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수) 그런 건 안 물었으면 좋겠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지난 19일 오후 방문한 서울 동작구 노량진 수산시장. 남1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상인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호객 금지'라는 안내문에도 상인들은 "뭐 보시러 왔냐"며 말을 붙여온다. 1층에서 활어를 팔던 상인 A씨에게 기자 신분을 밝히자 "오염수다 뭐다 다들 어려워 그런 것"이라며 "잘 이야기 하고 싶지 않다"고 손사래를 쳤다.
'방사능 포피아'의 그림자가 노량진수산시장에 드리우고 있다.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초읽기에 들어가면서다. 그동안 코로나19 타격을 받던 상인들은 이제 방사능 우려에 속앓이 중이다. 상인들은 "아직 영향은 없다"며 말을 아끼면서도 "앞으로 방류가 결정되면 수산물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까 걱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수산시장의 그늘
이날 두 시께 시장은 상인들만 북적일 뿐 손님을 찾기 어려웠다. 상인들은 매대 한 구석에서 늦은 점심을 먹으며 혹여 손님이 다녀갈까 복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2층 B상회 주인 이모 씨는 매대의 물기를 닦으며 "여름이라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며 "연일 일본 오염수 뉴스가 나오는데 회를 먹고 싶은 사람이 잘 있겠냐"고 토로했다.
상인들은 일본산이라는 말에 민감했다. 현재 노량진수산시장 도미 등 고급 어류 대부분은 일본에서 들어오고 있다. 매대 곳곳에서 '원산지 일본'이라고 적힌 문구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1층에서 만난 상인 C씨에게 도미의 원산지를 묻자, 그는 당혹스러워하며 "일본산이지만 들여올 때 방사능 검역까지 다 거쳤기 때문에 안심해도 된다"며 "국내산은 살이 너무 없어서 상품성이 떨어지는 편"이라고 대답했다.
코로나19에 시달린 상인들은 이제 방사능 악재에 울상 짓고 있다. 시장 2층에서 어패류를 팔던 상인 D씨에게 "오늘 기자가 몇 번째 손님이냐"는 물음에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세 번째 쯤 될 것"이라며 "지난해보다 상황이 더 어려워진 것 같다"고 했다. 인근 상인도 말을 거들며 "대게는 러시아산이고 새우는 말레이시아산"이라며 "일본산 수산물은 일부인데 사람들의 우려가 너무 과한 것 같지 않느냐"라고 되물었다.
방류 시작되면...
상인들은 앞으로 '수산물 포비아'가 생겨날 것을 걱정하고 있다. 일본의 오염수 방류로 해산물 소비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다. 실제로 방사능에 대한 국민적 우려는 커지는 추세다. G마켓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18일까지 방사능측정기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168% 상승했다. G마켓 관계자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이슈에 따른 영향으로 보인다"며 "특히 7~8만원대의 가정용 장비가 유의미하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30년 이상 장사를 이어왔다는 상인 김모 씨는 "오염수 방류가 시작된다면 인체 유해 여부와 상관없이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길 것"이라며 "앞으로 생계에 큰 타격을 입게 되는 상인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분개했다. 특히 그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했을 때도 매출이 절반 가까이 줄어 앞길이 캄캄했다"고 회상했다.
실제로 '수산물 포비아' 조짐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11월 제주연구원이 발표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 결정에 따른 피해조사 및 세부 대응계획 수립 연구'에 담긴 국민 1000명 대상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3.4%가 "후쿠시마 오염수가 방류되면 수산물 소비를 줄이겠다"고 답했다. 제주연구원은 향후 소비 감소폭이 44.6~48.8%에 달해 피해규모가 3조72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국민 호소 나선 수협
발등에 불이 떨어진 수협중앙회도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수협 측은 원산지 검사와 방사능 수치 검역을 강화 중이라고 설명했다. 모든 수산물을 대상으로 매일 방사성 물질에 대한 정밀 검사를 진행한다. 100베크렐(㏃) 이상의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면 수입이 금지된다. 검역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방사능 분야 공인 시험 검사 기관‘ 등록도 진행 중이다. 수협은 이르면 다음 달 등록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원전 오염수 대책위원회' 구성에도 돌입했다. 수산단체와 지역조합회장 참석하는 전국 단위다. 이들은 지난 18일 첫 회의를 열고 △수산물 안전관리체계 강화 △수산물 소비촉진 전개 △국내 수산물 안전성 홍보 △어업인 지원방안 마련 등을 논의했다. 대책위 관계자는 "앞으로 전국 수산인의 의견을 수렴하고 정부와 국회에 선제적인 피해 대책 마련에 나서 줄 것을 지속적으로 촉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국민 호소문을 통한 국민 우려 불식 시키기에도 나섰다. 정치권이 힘을 모아줄 것도 호소했다. 수협 측은 지난 15일 "현재 우리 수산물은 방사능 물질에 어떠한 영향도 받고 있지 않을 정도로 안전하게 지켜지고 있다"며 수산물 소비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어 "전국 수산인들은 누구보다 일본의 원전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고 있다"며 "특히 오염수 방류와 우리 수산물의 안전성을 연관 짓지 말아 달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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