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우리가 구독(subscription)했던 것들은 단순했다. 매일 마시고 보던 우유나 신문배달 또는 매달 정기적으로 받아 보는 잡지 정도가 전부였다. 그런데 현재 우리는 많은 것들을 구독한다. 영상이나 음악 콘텐츠를 스트리밍 구독 서비스로 즐긴다. 또 남성 면도기 날이나 여성생리용품 그리고 반려동물 사료를 구독하는 사람도 흔히 찾을 수 있다. 이처럼 구독경제는 유행을 넘어 일상을 지탱하는 큰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런 현상은 보험 산업까지 침투되어 구독보험이 실제 출시되었다. 한 생명보험사가 편의점 맥주나 밀키드 등의 구독서비스와 보험 가입을 결합시켰다. 구독경제의 확산에 올라타 고객을 확보하는 마케팅 전략으로 돋보이는 행보다.
구독경제가 주목받는 이유는 소비자와 오랜 시간 관계를 맺고 소통할 수 있으며, 매출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정기적으로 소비자에게 제품 또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확보된 유통망을 통해 새로운 것을 제안하기 쉽다. 실제 국내 구독 서비스 하나를 살펴보면 남성 면도기 날을 정기적으로 배송해주는 서비스에서 시작하여 확보된 고객에게 남성 스킨케어와 헤어용품까지 제품군을 늘려 추가적인 구독 제안을 확대하고 있다. 구독경제의 또 다른 장점은 구독 주기에 따라 미래 매출을 예상할 수 있어 기업의 재무적 판단을 쉽게 만들 수 있다. 구독보험은 아직 보험료 등이 미비하고 수익성을 찾기에는 어려워 당분간 고객과 관계를 맺는 초기 단계로 활용될 것이다.
그런데 보험은 원래 구독경제였다. 대한민국 모든 자동차 소유자는 매년 자동차보험 계약을 갱신한다. 설계사를 통하든 다이렉트로 직접 가입하든 다수가 직전 계약을 그대로 갱신한다. 손해보험 전체를 놓고 볼 때 자동차보험 시장 점유율이 크게 변하지 않는 이유다. 보험기간이 1년이 아닌 장기보험은 구독의 성격이 더욱 강하다. 많은 사람들이 종신보험이나 암보험 그리고 여러 질병관련 보험을 장기보험으로 가입한다. 해당 계약의 평균 납입기간은 20년이다. 물론 장기 보험의 유지율이 보험 산업 내에서는 낮다고 평가되지만 다른 구독 서비스와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20년 완납의 사례도 자주 목격되고 이후 보험기간까지 고객과 연결되기에 초장기 구독경제라 볼 수 있다.
보험 상품의 구독적 성향은 소비자와 오랜 시간 관계를 맺고 소통을 가능하게 만든다. 실제 손해보험사의 성장을 살펴보면 구독경제의 장점이 드러난다. 1980년대 후반부터 소위 '마이카(my car) 시대'가 열려 1가구 1차(車)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90년대는 폭발적으로 차량 등록대수가 늘어났고 손해보험사는 가만히 앉아서 의무보험인 자동차보험의 고객과 연결될 수 있었다. 손해보험사는 매년 의무적으로 갱신되는 자동차보험의 가입자에게 2000년대 중반부터 제3보험을 제안하여 체결하면서 급성장했다. 최근 구독경제 모델을 적용한 여러 산업이 고객 확보 후 더 높은 가치의 상품과 서비스를 확대하는 것과 동일한 전략이다.
또한 이렇게 확대된 제3보험의 여러 장기 계약은 예상 가능한 미래 매출을 엄청나게 증가시켰다. 생명보험과 손해보험 모두 장기 신계약을 원하는 이유는 안정적인 계속보험료 수입 때문이다. 만약 모든 설계사가 이번 달 신계약을 체결하지 않더라도 직전 월까지 체결된 수많은 장기 계약에서 엄청난 월납보험료 수익이 발생하기에 장기보험을 선호한다. 장기보험은 그 자체로 구독경제의 효율을 보여주며 지속적으로 고객과 연결되는 장점이 있다.
실제 오래된 설계사의 과거 활동을 살펴보면 실손의료보험을 통한 고객 관리가 주요한 전략이었다. 과거 실손의료보험의 보험기간은 80세 또는 100세인 세만기였고 보험기간 중 보험료를 끝없이 납부해야하는 갱신형 계약이다. 매달 납부되는 보험료로 연결된 고객에게 상해든 질병이든 경미한 사고가 발생하면 보험금 청구를 도와줬다. 보험금은 계약으로 연결된 고객이 보험의 가치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자 보험계약의 목적이다. 이를 통해 또 다른 장기 계약을 제안할 기회를 얻을 수 있고 고객과 지속적인 관계맺음이 가능했다.
살펴본 것처럼 보험은 과거부터 구독경제였다. 구독경제의 핵심은 고객의 생애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연결되어 더 나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 있다. 이를 통해 예측 가능한 매출을 꾸준히 늘릴 수 있는 것이다. 결국 구독경재의 본질은 고객과의 관계맺음과 관리를 통한 유지다. 하지만 최근 보험의 판매 채널을 살펴보면 이 측면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전통적 대면채널은 매달 장기 신계약 체결에만 급급하여 장기적인 고객 관리에 소홀하다. 당장 계약만을 체결하고 이후 고객을 방치하는 실수를 범한다.
비대면채널도 자극적인 마케팅 수단을 동원하여 고객 정보를 확보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미니보험이나 구독보험 등을 통해 확보된 고객 정보를 타 채널과 공유하여 장기계약을 체결하는 수단으로 활용한다. 이는 구독경제의 본질도 아니며 보험 산업이 착실하게 성장했던 구독적 성향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결국 본질은 고객과의 오랜 관계맺음과 관리임을 망각하는 순간 쓸모없는 비용은 증가하고 보험 산업의 미래는 불투명해질 것이다. 이미 계약으로 연결되었지만 지금은 끊어져 있는 고객을 다시 볼 시간이다.
<김진수 인스토리얼 대표 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