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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시한부 면세점, 한숨 쉬는 직원들

  • 2016.01.01(금) 09:30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 고용 불안감 팽배
청천벽력 소식에 망연자실 "사회적으로도 손실"

▲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지하 1층에서 롯데면세점 직원들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이학선 기자, 유태영 수습기자] 을미년 끝자락인 지난달(12월) 30일 오후 6시. 서울 지하철 잠실역과 롯데월드타워가 연결되는 지점에 한 남성이 흰색 마스크를 쓴 채 묵묵히 서있었다. 어깨에는 '여성노동자들의 설 자리를 만들어달라'는 피켓을 멨다. 롯데면세점에 입사한지 15년차인 강 아무개(45)씨는 이번이 두 번째 1인 시위라고 했다. 롯데면세점 직원들은 지난 15일부터 고용 안정 보장과 면세점 특허 제도 개선을 이유로 돌아가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강 씨는 가족들이 1인 시위 하는 걸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잠시 주저했다. 눈시울이 촉촉해진 그는 "말하진 않았지만 물어보면 얘기해줄 생각"이라며 "힘내라며 공감하는 분들이 있어 힘들진 않다"고 말했다.

강 씨는 근무지인 월드타워점이 문을 닫으면 일과 양육을 병행하는 여직원들의 어려움이 클 것이라고 걱정했다. 현재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에는 1300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 가운데 900명은 입점 브랜드 소속의 파견 사원이다. 이들은 점포 폐점과 동시에 각 브랜드 정책에 따라 뿔뿔이 흩어질 가능성이 높다.

◇ 부러움 사던 직장, 한순간에…


같은 시각 월드타워점은 활기가 넘쳤다. 구찌, 루이비통 등 유명 브랜드 입구엔 고객이 구입한 물품이 밀봉된 채 수북이 쌓여있었다. 이곳에서 공항 인도장으로 향하는 물품이다. 설화수, 후 등 화장품 매장 계산대 앞에는 5명 이상이 줄지어 기다렸고, 다리품을 팔다가 지친 사람들이 앉을 곳이 없어서 자리를 찾아 서성이는 모습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고객을 응대할 땐 웃음기를 띠던 직원들이 면세점과 관련한 질문을 던지면 표정이 굳었다. 중국 연변출신 이화(33.여)씨도 그랬다. 그는 지난해 1월 입사해 1년의 계약직을 거쳐 올해 1월에 면세점 정규직 직원으로 전환됐다. 최근 김포공항에서 회사 주변으로 이사해 부모님과 함께 산다고 했다.

이 씨가 배치된 시계브랜드 '론진'은 고객의 95%가 중국인이다. 고가 브랜드를 찾는 고객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롯데면세점은 그를 외국인 중 처음으로 정규직으로 채용했다. "연변에서 롯데면세점에 취직했다고 하면 한국에서 현대자동차에 취직한 것만큼 부러워한다"며 입사 당시 주변 분위기를 전했다. 중국에서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건너온 그에게 월드타워점 폐점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으로 다가왔다. 이 씨는 "마음은 지금 당장 시위라도 하고 싶다"고 했다.

 

▲ 12월30일 특허 만료를 하루 앞둔 이날도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 화장품 코너는 고객들로 붐볐다.


◇ 고용불안 직면한 관광산업 첨병들

면세점 직원들은 판매사원의 역할에 그치지 않는다. 그 나라의 이미지와 서비스 수준, 문화를 외국인에게 전달하는 관광산업의 첨병 역할을 한다. 따라서 이들의 고용불안은 관광산업의 질적 후퇴로 연결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

신선아 월드타워점 지배인은 "면세점 직원들은 외국어는 기본이고 관세법, 매너 등을 익혀야 하는 직종"이라며 "특히 면세점을 찾는 고객이 원하는 서비스 수준이 높기 때문에 단순히 외국어만 잘해선 면세점 업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말했다. 힘들게 키운 직원들을 내보낸다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손실이라는 얘기다.

월드타워점에선 해외여행을 앞두고 이곳을 방문한 한국인 고객도 만날 수 있었다. 서울 송파동에 거주하는 문 아무개(60. 여) 씨는 "다른 나라 여러 면세점을 가봤지만 가격, 접근성, 규모 모두 만족스러운 곳은 여기밖에 없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월드타워점 인근에 사는 안 아무개(53. 여)씨도 "면세점은 많으면 많을수록 경쟁이 붙어서 소비자에겐 더 좋다고 생각한다"며 "지금 상황은 소비자의 선택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 6개월 시한부 면세점에 쓴웃음만 

지난달 31일 면세점 특허가 만료된 월드타워점은 올해 6월 안에 문을 닫게 된다. 정부는 폐점하는 면세점의 재고 소진을 위해 최대 2차례 걸쳐 6개월간 영업기간 연장을 허용해 주고 있다. 똑부러진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 한 직원들의 불안감은 계속될 전망이다.

"어제 부모님이 전화로 '어디로 가게 되느냐'고 물으시더군요."

지난해 6월 롯데면세점 정규직으로 전환된 여승빈(28.남) 씨는 "단순서비스직과 면세점 직원은 전혀 다른 분야인데 정부나 정치권에서 너무 쉽게 결정한 것 같다"며 착잡해했다. 그는 "취직 걱정을 덜자마자 더 큰 고민을 떠안게 됐다"며 쓴웃음을 짓고는 손님들 속으로 바삐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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