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자타 공인 한국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이다. 그에게는 늘 '최초'라는 단어가 뒤따른다. 35년 전 연봉 1500만원의 증권사 직원으로 출발해 최연소 증권사 지점장과 30대 임원 타이틀을 뒤로하고 마흔이 채 되지 않은 젊은 나이에 홀로서기에 나서 국내 최초 전문 자산운용사를 설립했다. 이후 국내 최초 뮤추얼 펀드와 적립식 펀드를 만들어 간접투자 불모지였던 한국 자본시장에 펀드 열풍을 일으켰다. 인사이트펀드 사태로 롤러코스터를 타면서도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걷겠다'는 도전과 혁신의 신념을 꿋꿋이 지키며 해외 진출에 앞장섰고 2015년에는 증권업계 전통의 강호 대우증권을 인수·합병해 미래에셋을 일약 국내 굴지의 전문 금융투자그룹으로 키워냈다.
최근 서학개미들의 압도적인 '원픽'인 테슬라를 이미 수년 전 투자 대상으로 추천하는 등 투자에 있어 누구보다 '촉'이 좋기로 유명한 박 회장은 대우증권 인수 직후인 2016년 초부터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수많은 투자자들로부터 궁금증을 자아냈다. 그런 그가 얼마 전 미래에셋대우 유튜브 채널인 스마트머니에 '유선생(유튜브 선생님)'으로 깜짝 등장해 전기차와 배터리, 바이오 등 근래 가장 주목받는 산업·기업, 금융상품에 대한 투자 전략부터 증시 전망, 투자 철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견들을 한꺼번에 쏟아내면서 투자자들을 놀라게 했다. 5년 만에 대중 앞에 나서기까지 새로운 투자 아이디어와 노하우로 단단히 무장했을 박 회장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그의 남다른 재테크 전략을 한 수 배워보고자 한다.
◇ 가치주·성장주로 나누기보다 혁신하는 기업인지를 판단하라
금융투자업계에선 흔히 주식을 분류할 때 현재 실적이나 자산 규모 대비 기업 가치가 저평가된 주식을 '가치주', 현재 기업 가치나 실적보다 향후 성장 가능성이 큰 주식을 '성장주'로 구분한다.
그러나 박 회장은 가치주와 성장주 대신 혁신하는 기업이냐, 혁신하지 않는 기업이냐로 판단했다. 그는 "과거 대우증권 인수 이후 한 언론 인터뷰에서 투자자들에게 아마존과 텐센트, 테슬라를 사게 하겠다고 했었다"며 "(이들 종목이 각광을 받으면서) 혹자는 종목을 잘 찍은 게 아니냐라고 하지만 당시 이야기의 핵심은 종목이 아닌 혁신하는 기업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런 혁신의 대표격으로는 전기차 시대를 연 테슬라를 지목했다. 박 회장은 "대우증권을 인수할 때만 해도 테슬라가 망할 것이냐 안 망할 것이냐를 두고 시장에서 갑론을박이 있었다"며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대다수 사람들이 테슬라의 혁신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테슬라처럼 혁신하는 기업의 주가수익비율(PER)은 높을 수밖에 없다"며 "PER의 개념은 미래가 아닌 과거에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주식시장의 일반적인 지표로 혁신 기업을 평가해선 안된다는 의미다.
산업 중에선 배터리 산업의 혁신성에 대해 특히 높이 평가했다. 그는 미국 서부 개척 시대에 황금을 쫓던 '골드러시'를 예로 들며 "당시 정작 돈을 벌었던 것은 인(Inn·술집을 겸한 여관)이나 청바지 제조업과 같은 후방산업이었다"며 "애플의 참전으로 경쟁이 치열해지는 자율주행 전기차 시장의 패권 싸움과 상관없이 배터리 산업은 앞으로도 안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주식 투자할 땐 타이밍보단 산업 트렌드를 주목하라
주식 투자에 있어선 지수를 보고 매매 타이밍을 잡는데 애쓰는 것보다 산업의 장기 트렌드를 읽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견해를 내비쳤다. 박 회장은 "타이밍을 사는 건 신의 영역인데다 트렌드가 좋은 산업은 경기와 크게 상관없다"면서 "바텀업(Bottom UP·상향식) 관점에서 바라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근래 성장세에 불이 붙은 클라우드컴퓨팅과 반도체, 인공지능(AI), 배터리, 전기차, 바이오 등은 무슨 주식을 사느냐와 상관없이 투자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부연 설명도 곁들였다.
