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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종교계에 쫄아서 과세 못했다"

  • 2014.11.26(수) 14:39

정부·야당 '과세' 한 목소리..여당은 '미지근'
종교단체별 반응 제각각.."근로장려금 달라"

"조세형평성 차원에서 반드시 종교인 소득세 과세해야 합니다. 이번에도 못하면 (국회가) 또 종교계에 쫄아 가지고 못 했다는 얘기가 되는 겁니다."-박원석 의원(정의당)

 

"기획재정부가 입법안을 가져와서 완전히 여당을 물 먹이는 것 아니야 지금? 여당과 종교단체 편 갈라 놓을 일 있어?"-나성린 의원(새누리당)

 

 

종교인 과세 논쟁이 연말 국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국세청 개청 초기였던 1968년부터 논의가 시작된 이후, 46년째 제자리 걸음이다. 세금을 내야 할 종교인들은 거세게 반발했고, 정치권은 선거를 의식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줘야만 했다.

 

지난해 말 다시 정부가 용기를 냈다. 기획재정부는 종교인 소득에 과세 근거를 신설하는 시행령 개정안을 내고, 국회의 동의를 구했다. 그러나 번번이 미루고 또 미루다가 어느새 1년이 흘렀다. 과연 누가 종교인 과세에 찬성하고, 또 반대하는 이는 누구일까.

 

◇ 정부·야당 "빨리 과세하자"

 

당초 정부의 과세 방안은 2015년부터 종교인 소득에 세금을 물리는 내용이었다. 종교인의 소득을 일종의 '사례금'으로 분류해 기타소득으로 과세하고, 80%의 필요경비를 인정한다. 소득이 100만원이라면 20만원(20%)에 대해서만 과세 표준으로 삼고, 여기에 20%의 세율을 적용해 4만원만 세금을 납부하는 방식이다.

 

근로자의 소득세율이 8~38%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종교인의 실효세율은 4%에 불과한 '파격 할인' 혜택이었다. 2011년 연말정산을 기준으로 연봉 1억원인 근로소득자는 연간 741만원의 소득세를 내야하지만, 같은 연봉의 종교인이 낼 세금은 115만원(16%)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됐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도 정부가 가져온 종교인 과세 원칙에 대해 대부분 긍정적인 입장이었다. 지난해 12월과 올해 2월에 열린 조세소위원회에서는 새누리당 김광림·류성걸·안종범·이만우·이한성 의원, 야당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 윤호중·이용섭·정성호·조정식·홍종학·박원석(정의당) 의원 등 전원이 종교인 과세에 찬성표를 던졌다.

 

당시 기획재정부 이석준 2차관(현 미래창조과학부 1차관)과 김낙회 세제실장(현 관세청장)도 국회에 가급적 빨리 처리해달라고 요청했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 처리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위기감도 조성됐지만, 법안의 통과를 앞두고 보이지 않는 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 2014년 2월14일 여의도 국회에서 나성린 소위원장 주재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에서 종교인 과세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 나성린 "신중하게 일단 미루자"

 

종교인 과세에 대해 유독 신중한 자세를 취한 인물이 있었다. 바로 조세소위원장인 새누리당 나성린 의원(부산진구갑)이었다. 이미 과세에 반대하는 종교인들로부터 적잖이 시달렸던 터라 다소 피곤한 모습이었다.

 

나성린(소위원장): "이렇게 하면 안 돼? 과세를 2년 유예하고 그동안 과세 방안을 종교단체와 적극적으로 논의하겠다고 하면 안 될까?"

 

김낙회(세제실장): "저희가 1월부터 6월까지 각 종교단체들을 다 방문했습니다. 제일 어려움이 있는 기독교계도 직접 두 번 갔습니다."

 

나성린(소위원장): "그런데 그 사람들이 자꾸 내 방으로 찾아와? 내 방으로 찾아오고, 내 사무실로 찾아오고?"

 

박원석(소위원): "위원장님! 여기 위원들이 거의 다 반대를 안 하시는데, 그냥 하시지요."

 

나성린(소위원장): "지금 다 반대 안 하는 거예요? 윤호중, 정성호 의원 두 분 기독교 아닌가?"

 

조정식(소위원): "원칙적으로 도입하는 것으로 하고 결론은 다음에 냅시다."

 

나성린(소위원장): "도입하는 방향에 대해서는 소위원장 빼고 대부분 동의하는데, 시행시기를 늦추는 방안과 과세 방안에 대해 한번 더 논의합시다."

 

이석준(2차관): "저희는 가급적 빨리 했으면 좋겠습니다."

 

나성린(소위원장): "그런데 나는 가급적 신중하게 했으면 좋겠다."

 

조세소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지 않는 이상 종교인 과세는 '처리 불가'였다. 지난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처리하자는 약속도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 물거품이 됐고, 그렇게 1년이 지났다. 현재 조세소위원회는 다시 종교인 과세를 논의하고 있지만, 통과 여부는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다.

 

▲ 2014년 11월24일 여의도 국회에서 강석훈 소위원장 주재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에서 종교인 과세에 대해 다시 논의하고 있다.

 

◇ 천주교·불교 '찬성'…기독교 '일부 반대'

 

종교계에서는 과세에 대한 반응이 제각각이다. 천주교와 불교는 종교인 소득세 과세에 대해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세금을 내겠다는 입장이다. 기독교 중에서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와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자발적으로 세금을 내고 있다고 정부 측은 밝혔다.

 

이들을 제외한 기독교단체들 중 상당수는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국세청이 종교단체에 대해 세무 간섭에 나설 경우 '종교 탄압'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가 제시한 '기타소득'을 '종교인 소득'으로 바꿔 달라는 요청도 있다. 이왕 세금을 내려면 명예롭게 납부하고 싶다는 것이 종교인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영세한 종교인들이 근로장려금을 받으려면 기타소득이 아니라 근로 형태의 소득이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나성린 의원에 따르면 목사 가운데 80%가 월소득 100만원 이하라서 근로장려금을 받을 대상에 포함된다. 고소득 종교인은 소득세를 내는 대신, 저소득자는 근로장려금을 받자는 논리다. 이 경우 종교인들은 스스로 '근로자'의 범주에 들어가야 하는 모순이 생긴다.

 

기재부에 따르면 종교인 과세 대상은 1만5000명, 연간 세수입은 200억원 내외로 추산됐다. 근로소득세의 경우 직장인 1500만명이 총 20조원을 내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종교인 과세 규모는 0.1% 수준에 불과하다. 대다수 국민의 조세형평성을 챙겨야 할 국회가 유독 종교인 과세에 대해 눈치만 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좀처럼 합의가 되지 않는 종교인 과세 논쟁을 두고 한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원하는 단체만 하는 것은 제도가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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