 합니다. 워크아웃 대상은 대출이나 지급보증 등 금융기관의 신용공여액 500억원 이상 기업인데 비해 법정관리는 중소기업이나 개인사업자도 신청할 수 있습니다.

◇ 자율성과 속도의 차이

채권금융기관들은 기업과 합의해 워크아웃을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를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은행들이 '더는 당신에게 돈을 빌려줄 수 없고, 빌려간 돈도 갚아'라는 식으로 나오면 기업으로선 버틸 재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삼환기업이나 웅진홀딩스처럼 워크아웃이 아닌 법정관리를 택한 기업도 있지만 상당수 기업은 채권금융기관의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합니다. '당신 워크아웃 대상이야'이라는 말에 기업은 원하든 원치않든 자산을 팔고 부채를 줄이는 작업을 시작해야하는 거죠. 그래서 기업경영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법정관리는 워크아웃에 비해 신청은 자유롭지만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흠이 있습니다. 법정관리는 신청에서부터 법원의 개시결정까지 1개월, 또 개시결정에서 회생계획안이 가결되기까지 1년(추가로 6개월 연장 가능)이 걸릴 수 있습니다. 워크아웃의 경우 기업개선계획이 나오기까지 길어야 4개월인 점에 비춰보면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죠. 다만 법원도 이런 문제점을 인식해 몇년전부터 회생절차 단축에 많은 신경을 쓴다고 합니다. LIG건설의 경우 회생절차 개시후 6개월만에 회생계획이 인가됐다고 하네요.

 

▲ 워크아웃과 법정관리는 판단주체, 대상기업 등에서 차이를 보인다. (그래픽=한규하 기자)


◇ 공격받는 법원

여기까지는 '절차나 시간의 문제지 별 차이는 없잖아'라는 얘기가 나올 수 있습니다. '두 법의 장점을 한데 묶으면 되겠네'라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넘어야할 산이 많습니다. 지난한 입법과정의 문제는 제쳐두더라도 금융기관들과 법조계가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싸늘합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통합도산법은 재산의 유용이나 은닉, 부실경영의 중대한 책임이 있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채무자의 대표자, 곧 기존 경영자를 관리인으로 선임(DIP제도)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경영권 박탈을 우려한 기업들이 법정관리를 회피하려는 걸 줄이고 기존 경영자의 경영 노하우를 활용하자는 취지에서 마련한 규정으로 보입니다.

금융권이 종종 제기하는 문제가 이 부분입니다. 경영부실의 책임을 져야할 오너가 경영권을 지키려고 법정관리를 신청한다는 것이죠.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이 2012년 9월 법정관리신청 직전 웅진홀딩스 대표이사로 취임한 것도 통합도산법의 이 같은 규정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시각이 많았습니다. 윤 회장은 비난여론에 밀려 결국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구요.

◇ 할말없는 금융권

그렇다면 금융기관 주도하에 진행 중인 워크아웃에서 기존 경영자를 교체한 비율은 얼마나 될까요? LG경제연구원이 지난해 11월 낸 보고서를 보면 2006년 이후 워크아웃절차에서 대주주가 변경된 비율은 14.8%라고 합니다. 법정관리 하에서 교체된 비율(11.3%)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오히려 법정관리에선 기존 경영자를 선임할 수 없는 사유를 명시하고 있는데 워크아웃은 어떤 경우에 경영자를 바꾸는지 기준이나 절차가 투명하지 않은 문제가 있습니다. 워크아웃이라고 통합도산법보다 더 낫다는 보장이 없는 것입니다.

 

[Inside Story]②떨치기 힘든 관치의 유혹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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