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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공시가격 신뢰 흔들, 뭘 믿고 세금내나?

  • 2019.04.18(목) 15:51

공시가격 오류 대부분 '비교표준주택 오류'
"지자체 실수·재량권" 설명에 "얼렁뚱땅 조사·조치" 비판
공시가격 신뢰 떨어지고 주택소유자 혼란만 가중

서울 강남구의 A개별주택은 올해 공시가격이 25억3000만원으로 산정됐다. 인근에 특성이 유사한 표준주택 B(올해 공시가격 18억1000만원)를 쓰지 않고 접근성이나 시세가 차이나는 다른 표준주택 C(올해 공시가격 15억9000만원)를 선정했다.(국토부가 제시한 오류 실제 사례)

지자체는 개별주택의 공시가격을 산정할 때 해당 주택과 유사한 이용가치를 지니는 비교표준주택(한국감정원이 산정) 선정 후 주택가격비준표(비교항목 22개)를 적용해 가격을 산정한다. 주택가격비준표는 ▲토지요인으로 용도지역, 도시계획시설, 토지용도, 도로, 형상, 지세, 접근성 등 12개 ▲건물요인으로 구조, 부대설비, 옥탑, 지하, 부속건물 등 10개로 돼 있다.

앞의 사례는 '비교표준주택 선정 오류'에 해당한다. 최근 국토부 조사 결과 지자체에서 잘못 산정한 개별주택 공시가격 456가구 가운데 90%가 '비교표준주택 선정 오류'다.

해당 지자체가 비교표준주택을 선정할 때 가까운 곳에 있는 표준주택을 쓰지 않고 굳이 먼 곳에 있는 싼 표준주택을 끌어와서 썼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면 이는 결국 개별주택의 공시가격을 낮추기 위한 것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의도적 낮추기' 의혹 여전한데, 실수?

국토부는 의도성 여부에 대해 "비교표준주택은 개별주택과 성격이 유사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 원칙"이라면서도 "어느 정도 지자체 재량권한이 있기는 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객관적으로 (산정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곳을 지적했다"는 등의 모호한 답변만 내놨다. 또한 "의도적으로 낮췄다고  판단하지 않는다"고 했고 "산정 과정의 실수"라고도 했다.

하지만 합리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면 이는 고의성에 가까운게 아니냐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물론 간혹 먼 곳에 있는 표준주택을 끌어와서 쓰는 경우도 있다. 가령 가까운 곳에 있는 B표준이 A개별주택과 유사성이 떨어져 불가피하게 먼 곳에 있는 C표준을 끌어다 쓰는 경우다.

이 경우엔 합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아울러 이는 추후에 해당지역에 추가로 유사성이 있는 D라는 표준주택을 새로 선정하는 논의로 이어질 수 있다. 이도저도 아니라면 의도성 여부를 의심해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국토부는 이달초 대대적으로 조사 및 감사를 단행할 것처럼 발표했다. 하지만 이같은 가장 근본적인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은채 '실수' 혹은 '오류'라는 얘기만 되풀이했다.

삼성동 주택가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오류 0.5%에 불과? 다른 17개 자치구는?

서울의 8개 자치구 전체 9만가구 가운데 456가구에서 오류가 나왔다. 0.5%에 불과하다고 괜찮다고 얘기할 수 있는 문제일까. 표준주택과 개별주택이 산정기관이 다르고 지자체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기준을 적용받는다면 세금을 내야 하는 납세자(주택소유자) 입장에서는 0.1% 오류라도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정부가 앞서 제시한 사례는 표준주택 공시가격이 개별주택 공시가격보다 낮았지만 반대인 경우를 생각해보자. 가령 A표준이 20억원이고 B표준이 15억원인 경우 C개별주택이 가까운 A를 쓰지 않고 B를 써서 18억원이 됐다면 어떨까. A표준의 주택소유자는 표준주택이라는 이유로 C개별주택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낸다는 얘기다.

실제 문제의 발단이 됐듯 표준주택의 상승률이 개별주택 상승률보다 더 높게 나타나면서 표준주택 소유자들이 더 높은 상승률로 세금 부담이 더 커진 셈이 됐다.

게다가 정부는 서울의 8개구에 대해서만 전수조사했다. 표준과 개별주택간 변동률 차이가 3%포인트를 초과해 크게 나타난 곳에 대해서만 했다는 설명이다. 나머지 지역은 평균 변동률 격차가 크지 않아서 뺐다는 것이다.

형평성 논란도 불가피

각 지자체의 변동률 격차는 어디까지나 평균값이다. 그 안에서도 격차가 큰 곳들이 있고 오류 발생 가능성 또한 있다. 국토부 역시 "나머지 서울 17개 구에 대해서도 고가주택이 다수 분포돼 일부 오류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8개구의 456가구는 공시가격 상승이 불가피하다. 그렇다면 조사대상에서 빠진 나머지 지역은 상대적으로 혜택을 보게 되는 꼴이다. 형평성 논란이 제기된다.

국토부는 "전산시스템 분석 등을 통해 오류가 의심되는 건은 지자체에 통보해 감정원의 지원을 받아 재검토하도록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지만 '고양이에 생선을 맡긴 격'이다.

보다 면밀한 조사와 근본적인 원인을 찾기보다는 '얼렁뚱땅' 책임을 모면하고자 넘어가려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국토부는 감정원이 검증과정에서 거르지 못한 점을 집중감사하고 있다고 하지만 감정원은 감정원대로 지자체는 지자체대로 잘잘못을 따져봐야 하는 것은 당연한 순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도 "이번 국토부의 조사는 책임은 묻지 않고 조정을 요청하는 것에 머물러 시늉뿐인 조사"라고 비판했다. 경실련은 "공시가격은 토지공개념의 뿌리이자 60여가지 행정목적으로 사용되는 매우 중요한 가격"이라며 "일선 공무원이 마음대로 조작한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런 식으로는 공시가격에 대한 신뢰는 물론이고 공시가격 현실화 정책에도 힘을 싣기 어려워진다. 불신과 의혹만 더 쌓여갈 뿐이다. 국민들은 뭘 믿고 세금을 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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