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는 '친환경'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면에 '환경오염' 요인이 있음에도 말이다. 배터리가 대량 폐기되면 환경문제가 야기돼서다. 이같은 친환경 전기차의 역설을 해결하려면 폐배터리 재활용이 필요하다. 그러나 폐배터리 재활용 기술은 아직 초기 단계다. 국내에선 관련법 미비로 산업 활성화 조차 어렵다. 비즈니스워치는 국내뿐 아니라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는 유럽·미국 현지 취재를 통해 폐배터리 재활용 방안을 집중 분석하고, 친환경 전기차의 지속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
"최근 전기차 배터리 수명이 늘어나 재활용 시장의 활성화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겁니다. 하지만 배터리의 높은 경제적 가치를 고려해야 합니다. 또 배터리를 자연에 버리면 환경 문제를 유발할 수 있죠. 이런 관점에서 보면 배터리를 재활용하지 않을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브뤼셀=백유진 김동훈 기자] 벨기에 브뤼셀에서 만난 니켈 인스티튜트의 LCA(전과정평가)·지속가능 담당자 마크 미스트리 시니어 매니저가 비즈니스워치 취재팀과 인터뷰 중 한 말이다. 니켈 인스티튜트는 글로벌 니켈·니켈화합물 제조업체들이 모인 협회다. 회원사로는 △세계 1위 코발트 생산회사인 글렌코어(스위스) △이차전지 소재기업인 유미코아(벨기에) △유럽 최대 구리 생산업체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구리 재활용업체인 아우루비스(독일) 등이 대표적이다. 취재팀은 유럽 등 글로벌 선진기업들은 배터리 재활용 준비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니켈 인스티튜트를 찾았다.
"재활용은 안정적 원료 확보의 원천"
이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니켈의 적절한 사용을 촉진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니켈은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로 최근 수요가 급증하는 추세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배터리 핵심 4대 소재(니켈·리튬·코발트·망간) 중 니켈은 향후 10년 동안 수요가 가장 가파르게 증가할 전망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니켈의 수요는 28만톤 수준이었으나, 오는 2030년 약 10배인 261만톤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니켈 재고량이 줄면서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에 따르면 니켈 재고량은 2018년 27만6796톤에서 이달 7만1400톤까지 급감했다. 공급에 비해 수요량이 늘자 니켈 톤당 가격도 2018년 연평균 1만3117달러에서 2022년 9월 기준 2만2574달러로 올랐다. 올 4월에는 3만3298달러까지 치솟기도 했다.
니켈 인스티튜트가 배터리 재활용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재 수요가 늘어나는 시장에서 재고량이 줄어들고 가격은 오르니, 원료의 생애주기를 늘릴 수 있는 재활용이 중요해진 것이다.
미스트리 매니저는 "배터리는 니켈·리튬·코발트·망간 등 가치가 높은 원료로 만들어지고 함량도 높아 경제적 가치가 크다"며 "배터리 1개당 금속 함량의 가치는 수천 달러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니켈은 원료 중에서도 재활용 효율이 높은 편이고 100% 재활용이 가능하다"며 "니켈을 함유한 전기차 배터리는 순환경제를 가능하게 하는 올바른 선택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장 개화는 아직…'재사용' 변수까지
다만 전기차 시장이 아직 시작 단계인 만큼, 재활용 시장이 본격적으로 개화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전기차 배터리의 기대수명은 8년 정도인데, 최근 니켈을 함유하는 배터리의 경우 기대 수명이 약 14년까지 늘어났다. 이 배터리가 수명을 다해 재활용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린다.
