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이 금리 인상에 속도를 내며 한국과 미국 간 금리 역전이 머잖았다. 시장에서는 연내 미국 금리가 한국보다 높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미 금리 역전은 고금리 자산을 찾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금 이탈로 이어질 수 있어 국내 주식시장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이 예상된다. 다만 과거와는 여건이 달라 매도 강도가 가파르진 않을 것이란 데 무게가 실린다.
◇ 과거 금리 역전 시 외국인 자금 유출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 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하면서 미국의 기준 금리는 0.75~1.00%로 높아졌다. 한국의 기준 금리는 8개월째 1.25%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한-미 금리 차가 0.25%포인트까지 좁혀진 것이다.
올해 미국이 연 3회 정도 금리 인상을 예고하고 있고, 한국은행의 경우 경기부진 우려 등으로 연내 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지 않아 연말께 한-미 금리가 역전될 것으로 보인다. 한-미 금리 역전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대개는 신흥국이 선진국보다 경제성장률이 높은 편이기 때문에 금리도 높게 유지한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경제 사정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당연히 한국 주식시장 입장에서도 달가운 일이 아니다. 저금리 국가에서 자금을 빌려 고금리 자산에 투자하는 캐리 트레이딩 자금이 빠져나갈 경우 외국인 자금 이탈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거 한-미 금리 차가 역전됐던 당시 한국 주식시장에서는 대규모 외국인 매도가 발생했다. 지난 2005년 8월부터 2006년 8월까지 약 1년간 미국 기준금리가 한국 기준금리를 웃돈 동안 외국인은 코스피 시장에서 14조6000억원을 순매도했다.
대만과 멕시코 등 다른 신흥국들 역시 대내외 금리 역전 당시 급격한 투자자금 유출을 겪으면서 자산가격이 급락하는 등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특히 최근 국내 주식시장이 모처럼 상승하고 있고, 외국인 매수를 바탕으로 역사적 고점 돌파까지 노리는 상황이어서 한미 금리 역전 가능성이 자금 이탈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신한금융투자는 "한-미 금리 역전을 앞두고 있는 데다, 달러-원 환율도 하락하고 있어 외국인의 매수세가 약화할 가능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완전히 달라진 여건…엑소더스 없다
다만, 과거와는 여건이 달라 외국인 자금이 쉽게 빠져나가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맞서고 있다. 과거에는 공격적인 금리 인상이 이뤄지며 속도가 상당히 빨랐고, 한국 시장의 펀더멘털도 부진했다는 설명이다. 오태동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경기나 원화가치, 한국 기업 실적 모두 2006년에 비해 매우 양호하다"며 "(외국인 자금 이탈은) 발생 가능성이 낮은 역풍"이라고 판단했다.
LG경제연구원도 한-미간 금리 역전으로 자본유출 우려가 제기되지만 금융시장이나 경제에 혼란을 야기할 정도의 대규모 자본유출이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자본 유출입은 금리 차 외에 환율에 대한 예상에 의해 크게 좌우되는데 높은 국가 신용등급이나 외환 건전성을 감안하면 대규모 외화유출을 야기할 정도로 일방적인 원화절하 기대가 형성되지 않을 것"으로 분석했다.
아울러 장기 투자 차원에서 유입된 자금의 경우 소폭의 금리 역전으로 쉽게 빠져나가지 않으며 미국보다 한국 금리가 낮아지더라도 유럽 국가보다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지 않더라도 미국의 금리인상이 계속될 경우 자연스럽게 시중금리가 상승하면서 금리역전에 따른 파급 효과도 완화될 전망이다. 10년 만기 국채수익률의 경우 이미 지난해 4월부터 한국이 미국보다 더 낮은 상태로, 장기 금리가 역전된 후 단기 금리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세계적인 상황을 봐도 단순히 금리 역전이 자본유출로 이어지진 않고 있다. 현재 유럽지역은 미국보다 금리가 낮은 상태지만 금리 역전으로 인한 혼란은 없었다. 대만, 헝가리, 싱가포르 등도 현재 미국보다 금리가 낮지만, 대규모 자본유출이나 통화가치 급락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고 LG경제연구원은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