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의료보험 보험료 인상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적게는 8%대에서 최대 20% 이상 보험료가 올랐지만 실손보험 발생손해액이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손해율이 계속해 악화하고 있어서다.
금융당국-보험업계 실손보험료 인상 논의
29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과 보험업계는 이번주까지 실손보험료 인상과 관련한 요율 협의를 진행한다. 정확한 요율 산정을 위해 현재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연구원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 따른 실손보험 반사이익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건강보험연구원 관계자는 "보장성 강화에 따른 실손보험 반사이익 결과를 현재 산출 중에 있다"라며 "초안 분석 결과는 금주 중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토대로 보험연구원이 산출내용을 점검하고 금융위원회와 보건복지부 보험업계 등이 모여 반사이익 결과와 보험료 인상 요율 등을 논의할 방침이다.
보험업계에서는 두자리수 이상의 보험료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연이어 보험료를 높였지만 손해율이 여전히 130%를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년 상반기 대선을 비롯해 굵직한 선거들이 있는 만큼 표심을 우려한 정치권 압박에 밀려 한자리수 대 인상에 그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업계에서는 두자리수 이상의 인상을 원하지만 상황이 어떻게 될지는 알수 없다"라며 "그러나 손해율이 130%를 넘어서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어서 추가적인 보험료 인상 없이는 폭탄돌리기를 하는 상황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의 경우 반사이익 결과는 2.42%로 나타났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로 실손보험금 지급 감소 효과가 2.42%였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를 반영했어도 실손보험료 인상률은 평균 10~12%에 달했다. 새로이 반영되는 비급여와 높은 손해율로 인한 영향이 더 컸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실손보험 손해율 악화 주범인 도수치료 이외에 백내장 관련 실손보험금이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실손보험 손실액이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10개 손보사 자료를 별도 취합한 결과 백내장 질환 관련해 지급한 실손보험금은 △2018년 2491억원에서 △2019년 4228억원 △2020년 6378억원으로 매년 50% 이상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올해는 9월말 기준 6998억원을 기록해 이미 지난해 지급보험금을 뛰어넘었으며 연말까지 9300억원, 약 1조원 가량에 달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지난해 생·손보 전체 실손보험 발생손해액이 11조7900억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백내장 관련 발생손해액이 전체의 12분의 1에 달한다는 얘기다. 발생손해액은 지급보험금과 손해조사비, 지급보험금 증감과 미보고 발생손해액 등을 합친 금액이다.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로 백내장 수술 검사비가 급여화 됐지만 고가의 비급여항목인 조절성 인공수정체(다초점렌즈)를 사용하고 실손보험금을 청구하는 사례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특히 다초점렌즈 진료비는 종합병원과 상급병원 진료비가 최저 28만원에서 최고 430만원으로 나타났고 의원급에서는 최저 25만원에서 830만원으로 금액차이가 천차만별인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업계는 실손보험의 손해율이 안정화 되지 않는 이유로 일부 의료기관의 과잉진료와 무분별한 비급여 인상, 불필요한 치료를 부추기는 등의 의료계 문제가 심각하다고 보고 있다. 손보업계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실손보험 발생손해액은 8조3273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9월말 위험손해율은 131.0%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0.8%포인트 개선됐다. 보험료 인상으로 거둬들인 보험료 규모가 더 커진점을 감안하면 개선된 수치로 보기엔 어려운 수준이다.
실손보험료 인상 멈추려면…비급여 관리 필요해
전문가들은 실손보험료 인상을 멈추기 위해서는 도수치료나 백내장 관련 수술 등 비급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관리체계 확립 등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금융당국과 보건당국이 모여 공·사보험 연계법안을 만들고 협의체를 마련해 실손보험 구조 개선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사실상 체계적인 비급여 관리 없이는 계속해서 새로운 비급여 문제가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건보공단에서도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보험사기 대응을 위한 '공·민영보험 공동조사 협의회'에서 백내장 관련 과잉진료기관 기획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건보공단과 금융감독원, 생명·손해보험협회 등이 참여해 백내장 관련 과잉진료 의심 의료기관을 추려 조사에 나서고 문제 적발시 경찰과 검찰 등에 수사의뢰에 나설 계획이다. 또 건보공단은 향후 백내장 수술에 대한 수가 개선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백내장 관련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공단과 함께 실태조사와 종합적인 대책 마련을 위한 이야기가 진행됐고 현재 보험사 자료 취합은 완료된 상태"라며 "공단자료와 함께 취합해 분석한 후 조사 대상 병원 선정 작업을 거쳐 조사에 들어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희 보험연구원 박사는 "전체 비급여가 문제라기 보다는 도수치료와 백내장 등 일부 비급여의 문제가 심각한 것"이라며 "특히 올해는 백내장을 통해 지급한 실손손해액이 1조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처럼 문제가 되는 비급여의 과잉진료나 과잉수술 등의 문제를 잡으면 실손보험 손해율을 일부 안정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본다"라고 분석했다.
단 일반 개인을 대상으로 한 보험사기 조사가 아닌 병원을 상대로 하는 조사인 만큼 대상을 선정하고 조사에 나가 실제 사법기관에 수사를 의뢰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백내장 관련 조사가 이뤄질 의료기관 선정도 내년 초쯤 완료될 예정이며 실제 조사 기간은 6개월에서 1년가량이 걸릴 전망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본래 건보공단은 급여에 미치는 영향에 집중하고 비급여는 누수금액이 적고 사실상 관리에서 벗어나 있어 실손보험과 민감하게 보는 포인트가 다르다"라며 "그러나 비급여나 과잉진료 문제는 의료계 문제기 때문에 보험업계나 금융당국이 접근하기 어려워 이번 백내장 관련 조사처럼 보건장국의 적극적인 참여는 매우 환영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실손보험료를 인상한다고 해도 새로운 비급여로 누수금액이 늘어날 수 있어 보험료 인상을 막기 어려운 만큼 실손보험 손해율 문제 개선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보건당국의 적극적인 참여와 비급여 관리 노력 등 관리체계 확립이 절실하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