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액 이상 외화송금 규모가 당국의 검사가 진행될수록 늘어나고 있다. 은행권 일제 점검 결과 처음 우리·신한은행 두 곳에서 적발된 규모의 배 이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당시 환율로는 8조8000억원, 현재 환율로는 10조원을 넘는다. 검사가 아직 마무리된 게 아니어서 규모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문제가 되는 이상 송금은 국내 암호화폐 시세가 해외보다 비싸게 형성되는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을 노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금융감독당국은 일부 은행 직원이 위법행위에 가담한 정황도 발견해 검찰 등에 이첩하기도 했다.
'작년부터 1년반 새 8.8조 환전 송금'
금융감독원은 12개 은행에서 확인된 이상 외화송금 혐의업체가 82개사(중복 제외), 송금규모는 72억2000만달러로 집계됐다는 관련 검사에 대한 중간 결과를 22일 공개했다.
금감원은 우리은행이 지난 6월23일, 신한은행이 같은 달 30일 이상 거액 외화송금 사례를 자진보고하자 이 사안에 대해 처음 검사에 착수했다. 이어 7~8월 모든 은행에 자체점검을 실시토록 한 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달 22일 10개 은행에 대해 일제검사에 들어갔다.
금감원이 발표한 이상 외화송금의 규모는 애초 2개 은행에 대한 검사 결과(7월)로는 33억7000만달러였다. 그러나 전 은행 자체점검 집계 결과를 토대로 한 지난 8월14일에는 65억4000만달러로 늘었고, 이번 발표에서 다시 72억2000만달러까지 불어났다.
▷관련기사: '거액 이상 외화송금' 4.1조…대부분 코인거래소서 나왔다(7월27일)
▷관련기사: '김치 프리미엄' 노린 2조원대 가상자산 불법 거래 적발(8월30일)
원화 환산한 규모는 해당 시기 송금 환율(7월 발표 때 금감원 환산액 기준, 달러/원 1217원)로 4조1000억원이던 것이 이날 8조7840억원까지 늘었다. 22일 현재 환율(달러/원 1408원)로 따지면 10조1658억원에 달한다. 작년 이후, 그리고 검사가 진행된 2개월여 사이 달러 가치가 급등해서다.
이번 발표에서는 우리·신한은행에 대한 금감원 검사와 나머지 10개은행 자체점검 결과였던 8월 발표분보다 업체수로 17개사, 송금규모로 6조8000억달러가 늘었다. 은행별 혐의업체를 교차 검증하고, 주요 해외수취인을 기준으로 송금업체를 파악해 추가 점검한 결과라는 게 금감원 설명이다.
금감원은 "우리·신한은행 사례와 유사하게 다른 은행에서도 대부분 거래가 국내 가상자산거래소로부터 이체된 자금이 국내법인 계좌로 집금돼 해외로 송금되는 구조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자금흐름 추적 등을 통해 외화 송금거래의 실체를 확인하고, 은행의 관련법령(외국환거래법 등) 준수여부 등을 점검해왔다.
금감원은 "이 과정에서 일부 은행직원의 위법행위 정황을 발견해 관련 정보를 유관기관(검찰 및 관세청)에 공유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대구지방검찰청 반부패수사부는 지난 21일 우리은행 본점을 압수수색하고, 이 은행 지점장 출신 한 직원을 조사했다.
"신한·우리에서 달러 바꿔 홍콩 보냈다"
유형별로 가장 많은 사례를 연결하면 혐의 업체들은 '신한·우리은행(금액 기준 55.1%)에서 원화를 달러(81.8%)로 환전해 홍콩(71.8%)으로 송금'한 것으로 추려진다.
은행별 이상 외화송금 규모는 신한은행이 23억6000만달러(이하 업체수 29개)로 가장 많았다. 이어 우리은행 16억2000달러(26개), 하나은행 10억8000만달러(19개), 국민은행 7억5000만달러(24개), 농협 6억4000만달러(9개) 순이었다.
이밖에 SC제일은행과 기업은행에서도 3억2000만달러(6개), 3억달러(16개)의 이상송금이 있었다. 1억달러 미만이지만 수협·부산·경남·대구·광주은행에서도 모두 이상거래가 있었다.
또 3~4개 은행을 통해 송금한 업체가 12개(14.6%), 2개 은행을 통해 송금한 업체는 30개(36.6%), 1개 은행을 통해 송금한 업체는 40개(48.8%)로 나타났다. 송금 수취 지역은 홍콩이 71.8%(51억8000만달러), 일본 15.3%(11억달러), 중국 5.0%(3억6000만달러) 순이었다. 환전 통화는 미국 달러가 81.8%(59억달러)였고, 엔화(15.1%), 홍콩달러(3.1%)도 있었다.
이상거래에 참여한 82개사중 3억달러 이상 송금 업체는 5개사(6.1%), 1억~3억달러는 11개사(13.4%), 0.5억~1억달러는 21개사(25.6%)였다. 업종은 상품종합 중개‧도매업 18개(22.0%), 여행사업 등 여행 관련업 16개(19.5%), 화장품‧화장용품 도매업 10개(12.2%) 등이었다.
이상 외화송금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각 은행에 대한 현장검사는 혐의규모로 상위 6개 은행에 대해서만 이뤄져서다. 하위 6개 은행에 대해서는 서면검사만 진행됐는데, 우리·신한은행만 보더라도 검사가 진행될수록 혐의규모가 늘어나는 경향을 보여왔다.
당국은 은행권 검사를 10월까지 마무리할 예정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증빙서류 확인 없이 송금을 취급하거나, 특금법상 고객확인 의무를 미이행하는 등 외국환업무 취급 등 관련 준수사항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 은행은 법률 검토 등을 거쳐 엄중 조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