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 충분하다"vs "역대급 공급 절벽 온다"
정부와 민간이 '주택 공급'과 관련해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놨습니다. 심지어 같은 날(18일) 말이죠. 윤석열 정부는 10개월 만에 부동산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주택 공급이 충분한 상황임을 강조했고요. 반면 한국부동산개발협회는 공급 부족이 역대급이라면서 '주거 불안정 심화'까지도 내다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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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에선 "주택공급 골든타임…규제 원위치해야"(7월18일)
참 신기합니다. 엄연히 객관적으로 수치화되는 공급에 대한 진단이 왜 이렇게까지 차이가 나는 걸까요. 그 중심엔 '통계 차이'가 있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통계를 보는 방법'이 달랐죠. 특히 부동산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서울' 공급량을 보는 기준이 달랐습니다.
국토교통부는 서울시의 통계를 인용해 공급이 충분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서울시는 지난 3월 '서울시 아파트 입주예정물량 지도(2월 말 기준)'를 통해 2024년 3만7897가구, 2025년 4만8329가구의 입주가 예정돼 있다고 집계했는데요. 전문가들이 '안정적인 공급량'이라고 보는 연간 4만~5만가구 수준이죠.
그럼 충분한 거 아니냐고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종의 '착시' 효과가 있습니다. 서울시 집계 물량엔 후분양, 청년안심주택, 도시형생활주택 등도 포함되는데요. 이중 청년안심주택, 도시형생활주택은 '아파트'라는 범주에 넣기엔 모호하거든요.
옛 역세권청년주택 유형인 청년안심주택은 청년·신혼부부를 대상으로 공급하는 임대주택인데요. 대상이 한정적인 데다 평형이 작아 아파트 공급 물량으로 포함하기엔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도시형생활주택 역시 아파트와는 다른 유형이고요.
더군다나 올해 물량엔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단지인 '올림픽파크포레온'이 포함됐는데요. 1만2032가구로 서울 전체 입주 예정 물량의 31.7%에 달하는 보기 드문 대규모 단지죠. 이 단지를 제외하면 올해 입주 예정 물량은 2만5865가구에 그칩니다. 입주 물량이 서울 전역에 고르게 있지 않다는 얘깁니다.
이와 달리 한국부동산원과 부동산R114는 아파트만 집계했습니다. 서울시 통계 수치보다 훨씬 적습니다. 부동산R114가 입주자모집공고를 기준으로 입주 예정 물량을 집계하고, 모집공고를 내지 않은 '나홀로' 단지 등 30가구 미만 공동주택에 대한 정보는 부동산원이 집계해 종합한 통계인데요.
이들이 집계한 올해 서울 입주 예정 물량은 2만8664가구, 2025년은 3만3165가구입니다. 서울시 수치에 비하면 2024년은 75.6%, 2025년은 64.9% 수준에 불과한데요. 다만 추후 후분양 단지의 입주자모집공고가 나면 예정 물량이 늘어날 전망입니다.
윤지해 부동산R114 팀장은 "부동산R114 자료엔 후분양 등이 포함되지 않았는데 래미안원펜타스 등 후분양 단지들이 올 하반기 또는 내년에 입주자 모집공고를 내면 입주 물량으로 추가될 수 있다"며 "서울시가 집계한 수치와 부동산R114 수치의 중간 정도를 '진성'으로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고 설명했습니다.
단순 계산했을 때 양 기관 통계치의 평균은 2024년은 3만3280가구, 2025년은 3만9847가구 수준인데요. 공급이 충분하다고 보긴 어렵지만 그렇다고 '위기' 수준도 아닌 듯하죠. 하지만 문제는 2025년 이후입니다.
인허가, 착공 실적이 줄고 있거든요. 통상 인허가 이후 4~5년, 착공 이후 3년 전후로 입주가 시작되는 점을 감안하면 2~3년 뒤부터 공급 부족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국토부에 따르면 올해 5월 전국 누적 인허가 물량은 12만5974가구로 전년 동기 대비 24.1% 감소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임기 내 주택공급 270만 가구'(인허가 기준) 달성을 위해 연내 54만 가구의 주택 인허가 목표치를 세웠는데요.
연말까지 40만 가구 이상의 '폭풍 인허가'가 이뤄지지 않는 한 연간 목표를 채우긴 어려워 보입니다. 지난해 주택 인허가 역시 42만9000가구로 연간 목표치(54만 가구)에 20%가량 못 미쳤고요.
그럼에도 정부는 '공급은 충분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데요. 시장에선 '데자뷰'를 느낍니다. 앞선 정부에서도 공급 위축 우려가 나오고 집값 불안이 있을 때마다 공급 측면에서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내세웠거든요.
문재인 정부 때 역시 정권 초기만 해도 주택 공급이 충분하다고, 그런 만큼 신규 대규모 택지개발도 없다고 공언했습니다. 문 정부 첫 부동산 대책인 2017년 8·2대책 때도, 종합 규제 대책이었던 2019년 12·16대책 때도 당시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공급이 충분하다"고 강조했죠.
하지만 집값 상승세가 꺾이지 않자 임기 1년을 남겨둔 상황에서 역대급 공급 대책을 줄줄이 내놨습니다. 2021년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선 대통령이 "결국 부동산 안정화엔 성공하지 못했다"며 부동산 정책 실패를 인정하기도 했고요.
당시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이 오히려 시장 불안을 자극하고 정책 신뢰도를 떨어트려 '패닉 바잉'을 야기했다는 분석이 나왔는데요. 지금이 바로 '그 때'와 비슷하다고 보는 시각이 나옵니다.
지난주 서울 아파트 주간 아파트 매매가격은 한 주만에 0.28% 올라 약 70개월 만에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고요.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서울 아파트 매매거래량은 연초만 해도 2000건대였으나 점점 늘어 6월엔 7062건을 기록했습니다.
주요 지표에서 상승 조짐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는 '공급이 충분하다'고 강조만 하고 있으니 시장이 불안을 떨치지 못하는 거죠. 이제 본격적으로 집값이 오르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힘을 받는 이유입니다.
현 정부 역시 3기 신도시 등을 들어 "공급에 문제가 없다"고 강조하면서도, 충분한 공급을 위해 내달 '공급 활성화 대책'을 내놓겠다고 하고 있죠.
대책에는 상대적으로 빨리 공급할 수 있는 비아파트 공급을 활성화하고, 3기 신도시 및 신규택지 공급을 앞당기는 방향의 내용이 담길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요. 하지만 전세사기 등으로 비아파트에 기대기엔 한계가 있고요. 사전청약도 폐지되고, 또 사업 취소되는 마당에 택지지구 사업이 조속히 추진될지도 미지수입니다.
민간에선 '골든타임'을 지켜야 한다며 정부의 조속한 대응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시장의 활기를 북돋고 수요자들의 추격 매수를 부추기지 않으려면 적절한 공급 규제 완화,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이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