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3위 위탁개발생산기업(CDMO) 우시앱텍이 결국 미국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3년여에 걸친 미·중 바이오 갈등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면서 글로벌 제약·바이오 업계의 공급망 재편이 본격화될 전망이 나온다.
미 국방부는 지난 9일 우시앱텍을 '1260H 목록'(중국 군수업체 명단)에 추가했다. 국방부는 우시앱텍이 중국 국무원 산하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SASAC)와 국방과학기술산업국(SASTIND), 인민해방군(PLA)과 간접적으로 연관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명단 등재로 우시앱텍의 미국 시장에서의 입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발효된 바이오시큐어법은 1260H 목록에 오른 기업을 '우려 생명공학 기업'으로 분류하고, 미국 연방 자금이 투입된 사업에서 해당 기업의 장비나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제한한다.
규제 대상 기업 명단에 등재되자 우시앱텍은 즉각 반발했다. 회사가 고객·파트너에게 보낸 공개 서한에서 "중국 군이나 정부 기관이 소유·통제·제휴한 기업이 아니며, 군에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지난해 미국 정부 규제기관 검사 50건 이상과 수백 건의 고객 감사를 통과했으며 중대한 지적 사항이 없었다고도 강조했다. 회사 측은 "이 잘못된 지정을 바로잡기 위해 가능한 모든 구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했다.
2년 반만에 칼 빼든 美 국방부
우시앱텍이 미국 정부의 타깃이 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4년 1월 바이오시큐어법이 처음 발의될 때부터 우시앱텍은 명시적 제재 대상 5개사 중 하나였다.
당시 미국 바이오테크 기업의 79%가 중국 위탁생산업체와 계약을 맺고 있었고, 우시앱텍 하나만으로도 미국에서 유통되는 의약품의 4분의 1 생산에 관여하고 있었다. 사실상 미국 의약품 공급망의 핵심 축이었던 셈이다.
2024년 당시 국방수권법(NDAA·매년 미국 국방 예산과 정책을 결정하는 연방법)을 통해 제재 조치가 검토됐지만, 미국 제약사들의 반발로 제재는 한 차례 미뤄졌다.
결국 지난해 12월 NDAA에 포함돼 통과됐지만, 타협의 산물로 특정 기업을 직접 명시하는 대신 1260H 목록 등재 기업을 제재 대상으로 연동하는 우회 방식을 택했다. 이번 국방부의 1260H 목록 업데이트로 우시앱텍은 본격적인 제재에 직면했다.
제조에서 투자·임상까지…전방위 압박
미국의 중국 바이오 견제는 우시앱텍 한 곳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 2일에는 미 하원에서 공화당·민주당이 합작한 '바이오테크 투자 국가안보법(BINSA)가 발의됐다.
업계에서는 화이자·BMS의 100억달러 규모 중국 빅딜이 직접적 계기가 됐다. BINSA는 지난해 말 발효된 COINS법을 개정해 바이오테크를 규제 대상 섹터에 추가하는 방식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중국 기업과의 라이선싱 딜·합작투자·지분 투자까지 재무부와 국방부의 동시 심사를 받게 된다.
미국은 전방위로 중국 바이오의 진출을 압박하고 있다. 바이오시큐어법으로 CDMO 제조를 옥죄고, BINSA로 라이선싱·투자를 감시하며, FDA의 중국 임상 데이터 수용 문제까지 도마 위에 올라있다.
다만 반발도 만만치 않다. 업계 일각에선 바이오테크는 AI·반도체와 달리 글로벌 협력을 기반으로 하는 산업이라며, 중국 견제가 오히려 미국 신약 개발을 저해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中 CDMO, 단기 영향 제한적…재편되는 글로벌 공급망
이번 목록 등재가 우시앱텍에 즉각적 타격을 입히는 것은 아니다. 명단 등재 이전에 체결된 계약에는 2031년까지 5년 유예 조항이 적용된다.
제프리스는 대형 제약사들이 비용 효율성을 이유로 당분간 중국산 서비스를 선호할 것이라며 단기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우시앱텍도 올해 1분기 매출이 28% 증가한 데 힘입어 연간 매출 전망을 78억달러(약 10조5000억~10조8000억원)로 유지하고 있다.
다만 중장기적으로 중국 CDMO의 미국 시장 공략은 더뎌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들 입장에서 우시앱텍과 미국 정부를 동시에 고객으로 두기가 갈수록 부담스러워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바이오시큐어법 논의가 본격화된 2024년부터 글로벌 제약사들은 조용히 발을 빼기 시작했다. 생명과학 컨설팅사 LEK의 조사에 따르면 당시 생명과학 기업의 26%가 중국 파트너와의 관계를 끊겠다고 밝혔고, 16%는 앞으로 비중국 파트너만 고려하겠다고 했다.
우시앱텍도 이런 흐름을 의식한 듯 미국 내 생산 거점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 델라웨어에 제조단지를 올해 말 가동할 예정이며 내년엔 제조단지 추가 확장도 검토하고 있다.
빈자리 기회 될까…한국·인도 CDMO에겐 '기회'
공급망 재편의 수혜는 한국과 인도 CDMO 업체들에게 기회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국 투자은행 제프리스는 우시앱텍의 블랙리스트 등재가 인도 소분자·펩타이드 제조 분야에 이번 규제가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 평가했다. 제프리스에 따르면 인도 위탁연구개발생산(CRO) 시장은 2030년까지 69억달러(약 10조3500억원) 규모까지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에서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등 대형 CDMO 기업들이 글로벌 생산 역량과 탄탄한 트랙레코드를 앞세워 반사이익을 노릴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온다.
삼일PwC경영연구원은 지난해 3월 발간한 '미·중 무역분쟁의 또 다른 분야, 제약·바이오 산업' 보고서에서 바이오시큐어법 시행 이후 압도적인 생산능력과 글로벌 GMP 역량을 갖춘 국내 대형 CDMO사들이 직간접적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이번 우시앱텍의 블랙리스트 등재로 그 전망이 현실화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