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을 이길 투자 전략이 있을까. 여윳돈으로 투자에 나서보려 해도 주변에서 접할 수 있는 것들은 시총 상위 종목을 조합한 펀드가 대부분이다. 증시가 고꾸라지면 수익률도 고꾸라진다. 남들 울 때 웃기가 쉽지 않다. 이 물음에 힌트를 주겠다는 자산운용업체가 등장했다.
지난 8일 이건규 전 VIP자산운용 CIO와 정규봉 전 신영증권 리서치센터 팀장이 트러스톤멀티자산운용 지분 100% 전량을 각각 50%씩 전량 인수했다. 약 일주일 뒤 이 전 CIO와 정 전 팀장은 트러스톤멀티자산운용 사명을 르네상스자산운용으로 바꾸고 공동 대표이사에 올랐다.
이 대표는 VIP자산운용에서 약 17년을 일해왔다. 교원공제와 사학연금 등 연기금 운용에 주력했다. 최근에는 '투자의 가치'라는 책을 써 대외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정 대표는 신영증권에서 16년을 일했다. 스몰캡 애널리스트로 시작해 리서치센터 팀장을 지냈다.
이 두 인물은 어떻게 함께하게 됐으며 왜 회사를 인수했을까. 힌트는 VIP자산운용과 신영증권이 가치투자를 기치로 삼은 회사라는 데 있다. 비즈니스워치는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에서 새 간판을 내건 르네상스자산운용 사무실에서 이 대표와 정 대표를 만났다.
◇ 가치투자는 '모태신앙'
두 사람이 만난 것은 10년 전이다. 당시 정 대표는 오랜 기간 자산운용사 창업을 계획해 온 애널리스트. 파트너를 찾고 싶었다. 우연히 업무 관계로 동갑내기 자산운용사 본부장을 만났다. 첫 만남에 확신이 들었다. 이 사람이다 싶었다. 이 대표였다.
"자산운용이라는 게 남의 고민을 대신해 주는 일입니다.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재주보다 철학을 팔아야 하는 것이죠. 이 대표는 원하는 걸 다 갖추고 있었습니다. 미팅 후 저녁식사를 제안했고, 2차로 간 횟집에서 창업을 할 테니 대표이사를 맡아달라고 했습니다"
이 대표는 황당했다. "미팅 이후 두번째 만난 자리에서 그런 제안을 받았으니까요. 생각해 보겠다고 대충 얼버무렸습니다. 성격이 보수적이라 덥석 물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자주 만나 얘기를 해보니 신뢰가 쌓였고 허투루 던진 말이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며칠 뒤 그러자고 했습니다."
두 사람이 의기투합한 배경에는 가치투자라는 투자철학이 있었다. 가치투자는 저평가된 기업 주식을 사뒀다가 기업이 성장하면서 주가가 오르면 되팔아 수익을 남기는 전략이다. 두 사람이 몸담았던 신영과 VIP 두 곳은 모두 가치투자를 기치로 삼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저희는 VIP와 신영에서 20년 가까이 일해왔습니다. 업계에 흔한 이직 한번 없었습니다. 가치투자 철학이 모태신앙인 셈이죠. 사실 싸고 좋은 걸 산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진리이기도 합니다. 경력과 함께 종목 선정 능력도 생겼고요."
◇ 시장을 이기는 투자방법은?
두 전문가는 가치투자 전략이 앞으로 더 주목받을 거라고 확신했다. 패시브 펀드는 글로벌 성장 둔화와 함께 침체기에 접어드는 반면, 액티브 펀드는 여전히 높은 수익 추구가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사모펀드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는 점도 긍정적이다.
정 대표는 "과거에는 상장사는 자산운용사가 담당하고 비상장사는 벤처캐피탈이 맡는다는 구별이 있었지만 이제는 이런 구별이 없어지고 있다"며 "예전 애널리스트들은 자기 분야만 공부하면 됐는데 지금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정 대표는 이어 "'1호 펀드' 상당 부분을 비상장주식과 메자닌으로 가져갈 계획"이라며 "비상장주식 투자 매력은 남들이 보지 못한 보석 같은 종목을 싼 가격에 투자해서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것인데 여기에는 운용사의 종목 발굴 능력이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종목 발굴에는 공부가 필요하기 마련. 무엇보다 애정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물리적 시간이 확보되고 기업 방문부터 업계 모임까지 두루 섭렵하게 된다는 것. 이 과정에서 업계 환경 변화를 짚어내고 회사발 정보를 검증하는 노력은 필수다.
"지수가 언제 오르고 내릴지 예측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외환위기 금융위기 때도 오르는 종목은 올랐습니다. 시장에서는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성장이 확신으로 이어질 때까지 검증을 반복해야 합니다. 하락장에서 매수할 수 있는 용기도 여기에서 나옵니다"
인터뷰 말미에서 이 대표와 정 대표는 주식 투자 자체가 재미있다고 했다. 새로운 추세를 보고 관찰하는 것이 즐겁고, 예측한 것이 맞아떨어질 때는 즐거움을 넘어 희열을 느낀다고도 했다. 정 대표는 "기업 규모보다는 철학을 지켜나가면서 고객들에게 높은 수익률을 제공하고 기업과 상생하는 자산운용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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