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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초유 마이너스 유가, '웃돈 주고 파는 상황'

  • 2020.04.21(화) 13:18

넘치는 재고에 실물 인도 회피, 시장 기현상
실물경기 압박 요인, 정유·화학석유엔 '희비'

코로나19 사태로 금융시장에 전례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국제 원자재 시장에선 유가가 마이너스(-) 가격으로 떨어지는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배럴당 가격이 -37달러로 거래를 마감했다.

미국에서 석유 1배럴(1배럴은 158.9리터)을 사면 돈을 내는 대신 오히려 우리 돈 약 4만5000원을 돌려 받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코로나19 사태로 원유 수요가 급감한 상황에서 재고가 넘쳐나는 가운데 원유를 가져가 마땅히 저장할만한 곳이 없자 실물 인도를 피하기 위해 가격이 폭락하면서 시장에서 발생한 기현상이다.

◇ 웃돈 주고 원유 팔아야 하는 기현상

이날 5월 인도분 WTI는 전 거래일(17일) 종가 18.27달러에서 55.9달러 급락한 -37.63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WTI 가격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공식 통계 이후 처음 나온 현상이다.

유가 폭락 배경으로는 우선 코로나19 사태로 유가 하락 압력이 이어지는 가운데 선물 만기(21일) 효과가 겹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원유 같은 상품의 선물 계약은 매달 만기가 있다. WTI는 매달 25일에서 3영업일 전(前)이다. 이번 5월물 만기는 4월21일, 즉 내일이다.

만기를 앞두고 선물 투자자는 ①반대 매매로 포지션을 상쇄하거나 ②원유 현물을 그대로 인수하거나 ③차월물(6월)로 상품을 바꿀 수 있다. 이 가운데 대부분 투자자가 6월물로 갈아타는 이른바 '롤오버(Roll-Over)'를 선택하다보니 시장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왜곡됐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의 원유 수요가 급감으로 인해 저장 공간이 크게 부족해지면서 원유 현물 인수에 대한 극단적인 거부 현상으로 풀이된다. '생산자들이 웃돈을 주고라도 원유를 판매해야 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된 것이 유가 악재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원유 재고 증가세는 매우 가파른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 여파로 경제 활동이 크게 위축되면서 정제시설 가동률이 떨어지고 석유제품 수요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원유 실물 인수가 이뤄지는 오클라호마 쿠싱(Cushing) 지역에선 저장 용량의 69%가 차 있는 상황이다. 지금의 속도로 재고가 증가하면 두달 안에 가득 차버릴 것으로 예상된다.

아무리 유가가 싸더라도 저장할 곳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미국 경제 매체에선 "수영장에라도 원유를 넣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

◇ 추가 하락 가능성 높아

전문가들은 6월물 유가 선물 가격도 하락세를 면치 못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이날 보고서를 통해 "20일 6월물 WTI 선물은 18% 하락에 그쳤으나 추가 하락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투자증권은 "차기 OPEC+ 회의는 6월초로 예정되어 있다"라며 "4월 회의 당시 5월 감산 시행후 6월 OPEC+ 회의에서 추가 감산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는데 6월 전까지 긴급회의가 열릴 가능성은 낮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상초유의 마이너스 유가는 유가 폭락은 가뜩이나 코로나19 사태로 세계 각국의 디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진 상황에서 실물 경기를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하이투자증권은 이날 보고서를 내고 "유가폭락은 기업과 일부 원자재 국가의 신용 리스크 불안 및 디플레이션 리스크 확대 요인"이라며 "초저유가가 지속된다면 미국의 셰일오일회사 등 원유사들의 연쇄 부도 위험이 커질 수 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당장 국가 부도 현상이 발생하지는 않겠지만 이머징 시장에 대한 불안감이 커질 수 있으며 글로벌 자금의 위험 자산 회피 심리를 더욱 자극 할 것으로 봤다.

◇ 업종 따라 실적 희비

유가 폭락은 100% 원유를 수입하는 우리 경제에 긍정적 요인이지만 업종에 따라 희비가 엇릴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정유 회사들은 마이너스 정제 마진이 이어지면서 실적 악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안나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날 보고서에서 "현재 정유회사들은 정유 공장 가동률을 85% 미만으로 낮추고, 정기보수 앞당기기와 희망 퇴직 시행 등을 검토하고 있다"라며 "그러나 유가 급락, 수요 감소로 인한 불확실성이 더 커진 상황에서 마이너스 정제마진, 대규모 재고평가손실이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반면 유가 급락으로 인해 석유화학산업의 경쟁력은 구조적으로 개선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황유식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날 보고서에서 "NCC 중심의 석유화학 산업은 2015년 저유가시 경험했던 호황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으로 향상 가능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NCC란 원유를 정제해 만든 나프타를 분해하는 공정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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