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LG에너지솔루션(LG엔솔) 상장 이후 줄곧 '사자'를 외치면서 5조원어치 넘게 장바구니에 담았던 연기금이 지난달 돌연 '팔자'로 돌아섰다. 연기금이 LG엔솔에 대해 월간 기준으로 매도 우위를 보인 건 처음이다. LG엔솔 주가가 가파르게 반등하자 차익 실현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대신 낙폭 과대 성장주로 눈길을 돌리는 모습이다. 네이버, 카카오, 아모레퍼시픽 등을 차곡차곡 사 모으고 있다. 다만 증권가에서 성장주에 대한 투자심리 회복에는 다소 시간이 필요하다고 보는 만큼 연기금의 '줍줍'이 지속될지는 불확실하다.
가파른 반등, 차익 실현 기회로
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민연금을 포함한 연기금은 지난 3분기 LG엔솔을 1조263억원어치 순매수했다. 지난 1월부터 10월까지 6월 단 한 달을 제외하고 LG엔솔은 늘 연기금 순매수 1위 종목 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연기금이 그간 LG엔솔을 공격적으로 매수해온 가장 큰 이유는 '큰 덩치' 때문이다. LG엔솔은 70조원에 달하는 시가총액으로 코스피시장에 입성했고 '대장주' 삼성전자에 이어 단숨에 시총 2위로 올라섰다.
연기금은 대부분 자금을 코스피200 등 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 운용전략으로 굴린다. 벤치마크(BM)와 괴리율이 벌어지는 상황을 막기 위해선 포트폴리오에서 대형주 비중을 크게 가져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최근 연기금의 LG엔솔 사랑은 눈에 띄게 시들해진 모습이다. 지난달 연기금은 LG엔솔을 1471억원어치 순매도했다. 이는 최근 주가 반등에 따른 차익실현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LG엔솔의 주가는 지난 7월 30만원대까지 하락했다가 2차전지 대장주로서의 펀더멘털을 인정받으며 다시 오름세를 탔다. 10월 말 50만원을 돌파한 데 이어 11월에는 60만원 선마저 뚫었다.
약세장 속에서도 LG엔솔의 주가가 빛난 이유는 실적 덕분이다. LG엔솔의 3분기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90% 증가한 7조6780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5220억원으로 흑자전환을 이루며 시장 기대치를 훌쩍 뛰어넘었다.
하반기 프리미엄 전기차 모델에 들어가는 중대형 전기차 배터리 출하량이 대폭 증가한 가운데 상반기 원재료 비용 상승이 선제적으로 반영된 덕분이다. 사측은 실적 발표 후 진행한 컨퍼런스콜을 통해 연간 예상 매출액을 종전 대비 상향 조정하며 향후 실적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낙폭 큰 성장주로 갈아탔다
LG엔솔이 떠난 빈자리는 성장주들이 메우고 있다. 11월 연기금 순매수 상위 종목에선 LG엔솔이 빠진 대신 대신 엔씨소프트(692억원), 네이버(602억원), 카카오(245억원) 등이 새롭게 이름을 올렸다. 아울러 포스코홀딩스(957억원), 아모레퍼시픽(714억원), LG생활건강(535억원)도 연기금의 '픽'을 받았다.
이들은 모두 주가 낙폭이 평균 대비 컸던 종목이다. 포스코홀딩스를 제외하고 주가는 대체로 부진하다. 지난해 한때 40만원대에 이르던 네이버 주가는 10만원대로 추락했다. 카카오 역시 17만원으로 고점을 찍은 뒤 지금은 5만원대로 미끄러졌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한때 코스피 시총 순위 3위 자리를 두고 치열한 접전을 벌였지만 현재는 각각 9, 11위로 내려앉은 상태다. 금리 인상 충격으로 글로벌 빅테크주의 기업 가치가 급감한 여파가 컸다.
화장품 대장주인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역시 가장 큰 시장이었던 중국의 경기 둔화로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 아모레퍼시픽은 작년 고점(30만원) 대비 56% 빠진 13만원대를 기록 중이다. 황제주로 불리던 LG생활건강은 62% 하락해 현 주가가 60만원대에 머물고 있다.
장시간 눌려있던 이들 주가는 근래 소폭 반등한 모습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12월 금리 인상 속도 조절을 시사하면서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출 필요가 있다"며 "그 시점이 이르면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안재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주가는 빠졌으나 네이버와 카카오가 가진 플랫폼 영향력은 여전하다"며 "내년 하반기부터 경기가 회복할 것으로 기대되는 가운데 금리 인상이 상반기 중 마무리되면 선행지표인 성장주 주가가 먼저 움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시장 일각에선 성장주의 추세적 회복이 요원하다는 시각도 있다. 거시경제적 불안 요인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만큼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소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연준이 향후 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하더라도 실질금리가 상당 기간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면 한계기업들은 자연스레 퇴출되고 구조조정과 인수합병이 활발해질 가능성이 크다"며 "성장주보다는 가치주 중심으로 회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주가가 많이 빠지면서 (성장주) 포트폴리오 비중이 많이 낮아지다보니 연기금이 (성장주를) 기계적으로 채워넣는 것일 수도 있다"면서 "성장주에 대한 투자심리가 전환되기 위한 조건인 중국 시장의 회복이나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전쟁의 휴전, 인플레이션 진정 등 세박자가 모두 갖춰질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