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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두산 사돈家, 그 떠들썩했던 유명세

  • 2016.07.12(화) 13:00

[방계家 사람들] 시즌2 <3>이스트밸리
이건 前 대호건설 회장, 두산가 3세 박용욱 이생 회장 장인
토목공사로 폭풍성장 1990년대 ‘황금기’…1995년 돌연 매각

유명인이 절대 피할 수 없는 것 하나, 바로 세상 사람들의 관심이다. 기업가 집안으로 1990년대 말 사회적 ‘빅 이슈’와 맞물려 이 집안만큼 세간의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집안도 드물지 싶다. 그것도 2대(代)에 걸쳐서 말이다. 혼맥은 또 얼마나 화려한가. 고(故) 박두병(1910~1973년) 두산 초대회장의 6남 1녀 중 막내아들을 사위로 맞고, 공군참모총장 출신으로 제5공화국(1981~1988년)에서 국방부장관과 내무부장관 등을 지낸 고 주영복(1927~2005년) 전(前) 장관과도 사돈이다.

과연 유명세를 떨치던 집안이었나 싶을 정도로, 이 가문은 2000년대 들어서는 조금씩, 정말 눈에 띄지 않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일이 뜸해졌다. 이런 집안 내력에 호기심이 동했다. 그래서 드라마틱했던 유명세를 좇아 두산의 사돈집 ‘이스트밸리’의 현재를 들춰봤다. 당초 예상했던 그림을 벗어나 반전이 숨어 있었다. 대외적인 활동에 쿨(cool)하고, 조용했을 뿐이다. 물류·골프·철강 부문의 중견그룹을 일으킨, 여전히 경영자의 자취가 진하게 묻어나 있었다. 두산 박(朴)씨 집안 3세(世) 박용욱(56) 이생(利生) 회장의 처갓집이 ‘제2의 가업’을 일궈내기까지의 풍성한 이야기를 따라가 봤다.

 


이건(79) 현 이스트밸리 명예회장은 1970년 11월 아세아건업을 인수했다. 30대 초반 무렵이다. 1980~90년대 ‘대호건설(大垀建設)’로 잘 알려진 중견건설업체다. 이 명예회장을 칭할 때 지금의 낯선(?) ‘이스트밸리 명예회장’ 보다 종종 ‘전(前) 대호건설 회장’이란 직함이 붙는 것은 이 때문이다. 동국대 정치학과 출신으로 부평산업 부사장, 대한자동차 이사 등을 지낸 이 명예회장은 아세아건업 인수와 함께 대표로 취임, 본격적으로 사업가의 길을 걷게 된다.

아세아건업은 이 명예회장을 주인으로 맞고 나서 짧은 기간 불같이 일어났다. 미(美)8군 군납 공사와 한국군 관계 공사 위주의 토목공사가 기반이 됐다. 제2의 도약을 선언하며 대호건설로 간판까지 바꿔 단 게 인수후 10년째 되던 해인 1980년 1월이다. 이후로도 거침이 없었다. 서해안 개발, 대규모 간척지 조성, 농공단지 건설 등 정부 발주의 관급 토목, 건축공사를 수주하며 폭풍성장했다.

대호건설은 마침내 이 명예회장이 인수한 지 20년 뒤인 1990년 전후로 ‘황금시대’를 맞았다. 1990년 1월에는 증시에 상장까지 했다. 1994년에 이르러서는 도급순위가 85위로 뛰었고, 매출 968억원으로 1000억원을 넘보며 ‘황금시대’라는 별칭이 괜히 붙은 게 아님을 증명하는 중이었다.
 
계열 확장에도 열을 올리며 명성을 더욱 굳혀나갔다. 1988년 7월 냉장·냉동창고 운영업체 세미냉장을 설립해 불을 지폈다. 이어 케이블TV가 출범한 1994년 1월에는 서울 서초 케이블TV(서초종합유선방송이 세워진 게 1994년 2월이다) 운영권을 따내 업계에 막강한 힘을 과시했다. 또 1994년 1월과 12월에 대호헬스랜드와 설계감리회사인 대호엔지니어링을 차렸고, 이듬해 10월에는 CD롬 타이틀 제작사인 삼우컴앤컴을 세웠다. 이 같은 업종 다변화로 1995년 7월에 가서는 사명에서 아예 ‘건설’을 떼고 ‘대호’로 바꾸기까지 했다. 탄탄대로였다.
 
이 명예회장은 분명 더 높은 곳을 바라봤을 터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예상했던 자리에 이 명예회장은 착석하지 않았다. 파죽지세는 온데간데없이 1995년 12월 돌연 대호건설을 320억원(지분 33%)을 받고 수산중공업에 매각하며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이변이나 다름없을 법하다. (수산중공업에 인수된 대호건설은 2004년 1월 최종 부도로 5월에 가서는 상장폐지되는 비운을 겪는다.)

하지만 이 시기는 YS정부(1993~1998년) 중반기인 1995년 10월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이 터지며 이 명예회장이 다른 재벌 총수들과 함께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때다. 뒤를 이어 2년 뒤인 YS정부 말기인 1997년 초, 고 김영삼(1927~2015)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57)씨의 비리사건 이른바, ‘김현철 게이트’가 터졌을 때 이슈 메이커로 등장하는 이가 이 명예회장의 맏아들 이성호(54) 현 이스트밸리 회장이다. 이 회장은 김현철씨 비리사건 수사 때 가장 중요한 참고인이었다.
 


기세가 예전만큼 대단하지는 않다. 하지만 초행길이 아닌 터라 이곳까지 올라온 모습은 마치 늘 오던 길을 걷는 듯하다. 그래서 과거를 재현하듯 2010년 전후로 속도감 있게 전개되고 있는 계열 확장도 낯설지 않다. 2세 경영자 이성호 회장은 이렇듯 대를 이어 중견그룹을 일궈냈고 견실한 사업가의 길을 걷고 있다.

대호건설에 이은 제2의 가업을 일구는데 초석이 된 냉장·냉동창고 운영업체 세미냉장(현 이스트밸리)과 경기도 광주 곤지암의 명문 골프장 ‘이스트밸리CC’를 소유한 청남관광을 비롯해 이스트밸리스틸, 이스트밸리티아이, 세명투자개발, 이브이인터내셔널 등이 ‘이스트밸리 패밀리’들의 면면이다. [‘②소리 소문 없이…2代 이성호의 욕망’ 편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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