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이후 다양한 플랫폼을 갖추고 자산관리를 해주는 웰스테크 특화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난 가운데 금융회사들 역시 웰스테크를 활용한 자산관리에 나서면서 디지털 자산관리가 새로운 수익원으로 부상하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 12곳의 자산관리(WM) 분야 수익 비중은 지난 2010년 13%에서 지난해 20%대 중반까지 뛰어오른 것으로 추정된다. 자체 디지털 자산관리 체계 구축은 물론 전략적인 인수합병(M&A)과 웰스테크 업체와의 제휴 등 다양한 노력에 나선 결과다.
다만 기존 금융사 외에 빅테크들의 공세도 매섭다. 메릴린치와 캡제미니가 매년 발간하는 세계 부 리포트에 따르면 전 세계 다액순자산보유개인(HNWI:부동산을 제외한 금융자산이 100만 달러 이상인 사람)의 74%가 빅테크(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등)를 통한 자산관리를 기꺼이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향후 1년 안에 자산관리처 교체를 이미 고려하고 있는 비중까지 합하면 94%에 달한다. 새롭게 부상하는 대중 부유층뿐 아니라 기존 고액자산가인 부모나 조부모로부터 부를 물려받을 밀레니얼 세대들도 디지털에 방점을 두면서 자산관리 방식을 기존과 똑같이 유지하진 않을 것이란 얘기다.
이들의 경우 개인화된 정보나 서비스 접근 면에서 기존 WM에 대해 불만족스러운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여기에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디지털 서비스가 크게 늘어난 것이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아직은 설익은 디지털 서비스를 접하면서 자산관리의 디지털화에 있어서 빅테크가 월등히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을 키운 것이다.
실제로 자산관리 서비스에서는 초개인화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향후 시장에서 고객의 충성도를 유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로 지목된다. 다양한 자원을 통해 고객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수집하는 것이 핵심인데 이 부분에서는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은 물론 네이버, 카카오 등 빅테크들이 월등히 유리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이를 반영하듯 해외에서는 기존 금융사들의 빅테크와의 자산관리 부문 제휴 확대가 목도된다. 중국 앤트파이낸셜서비스와 뱅가드는 제휴를 통해 중국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형태의 간결하고 광범위한 투자자문 서비스를 만들었고 피델리티랩은 아마존과 가상금융 상담사인 '코라'를 만들어 윈윈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빅테크가 적인 동시에 동지가 되는 셈이다.
물론 은행이 더 유리하다고 보는 쪽도 있다. 은행이 대면 서비스를 바탕으로 전통적인 WM에 강점을 가져온 이유다. 아직까지 웰스테크 형태가 초개인화되지 않으면서 상대적으로 인력이 줄거나 아예 AI가 사람을 대신하고 단순화된 형태로 이뤄지는 디지털 자산관리에 대한 불만도 여전하다.
은행들은 웰스테크 업체들과 빅테크의 위협에도 불구, 후발주자들이 쉽게 얻을 수 없는 브랜드 가치와 자본력, 이미 대규모의 고객군을 확보하면서 실질적으로는 유리한 고지를 점한 상태다.
일례로 최근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온라인 상에서 금융 플랜을 짜주는 자산관리 플랫폼을 선보였고 두 달 만에 150만 명의 고객이 서비스를 이용했다. 미국 내 3대 로보어드바이저 업체인 베터먼트, 웰스프런트, 퍼스널캐피털 고객이 100만 명을 조금 넘어서는 것을 감안하면 공룡이 가진 본연의 힘을 보여준 셈이다.
BoA는 단순히 자동화된 투자가 아닌 디지털 금융 플랜을 제대로 짜줬기 때문이라며 차별화를 강조했지만 전문가들은 BoA처럼 넓은 고객층과 금융 인프라, 자본력이 막강한 전통은행들이 웰스테크 특화 업체들에 쉽게 자리를 내주려 하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과거 금융사 거래가 처음 온라인화되기 시작할 당시 온라인 중개만으로 시장을 장악한 인터넷 금융 신생업체들이 있었지만 기존 금융사들 역시 현명하게 이에 대처하며 함께 과실을 누렸다. 웰스테크 시장도 이와 비슷할 수 있다는 논리다.
웰스테크 신생업체들의 경우 초기 시장 조성에는 고객 확보 등을 위한 물리적인 비용이 클 수밖에 없으며, 이로 인해 브랜드나 자산 확보에서 월등한 힘을 보유한 전통적인 은행들을 방어하는데 실패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웰스테크 시장이 발달한 싱가포르의 경우 2015년 설립돼 베트남 비나캐피탈에 인수된 로보어드바이저 업체 '스마틀리'가 이 같은 이유로 올해 초 사업을 접었다. 이는 규모의 경제나 브랜드 면에서 이들에 비해 훨씬 더 유리한 빅테크에도 시사하는 바가 분명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