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그룹(신세계)이 대중주류 시장에 두 번째 도전장을 던졌다. 신세계L&B를 통해 발포주 '레츠 프레시 투데이(레츠)'를 선보였다. 스페인 현지 브루어리 '폰트살렘'과 협업해 라거 맥주에 버금가는 품질을 내세웠다.
신세계는 대중주류 시장 공략에 한 차례 실패한 바 있다. 지난 2016년 제주소주를 인수한 후 '푸른밤'을 선보였지만 부진 끝에 사업을 접었다. 소주 소비의 중심 유흥용 시장 영업망이 부족했고, 제주에서 내륙으로 유통되는 구조에 따른 물류비까지 높아 이중고를 겪었다. 시장을 지배하던 기존 브랜드와의 경쟁도 이겨내지 못했다.
하지만 발포주 시장의 상황은 소주와 다소 다르다. 시장이 형성되지 얼마 되지 않아 주요 브랜드의 시장 지배력이 소주 시장보다 낮다. 유흥용보다는 가정용 시장 비중이 높다. 신세계는 가정용 주류 시장 공략에 필요한 유통망도 이미 갖추고 있다. 소주에 비해 유리한 상황에서 사업을 시작하는 셈이다. 신세계가 두 번째 대중주류 시장 도전에 성공할지 주목된다.
'맥주 같은 발포주' 내놨다
"지난해부터 물가가 오르면서 합리적 가격대의 맥주를 원하는 니즈가 높아지고 있지만, 대중주류 시장에서는 이렇다 할 신제품이 출시되지 않았습니다. 레츠가 이런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는 제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우창균 신세계L&B 대표는 30일 오전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레츠 론칭 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어 "레츠 론칭을 계기로 신세계L&B가 와인 1위 수입·유통사를 넘어, 진정한 주류 유통 전문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신세계L&B는 이날 간담회에서 레츠의 '가성비'를 강조했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맥주급 발포주'로 만들어져 기존 발포주 대비 품질이 높다는 설명이다. 레츠를 '푸에르토산토', '버지미스터' 등 수입 맥주·발포주 제조 브루어리 폰트살렘과 협업해 만든 이유다. 제품 성분 역시 기존 발포주와 차별화했다. 물을 제외한 레츠의 원료 중 보리의 비중은 99%에 달한다. 국내에서 생산·유통되는 일반맥주와 비슷한 수준이다.
레츠의 핵심 목표는 가정용 시장이다. 주요 타깃은 코로나19 장기화와 물가 상승 등으로 가볍게 가성비 주류를 소비하는 '홈술족'이다. 신세계L&B는 이를 겨냥해 TV광고 등 소비자 대상 마케팅을 적극 전개할 예정이다. 마기환 신세계L&B 영업담당상무는 "국산 발포주 시장은 2년간 24% 성장했지만, 시장에 맥주 수준의 제품은 많지 않다"며 "레츠는 맥주보다는 저렴하고, 발포주보다는 맛있는 제품이라는 콘셉트로 소비자를 빠르게 공략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세계L&B, 발포주 '콕' 집은 이유
신세계L&B는 주류 시장 트렌드 변화를 겨냥해 발포주를 선택한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 이후 국내 주류 시장은 빠르게 변화했다. 거듭되는 거리두기로 유흥 시장이 위축됐다. 맥주·소주 등 이 시장 핵심 제품의 입지가 약화됐다. 대신 와인·위스키·수제맥주 등 가정용 시장을 겨냥한 제품이 급성장했다. 업계에서는 코로나19 이전 6:4 수준이었던 유흥용·가정용 주류 시장 비중이 2년 사이 역전됐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발포주는 대중주류 중 유일하게 시장 성장이 기대되는 제품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4년 이후 맥주·희석식소주 등의 출고량은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발포주·와인·위스키 등 기타주류 출고량은 꾸준히 늘었다. 그 결과 지난해 발포주 시장은 360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아직 와인·위스키에 비해 작은 시장이지만 잠재력은 높다는 전망이 많다. 가성비를 중시하고 가벼운 음주를 즐기는 소비자가 늘어나고 있어서다.
발포주는 가격 경쟁에 나서기도 유리한 상품이다. 국내 주세법상 맥주·소주에는 72%의 주세가 부과된다. 발포주는 맥아 함량이 낮아 주세법상 기타 주류로 분류돼 30%의 세율이 적용된다. 때문에 낮은 가격을 책정할 수 있다. 신세계는 이를 기반 삼아 유통 마진을 줄여 시장을 파고드는 전략도 충분히 구사할 수 있다. 대형마트·편의점 등 가정용 주류 유통에 필요한 인프라를 이미 가지고 있어서다.
아울러 국내 발포주 시장에는 신규 브랜드가 파고들 틈도 충분하다. 국내 최초의 발포주는 2017년 하이트진로가 선보인 필라이트다. 이후 오비맥주가 필굿을 출시하면서 양강 구도가 형성·유지되고 있다. 다만 시장의 역사가 짧아 이들 브랜드의 시장 지배력은 타 주류 대비 다소 낮다. 따라서 경쟁력 있는 신제품이 출시된다면 충분히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전망이다.
'고급 발포주', 과연 통할까
레츠에 대한 업계의 반응은 엇갈린다. 출시 자체는 영리한 선택이라는 평가다. 맥주에는 지난해부터 개정 주세법이 적용되고 있다. 이 법은 전년도 물가상승률을 당해 세율에 반영한다. 때문에 올해 맥주의 세금이 크게 올랐고, 원자재가 상승과 맞물려 소비자 가격도 인상됐다. 자연스럽게 발포주가 주목받고 있다. 레츠가 이런 시점에 출시된 만큼 충분히 시장의 관심을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반면 큰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많다. 국내 시장에서 발포주는 맥주의 대체재에 가깝다. 실제로 유통채널이 맥주 프로모션을 전개하면 발포주 매출은 줄어드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가성비를 앞세운 저가 맥주도 발포주의 영역을 잠식하고 있다. 발포주의 맥아 함량을 높여 품질을 개선하기도 어렵다. 맥아 함량이 10%를 넘으면 맥주로 분류돼 세금이 오르고, 가격 경쟁력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발포주의 시장성부터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다.
더불어 레츠 500mL 캔 제품의 소비자 판매가는 경쟁 제품 대비 10%가량 높다. 신세계L&B는 맥주 수준의 품질을 가격 책정의 이유로 설명했다. 하지만 국내 시장에서 발포주의 핵심 경쟁력은 가격이다. 일반맥주 대비 맛이 다소 약하다는 시장의 인식도 남아 있다. 소비자가 더 비싼 가격에 발포주를 마실 이유도 없다. 결국 품질·마케팅을 통해 소비자를 설득하는 것이 관건이라는 분석이다. 이것이 레츠의 성공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가성비 트렌드가 확산되며 발포주가 젊은 소비자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제조 기술 수준도 높아지며 맛이 떨어진다는 인식도 다소 옅어졌지만, 여전히 발포주는 '싸게 마실 수 있는 맥주'에 가깝다"며 "레츠는 후발 주자임에도 가격이 다소 비싸 출시 초기부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품질이 다르다’는 마케팅을 소비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