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 '유기농' 이런 문구가 화장품에 붙어 있으면 뭔가 피부에 더 안전하고 건강한 제품일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동안 천연 화장품과 유기농화장품의 인증을 정부가 담당해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인증의 주체가 정부가 아닌, 민간에게로 넘어가게 됐습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과연 민간에게 인증을 맡겨도 되느냐는 겁니다.
왜 바뀌었죠
지난해 12월 31일 화장품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기존에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주도하던 천연·유기농화장품의 인증을 '민간 인증 체계'로 전환하고 민간 인증기관이 자율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주된 골자입니다.
개정 취지는 이렇습니다. 국제적으로 화장품의 인증 제도는 민간의 자율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우리나라도 시장 발전을 위해 시장 중심의 화장품 인증 제도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화장품 산업이 발전했고 소비자가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가 다양해지면서 수요에 맞는 제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식약처는 천연화장품과 유기농화장품의 민간 자율 인증제 전환을 발표하면서 "정부 인증제 운영으로 수출 시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민간 인증을 이중으로 받아야 했던 업계의 부담이 감소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앞으로 민간 인증이 잘 정착될 수 있도록 부당한 표시‧광고를 집중 점검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여기서 민간 인증이란 '코스모스 인증'을 말합니다. 주로 유럽 소재의 기관을 중심으로 구성된 천연 및 유기농화장품 인증입니다.
그동안 식약처는 소수의 국내 인증기관들에 천연화장품과 유기농화장품에 대한 인증을 일임해왔습니다. 식약처가 기관들의 인증 내용 등을 재확인하는 식이었죠. 하지만 앞으로는 인증기관들이 자율적으로 인증하는 구조로 변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법에서 사라진 내용들
주목할 점은 개정안 내용인데요. 이번 화장품법 개정안에는 삭제된 조항들이 많습니다. 우선 천연화장품과 유기농화장품의 정의가 삭제됐습니다. 천연화장품이란, 동식물 및 그 유래 원료 등을 함유한 화장품을 의미합니다. 유기농화장품은 유기농 원료, 동식물 및 그 유래 원료 등을 함유한 화장품을 말합니다.
기존에 천연화장품과 유기농화장품 모두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정하는 기준에 맞는 화장품"을 말한다는 내용이 조항으로 있었는데요. 이번 개정안에선 더 이상 식약처가 인증하지 않으니 식약처장이 정하는 기준이라는 내용이 필요 없어진 겁니다.
또 기존에는 화장품 제조업자 등이 천연화장품이나 유기농화장품 인증을 받기 위해선 식약처장에게 인증을 신청해야 했는데요. 이젠 이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됩니다. 또 식약처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경우 관련 공무원이 인증기관을 조사할 수 있도록 했던 조항도 삭제됐습니다.
인증 유효기간 관련 조항도 사라졌습니다. 기존 법에선 인증 유효기간은 인증을 받은 날부터 3년이었습니다. 유효기간을 연장하기 위해선 유효기간 만료 90일 전에 연장 신청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민간 인증기관 중 어디에서 인증받느냐에 따라 유효기간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우려되는 점은
이처럼 식약처가 천연화장품과 유기농화장품의 인증제도에서 손을 떼면서 업계 등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먼저 정부 주도의 인증제도가 폐지되고 민간 자율 인증체계로 전환될 경우 인증 기준이 일관되지 않거나 라벨링 기준이 달라 소비자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인증기관 간의 경쟁으로 인증기준이 느슨해질 우려도 제기됩니다. 기업 입장에선 친환경, 유기농 단어를 쓰면서도 상대적으로 인증기준이 덜 까다로운 기관을 선호할 겁니다. 이 때문에 민간 인증 체계는 소비자 보호보다는 기업의 이익에 더 중점을 둘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유기농 등의 용어는 소비자가 제품을 선택할 때 영향을 미친다"며 "기존에도 자연 유래 등의 화장품 관리에 대한 지적이 있었던 만큼 민간 인증제로 전환할 경우 소비자 입장에선 (화장품 인증) 관리에 대해 우려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식약처는 민간 천연·유기농 인증 및 광고에 대한 지침을 마련해 광고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고, 정기적인 모니터링을 실시해 부당한 표시 광고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식약처 관계자는 "천연·유기농 화장품 인증이 민간 인증체계로 전환되더라도 식약처는 화장품법 제13조(부당한 표시ㆍ광고 행위 등의 금지)와 제14조(표시ㆍ광고 내용의 실증 등)에 따라 천연·유기농 화장품의 표시·광고를 철저히 관리하고, 광고 내용과 인증 사실에 대한 실증자료 확인을 통해 소비자 안전을 확보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천연화장품은 일반적으로 자연에서 유래한 원료를 사용하고, 제조 과정에서도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고자 한 제품입니다. 소비자를 기만하지 않는 온전한 민간 인증제가 국내에 자리잡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