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조5542억원.
얼마 전 국내 기업공개(IPO) 역사를 완전히 새로 쓴 카카오게임즈 공모주 청약에 몰린 돈입니다. 단 이틀간의 청약 접수 기간에 국내 2위 완성차업체 기아자동차가 지난해 국내외에서 벌어들인 매출액과 비슷한 대규모 자금이 한꺼번에 들어왔습니다.
쉽사리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이 엄청난 돈뭉치는 어디서 온 것일까요? 카카오게임즈의 IPO 공동주관사인 한국투자증권과 삼성증권, 인수회사로 참여한 KB증권의 청약 고객 분석 자료를 보면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 청약 주도한 건 30~40대…진짜 큰손은 60~70대
연령별로는 30~40대가 청약을 주도했습니다. 이번 공모주 청약에서 가장 많은 물량을 배정받은 한국투자증권을 통해 청약한 고객 가운데 30대가 28.8%, 40대가 27.4%로 전체의 56.2%에 달했죠.
KB증권을 통해서도 40대(28%)와 30대(22%)가 가장 많이 참여했습니다. 삼성증권을 통한 청약에서는 40대(28%)가 가장 많았고 30대와 50대가 각각 24%로 비슷했습니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는 청년층들이 이른바 공모주 로또를 꿈꾸고 '빚투(빚내서 주식 투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에 나섰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전체 청약금액만 놓고 보면 50대의 참여가 두드러졌습니다. 한국투자증권을 통한 청약자금 중 50대가 넣은 자금이 27%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을 비롯해 삼성증권(28%)과 KB증권(30%) 모두 50대의 자금 유입이 가장 많았습니다.
진정한 큰손의 면모를 보인 것은 60~70대입니다. 한국투자증권의 청약 고객 중 70대 이상의 1인당 평균 청약금액은 3억 8000만원으로 30대(7700만원)와 40대(1억 3200만원)보다 3~5배가량 많았습니다. 60대도 평균 2억 7300만원을 넣은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삼성증권 역시 70대의 1인당 평균 청약금액이 3억 7000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60대가 2억 8000만원으로 뒤를 이었습니다. 60~70대 자금의 경우 은퇴 후 노후자산 관리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게 증권사들의 설명입니다.
또 하나 주목할만한 것은 처음으로 공모주 청약 시장에 뛰어든 투자자들의 비율인데요. 한국투자증권은 자사를 통해 공모주 청약에 참여한 고객 중 그간 청약 경험이 없는 고객 비율이 전체의 69.7%에 이른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IPO 대박을 터뜨린 SK바이오팜의 사례가 적잖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 환불되는 58조는 어디로…증권사는 붙잡기 '안간힘'
역대급 공모주 청약 결과 이상으로 시장의 관심을 모으는 것은 청약 참여자들에게 되돌려주는 58조원이 어디로 가느냐입니다. 카카오게임즈의 일반 공모 물량은 320만주로 총 768억원가량 됩니다. 전체 청약 증거금 중 주식을 배정받지 못한 58조4774억원은 4일 청약자 계좌로 환불되죠.
이들 자금 중 상당수는 은행 예·적금 해지나 신용대출로 마련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대출 자금은 곧바로 상환될 공산이 크고 나머지 자금의 경우 머니마켓펀드(MMF) 같은 단기 투자상품으로 가거나 또 다른 잠재적 대박 공모주로 유입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금융투자업계의 관측입니다.
최근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하며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가 당장 다음 달 상장을 준비 중입니다. 713만주를 공모하는 빅히트엔터의 공모 예정 금액은 최대 9626억원으로 SK바이오팜과 카카오게임즈를 능가합니다. 카카오게임즈 청약 때 들어왔던 자금이 내달 5~6일로 예정된 빅히트엔터 청약으로 곧바로 이동할 수도 있다는 전망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동학개미운동'으로 큰 재미를 본 증권사들은 환불되는 거액의 자금을 자사로 끌어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카카오게임즈 IPO 주관사로 나선 한국투자증권과 삼성증권이 대표적입니다.
한국투자증권은 카카오게임즈 공모주 청약 고객을 대상으로 펀드나 랩어카운트, 주가연계증권(ELS) 등에 가입하면 금액에 따라 최대 3만원 상당의 모바일 상품권을 지급하는 이벤트를 진행합니다. 삼성증권 역시 카카오게임즈 공모주 청약 고객이 돌려받은 돈을 자사를 통해 국내 주식과 해외주식, 금융상품 등에 각각 일정 금액 이상 투자하면 추첨을 통해 최대 100만원의 상품권을 증정합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은행 예·적금 금리가 워낙 낮은데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로 부동산 투자도 녹록지 않은 만큼 공모주 투자를 위해 들어온 자금이 증시 밖으로 대거 빠져나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증권사들로선 자금 유치를 위한 호기를 맞았다"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