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제법 흘렀다. 시간이 흐르고 환경이 바뀌고 사람도 변하는 게 세월이다. 장수 교육·출판기업 금성출판사가 창립된 지도 올해로 56년째로 반세기를 훌쩍 넘긴 까닭에 오너 3세 경영인의 존재가 생경하게 다가올 리는 없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자리 잡고 있는 현 금성출판사 본사. 본관 건물에는 또 다른 계열사가 본점을 두고 있다. ‘금성미디어’다. 금성출판사가 출자지분을 소유하고 있지 않아 엄밀하게 말하면 관계사가 맞다. 금성미디어가 고(故) 김낙준(1932~2020) 창업주 2남1녀 중 맏아들 김호상(66) 전 대표의 존재감을 어렵사리 엿볼 수 있는 무대다.
1994년 9월, 금성미디어 대표로 이름을 올렸던 이가 김 전 대표다. 1993년 7월 동생 김무상(64) 회장이 금성출판사 사장으로 취임한 이듬해다. 2010년 3월까지 활동했고 2015년 7월까지 등기임원직을 가졌다.
김 창업주가 일찌감치 차남을 후계자로 낙점한 까닭에 김 회장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기는 했지만 장남 또한 나름 사업가의 길을 걸어왔음을 알 수 있다. 본체인 금성출판사에도 한 발 걸쳐 놓기는 했지만 2015년 9월까지 줄곧 감사직만을 갖고 있었다.
금성미디어가 만들어진 지는 한참 전인 1984년 12월이다. 2004년 1월 성훈출판사에서 금성웰빙으로 사명을 교체한 데 이어 같은 해 12월에 가서 지금의 이름으로 다시 한 번 간판을 바꿔 달았다.
다만 기업 볼륨이나 사업영역에 대해서는 손품만 조금 팔면 쉽게 찾을 법한 재무실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현 자본금은 5000만원으로 사업목적 상에는 금성출판사와 동종의 도서출판 및 판매를 비롯해 빌딩관리업 등이 기재돼 있다.
금성출판사의 3세 경영인, 금성미디어에 등장한다. 김 창업주의 장손이자 김호상 전 대표의 아들 김성훈(37) 대표다. 부친의 뒤를 이어 현재 금성미디어의 유일한 사내이사로서 있는 것.
특별하다. 장손의 존재감을 금성미디어 대표 명함으로만 좁혀서 볼 수는 없다는 뜻이다. 오히려 모태인 금성출판사에서 전문경영인 대표 체제가 지속되는 와중 오너 3세 경영인으로서 강렬한 커리어를 보여 왔기 때문이다. 김 창업주의 각별한 총애를 읽을 수도 있다.
김 대표가 호주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뒤 조부의 부름을 받아 금성출판사에 입사한 게 2009년의 일이다. 25살 때다. 영어학습 프로그램 ‘잉글리시버디’ TF팀장을 맡아 2010년 6월 성공적으로 시장에 론칭했다. 잉글리시버디는 학습지 ‘푸르넷’의 성공을 기반으로 영어교육만 특화한 일종의 형제 브랜드다. 총괄이사로 승진했던 게 이 무렵이다.
거침이 없었다. 2015년에는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같은 해 9월에는 사내 등기임원으로 선임되며 이사회에 합류하기 까지 했다. 이후로도 잉글리시버디 총괄부사장으로 활동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묘한 것은 다음이다. 지난해 6월 김 부사장이 돌연 이사진 명단에서 빠졌다. 25년에 걸친 전문경영인 대표 체제에 마침표를 찍고 삼촌 김 회장이 대표에 오른 지 5개월 뒤다. 김 대표는 현재 금성출판사에서도 퇴사한 상태다.
어찌됐든, 김 창업주의 장손에 대한 총애를 엿볼 수 있는 사례가 또 한 가지 있다. 김 대표가 조부로부터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 위치한 3733㎡의 공장용지 및 건물을 물려받았던 게 2002년 12월의 일이다. 18살 때다.
창업주가 1980년 9월 매입했던 것으로 3층짜리 건물은 금성출판사가 물류창고로 쓰던 곳이다. 금성출판사가 김 대표에게 2004년 이후 매년 꼬박꼬박 수억원의 임차료를 지급했던 이유다.
현재는 가산디지털단지의 대형 오피스빌딩들이 빼곡히 들어선 곳으로 지하철 7호선 5번 출구에서 도보로 2분 거리의 교통 요지에 위치해 있다. 김 대표는 작년 10월 땅과 건물을 모두 매각했다. 손에 쥔 돈이 407억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