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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錢의 혈투'…승부사 박현주 회장, ‘미래’마저 삼키다

  • 2015.12.24(목) 14:10

[미래에셋, 대우증권 품다]
2.4조원대 파격적 가격 제시로 경쟁자 허찔러
30년 증권업계 궤적에 밴 승부사 기질 빛발해

산업은행의 대우증권 매각 우선협상대상자 발표를 사흘 앞둔 지난 21일, 승자는 일찌감치 미래에셋증권으로 결정된 상태였다. 심사 평가기준으로 비가격요소인 정성평가(20~30%)가 있다고는 하지만, 가격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보인 미래에셋증권이 새 주인이 될 것이라는 데 어느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박현주(57) 미래에셋그룹 회장 특유의 승부사 기질이 빛을 발한 순간이다. 대우증권 인수전의 성패를 한마디로 '쩐(錢)의 전쟁'으로 개념 짓고 모두가 예상하지 못했던 2조4000억원대의 '통 큰' 베팅을 함으로써, 강력한 경쟁자였던 KB금융지주와 한국투자증권의 의표를 찌른 것이다.

 

▲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

기막힌 반전에서 볼 수 있듯 박 회장은 중요한 시기에 과감한 결단으로 승기를 잡을 줄 아는 타고난 승부사다. 실제로 30년 전 증권업계에 발을 디딘 뒤 입지전적인 인물이 되기까지 박 회장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보면 고비마다 던진 과감한 승부수가 멋지게 맞아떨어졌다. 

 

박 회장은 1958년 광주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 1986년 동양증권(현 유안타증권)에 입사하면서 증권업계에 뛰어 들었다. 입사 직후 3억원의 법인 주문을 따내는 성과를 인정 받아 45일만에 대리로, 또 1년 1개월만에 과장으로 초고속 승진한다.

 

사실 박 회장만큼 증권업계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은 인물도 드물다. 1988년에 동원증권(현 한국투자증권)으로 옮긴 이후엔 3년만에 '국내 최연소 지점장' 타이틀을 달았다. 당시 그의 나이 불과 32세다. 이후 주식약정 규모 전국 1등의 기록을 세웠고, 37세에는 강남본부장을 맡으며 이사로 승진했다. 동원증권 입사 8년만의 임원 승진으로, 30대 젊은 나이에 '기업의 별'을 단 것이다.

 

흔히 박 회장에게는 '샐러리맨의 신화'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하지만 드라마틱함에서 그 보다 더 나은 대체자를 찾기도 힘들다. 박 회장은 승승장구하던 1997년 돌연 회사를 박차고 나온다. 그리곤 미래에셋창업투자(현 미래에셋캐피탈)와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설립한다. 동원증권에서 함께 근무했던 구재상 압구정 지점장(현 케이클라비스투자자문 대표)과 최현만 서초지점장(현 미래에셋생명 수석부회장) 등과 함께 회사를 창업한 것이다.

 

박 회장이 동원증권에서 한창 잘 나갈 때는 외국계 증권사으로부터 10억원의 연봉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에 스카우트 제의를 받기도 했으나 거절했다. 샐러리맨으로 머무르기 보다 오너 경영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창업은 박 회장의 첫번째 승부수였던 셈이다.

 

박 회장이 창업할 때인 1997년 말은 외환위기가 시작되면서 금융 업계 전반이 가라앉던 시기였다. 'IMF 한파'로 기업들이 줄도산하던 어려운 시기에 박 회장은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세운 뒤 이듬해 자신의 이름을 내건 국내 최초의 뮤추얼펀드 '박현주 1호'를 선보였다. 이 펀드는 500억원 한도액이 불과 3시간 만에 마감됐고 수익률은 90%를 넘는 등 소위 '대박'을 터뜨렸다. 시장을 기막히게 읽어내는 탁월한 투자 감각이 위기를 기회로 바뀌놨다.

 

박현주 1호의 선풍적인 인기는 개인 투자자 사이에 간접투자 열풍으로 이어졌고, 이른바 '박현주 신화'가 시작되는 계기가 됐다. 박 회장은 성공을 발판으로 1999년 미래에셋증권을 설립하고 증권업에 진출한데 이어 2005년에는 SK생명(현 미래에셋생명)을 인수, 미래에셋을 증권과 자산운용, 보험사를 갖춘 투자전문그룹으로 도약시켰다. 2007년 야심차게 내놓은 '인사이트펀드'로 두달만에 4조7000억원을 끌어모으기도 했다.

 

해외로도 가장 발 빠르게 움직였다. 박 회장은 2003년에 국내 자산운용사 가운데 처음으로 해외 법인인 미래에셋자산운용 홍콩법인을 설립한데 이어 2006년에 인도, 2008년 미국과 브라질, 2011년엔 캐나다와 호주, 대만에 현지법인을 세웠다. 증권사 역시 홍콩, 베트남, 중국, 미국, 브라질에 각각 진출했다.

 

박 회장은 이번 대우증권 인수를 통해 자기자본 8조원대의 초대형 증권사를 품에 안게 됐다. 이 메가 증권사가 딛게 될 길은 60여년 국내 증권 역사에서 그 어느 누구도 밟아 본적 없는 전대미문의 길이다. 박 회장이 한국 증권업의 '미래(未來)'마저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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