그중에서도 바이오의 성장 트렌드를 눈여겨봤다. 그는 "전 세계 70억명이 넘는 인구가 고령화되고 있는 만큼 바이오·헬스케어 분야는 성장할 수밖에 없다"며 "갑작스러운 변화가 아니라 꾸준히 변화한다는 측면에서 글로벌 바이오 섹터는 중위험군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당장 국내 바이오 산업만 해도 얼마 전까지 미개척 분야였으나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로직스 등이 도전정신을 갖고 뛰어들면서 자생적으로 시장이 만들어진 뒤 발전하고 있고 중국 역시 근래 바이오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세계적인 수준에 근접해 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박 회장은 "바이오 산업의 성장성에 대해선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특정 종목을 콕 집어 예측하는 것은 투자자는 물론 본인 역시 매우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바이오 산업이나 기업에 투자할 때는 리스크를 헤지(회피) 할 수 있는 상장지수펀드(ETF)를 활용하는 게 좋다"고 했다.
◇ 업종·종목 막론하고 '우량주 장기 투자'가 무조건 정답
그가 이번 유튜브 방송 출연에서 개인적인 의견을 가감 없이 쏟아낸 산업군은 반도체와 클라우드, 전기차(배터리 포함), 그린에너지, 이커머스·게임, 바이오 등 6개 업종이다. 이들 업종에 대한 기본적인 투자 방식은 모두 동일하다. 바로 '우량주 장기 투자'.
박 회장은 "모든 업종에서 주식 투자의 정답은 대표 우량주에 대한 장기 투자"라며 "이는 퇴직연금에서 가장 적절한 방법"이라고 했다. 그는 "주식 투자에선 누구나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다"며 "주식에 대해 너무 확신하지 말고 우량주 장기 투자 원칙을 지키면서 적절히 분산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함께 유튜브 방송에 출연한 미래에셋대우 리서치센터 애널리스트들에게도 이와 관련해 당부의 말을 전했다. 그는 "애널리스트들이 특정 종목에 대해 100% 정확한 전망은 못하더라도 트렌드는 대부분 맞출 수 있다고 본다"며 "투자자들이 성장 산업 내 우량주를 선별하는 데 도움을 주는 차원에서 소명감을 갖고 대표주 2~3개, 나머지는 ETF를 추천하는 식으로 접근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 쿠팡 보면 미래에셋 연상…플랫폼 기업의 금융업 직접 진출은 '글쎄'
최근 소위 가장 핫한 업종과 기업에 대한 박 회장의 의견도 흥미롭다. 우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활약 중인 반도체 분야와 관련해 AI 산업 확대와 더불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쪽에 큰 시장이 열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클라우드에 대해선 매년 20%씩 성장하는 산업이라고 높이 평가하면서 국내에선 네이버의 클라우드 성장세를 주목하라고 했다.
이커머스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네이버와 더불어 '한국의 아마존'을 지향하는 쿠팡을 여러 차례 언급하면서 관심을 드러냈다. 박 회장은 "쿠팡이 아마존과 비슷한 전략을 가져갈 수 있는 것은 그만한 통찰력이 있기 때문"이라며 "쿠팡이 빨리 기업공개(IPO)에 나섰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쿠팡의 성장에 있어) 미국이나 글로벌 시장만큼 한국 이커머스 시장이 커질지가 관건"이라면서도 "그런 요인을 떠나 쿠팡의 전략은 대단히 인상적"이라고 평가했다. 쿠팡을 이야기하면서 미래에셋 창업 초기를 회상하기도 했다. 박 회장은 "미래에셋이 해외 진출에 도전할 때 다들 말도 안 되는 일을 한다고 부정적인 시선을 보냈지만 현재 미래에셋이 해외에서 모은 펀드 자금만 해도 65조원에 이른다"고 웃음 지었다.
이커머스 시장의 강자 중 하나인 알리바바와 같은 대형 온라인 플랫폼 기업들의 직접적인 금융업 진출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내비쳤다. 그는 "금융업의 결제 기능은 사회의 중심축"이라며 "플랫폼 기업들이 금융업까지 하게 되면 쏠림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런 점에서 중국 정부가 알리바바의 금융 자회사인 앤트그룹의 상장을 중단시킨 것은 적절한 조치였다는 판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