미스트리 매니저는 "배터리의 생애주기가 매우 길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배터리가 다시 재활용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향후 수년간은 원료의 1차 생산과 재활용이 함께 진행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한국 배터리 재활용 업체들은 배터리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불량품, 즉 스크랩 물량 위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미스트리 박사는 유럽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그는 "유럽도 아직 폐배터리의 양이 많지 않다"며 "당분간 재활용 가능한 전기차 배터리의 수는 한정적일 것이고, 고장난 배터리나 배터리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스크랩이 재활용 물량의 전부일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배터리가 재사용(Reuse)될 경우 재활용 단계까지 도달하는 시간이 더 오래 소요될 수 있다는 점도 짚었다. '재사용'은 재분류 과정을 거쳐 모듈·팩 단위로 다른 분야 배터리에 다시 사용되는 것을 말한다. 배터리에 포함된 금속을 추출해 새로운 용도로 활용하는 '재활용'과는 다른 개념이다.
미스트리 매니저는 "배터리의 재사용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 배터리가 재활용될 때까지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며 "현실적으로 최초 배터리들이 톤 단위로 회수돼 재활용되기까지는 앞으로 수년 정도 더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럼에도 준비해야 하는 까닭
배터리 재활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남았지만, 니켈 인스티튜트의 회원사들은 재활용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준비에 한창이다. 시간이 다소 소요될 뿐 시장의 가능성과 방향성은 확실해서다.
미스트리 매니저는 "앞으로 수년 뒤에는 사용 후 폐배터리의 양이 급격하게 증가할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며 "현재 다수의 니켈인스티튜트 회원사는 니켈·리튬·코발트·망간 등을 함유한 블랙매스(배터리 스크랩을 파쇄하고 선별 채취한 검은색 분말)를 톤 단위로 공급받게 되는 날을 대비해 처리 공정을 개선하고 신규 시설에 투자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또 "수명을 다한 배터리가 매립되지 않고 공장으로 돌아와 재활용 되고, 그 안의 원료가 재사용될 수 있도록 현재 △자동차 제조업체 △배터리 제조업체 △금속산업 간 합작투자가 진행되고 있다"고 첨언했다.
배터리 재활용에 대한 유럽 시장 전반의 분위기도 우호적이다. 재활용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져 시민들의 인식도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추세라는 게 니켈 인스티튜트 측 설명이다.
미스트리 매니저는 "유럽 내에서 재활용 중요성에 대해 이해가 깊어지면서, 재활용은 니켈 등 원료의 1차 생산을 보완하고 원료를 자급할 수 있는 좋은 선택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재활용만이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한 전부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재활용은 전기차 배터리 밸류체인의 한 부분일 뿐, 진정한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업계 전반의 노력이 동반돼야 한다는 것이다.
미스트리 매니저는 "재활용은 지속가능한 배터리 사용을 위해서 필수적이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며 "지속가능성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밸류체인 내 원료 채굴·배터리 제조·사용 등에 참여하는 이들도 각각 기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료 채굴 단계에서는 환경 오염 요소를 최소화하면서 비용 감축을 꾀하고, 배터리 제조사는 해체가 쉬운 배터리를 개발하는 등 지속가능성을 위한 각자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EU 배터리 정책, 규제 불확실성 제거는 필수
이는 유럽연합(EU)이 구상 중인 배터리 기본법과도 일맥상통한다. 유럽연합은 EU 역내에서 '배터리 순환경제'를 구축하기 위해 전기차 배터리 제조부터 재사용, 원재료 재활용에 이르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관련기사: 배터리 정책 바꾸는 EU '한국기업 대응방안은…(9월21일)
니켈 인스티튜트는 이 기본법을 뒷받침할 새로운 규제안의 기준은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규제 불확실성은 경계해야 한다고 봤다. 사업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해당 규제가 언제까지 적용되는 것인지 보다 명확하게 밝혀져야 하기 때문이다.
미스트리 매니저는 "전기차 배터리 밸류체인, 그중에서도 원자재 생산 및 재활용 업계는 매우 자본집약적이라 상당한 규모의 투자가 필요하다"며 "일반적으로 금속 산업의 투자 주기는 15~25년 정도인데, 기업은 이 기간 동안 안전하게 대규모 투자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안정적 투자는 안정적인 규제와 궤를 같이한다"며 "안정적인 규제가 뒷받침되어야만 기업들이 재활용 공장에 투자할 때 안전하게 사업계획을 세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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