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타 금융업권 대비 월등한 수익률로 시장의 이목을 끌었던 증권사 퇴직연금이 다시 '쥐꼬리' 수준으로 돌아가는 모양새다.
업권 특성상 원리금 비보장형이 많아 작년 증시 호황 효과를 톡톡히 누린 덕분인데, 연초 다시 지수가 급락하면서 수익률도 같이 추락한 것이다.
1분기 평균 수익률 0.59%…신영증권 등은 '마이너스'
13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개인형퇴직연금(IRP)을 취급하는 증권사 14곳의 올해 1분기 평균 수익률은 0.59%에 불과했다. 이는 전년 동기 10.12%에 비하면 곤두박질 수준이다.
이들 증권사 절반 이상이 0%대 수익률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나마 신한금융투자(1.78%)와 미래에셋증권(1.12%), NH투자증권(1.10%), 대신증권(1.06%)이 1%대 수익률을 수성한 정도다. 신영증권(-2.09%) 등 일부 증권사는 심지어 마이너스(-) 수익률을 냈다. 물론 1분기 코스피가 7% 이상 급락한 것을 감안하면 나름의 선방이다.
IRP 유형별로는 지난해 증권사 IRP 수익률을 견인했던 원리금 비보장형에서 도리어 -0.05%로 손실이 났다. 그나마 원리금 보장형이 1.37%의 수익률로 평균치를 가까스로 끌어올렸다.
증권사 대부분이 적립금을 원리금 보장형과 비보장형에 고루 나눠 운용하고 있지만 비보장형 비중이 월등히 많은 증권사도 있다. 대표적으로 신영증권은 적립금의 80%가량을 비보장으로 운용해 이 유형 IRP 수익률이 -2.57%로 증권사 IRP 가운데 가장 저조했다.
증시 부진에 장점이 '독'…디폴트옵션 등 성장성은 多
증권사 IRP의 가장 큰 경쟁력은 원금보장이 안되지만 수익률을 높게 가져갈 수 있다는 점이다. 은행 등 타 금융업권에서와 달리 상장지수펀드(ETF)를 IRP 계좌에서 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증권사 IRP 가입자는 ETF로 특정 지수나 업종, 종목, 테마에 분산 투자할 수 있다.
또한 해외주식을 편입한 ETF를 증권사 IRP 계좌에서 운용하면 추후 연금수령때 세율 3.3~5.5%인 연금소득세만 내면 된다. 이런 장점 덕분에 증권사 IRP 적립금은 올해 1분기말 기준 13조9773억원으로 1년 만에 1.5배 이상 불어났다.
하지만 최근 국내·외를 막론하고 증시가 살얼음판을 걸으면서 이같은 장점은 독이 되고 있다. 업계에서도 몸을 사리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박성진 신한금융투자 퇴직연금사업본부장은 "시중은행보다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저축은행 정기예금 등으로 상품 제공을 확대하고, 수익률 변동성도 최소화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IRP 시장의 성장세는 가파르다. 작년말 기준 IRP 적립금 자산규모는 총 46조4900억원으로, 최근 3년간 연평균 34% 이상 성장했다. 증권사로서는 결코 놓칠 수 없는 블루오션이다.
올 하반기 도입되는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도 호재이긴 마찬가지다. 디폴트옵션은 IRP 가입자의 명확한 투자 의사 결정이 없더라도 사업자인 금융회사가 자산을 운용할 수 있는 제도다.
정민기 삼성증권 연구원은 "퇴직연금 시장은 현재 국내 증권사 입장에서 고객 기반을 확보하고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유망한 시장이 될 것"이라며 "디폴트옵션 도입으로 증권사의 비교우위는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