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나은수 기자] 지난 15일 두산에너빌리티 경남 창원 본사에 위치한 단조 공장. 1만7000톤(t)급 프레스 장치가 1200°C까지 달궈진 쇳덩어리(합금강)를 짓누르자 둔탁한 '퉁' 소리와 함께 벌건 속살을 드러냈다. 현장 직원들은 각자의 스마트폰으로 두산에너빌리티가 다시 뛰는 순간을 담기 시작했다.
지난 정부의 탈(脫)원전 기조에 침체됐던 두산에너빌리티 창원 공장이 활기를 찾고 있다. 공장을 떠났던 인력들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는 게 대표적인 긍정적 신호다. 이동현 두산에너빌리티 원자력BG 공장장은 "인력을 계속 충원 중이며 내년 상반기에는 원자력 공장을 풀가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2029년, 수소터빈 볼 수 있을 것"
두산에너빌리티의 창원 공장은 국가 기간 산업에 필요한 초대형 플랜트 설비가 제작되는 곳이다. 공장은 △단조공장 △터빈공장 △원자력공장 △풍력공장으로 나뉜다. 전체 면적은 430㎡(130만평). 여의도 면적의 1.5배에 달하는 규모다.
이날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초대형 터빈과 발전기를 제작하는 터빈 공장이었다. 조립 공장에 들어서자 가스터빈의 척추에 해당하는 로터와 케이싱(덮개)이 나란히 배치돼 있었다. 로터가 케이싱 안에 안착되면 가스터빈 조립은 최종 완료된다.
가스터빈은 '높은 압력과 온도를 견디며 고속으로 회전하는 장치'다. 3600RPM(1분에 회전하는 속도)으로 고속 회전하는 과정에서 생성된 기계 에너지가 전기 에너지로 변환되면서 전기가 생산된다. 현대 공학 기술이 모두 집약돼있어 가스터빈을 '기계공학의 꽃'이라고도 부른다.
가스터빈은 부품은 크게 △외부의 공기를 흡입하고 압축하는 압축기 △압축한 공기와 연료를 태워 고온·고압의 연소가스를 만드는 연소기 △연소 가스로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터빈으로 구분된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이 기기들을 국내 중소·중견 기업 340여 곳과 함께 제작하고 있다.
이상언 파워서비스 BG GT센터 담당 상무는 "우리나라의 터빈 설계 국산화율은 100%, 제작 국산화율은 90%에 달한다"며 "두산에너빌리티가 직접 만드는 것은 20% 수준이며 나머지 80%는 협력사가 제작하기 때문에 (낙수효과로 인한) 인력 고용 효과가 굉장히 큰 산업"이라고 강조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탄소를 전혀 내뿜지 않는 수소가스터빈 개발에 한창이다. 현재 가스터빈에 사용되는 연료는 LNG(액화천연가스)로 발전 과정에서 탄소를 배출한다. 두산에너빌리티는 2027년까지 수소전소터빈 연구를 완료하고 2029년부터 수주 활동에 나선다는 목표다.
이 상무는 "2029년이 되면 수소가스터빈 개발이 완전히 완료될 수 있을 것"이라며 "가스터빈(LNG) 분야에서는 후발주자로 꼽히지만 수소가스터빈 분야에서는 선두주자가 되기 위해 많은 투자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SMR, 체질 개선 한창
원자력 공장은 다른 공장과 달리 적막한 기운이 감돌았다. 공장 외부에 덩그러니 쌓여있는 4.5m 크기의 주단소재들이 그간의 어려웠던 회사 상황을 보여주는 듯했다.
이동현 두산에너빌리티 원자력BG 공장장은 "이미 5년 전에 제작한 것으로 부식 방지를 위해 페인트칠을 해놓은 상황"이라며 "신한울 원전 건설이 재개되면서 조만간 공정에 투입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난 5년간 이전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일감이 줄어들자 원자력 공장 인력들이 속속들 공장을 떠났다. 최대 350명이 근무했던 이곳은 한때 150명까지 인력이 감소했다. 다행히 다시 원전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인력이 조금씩 늘어나는 상황이다.
이 공장장은 "다시 사업이 재개되면서 신규 채용을 통해 인력 확보에 나갈 계획"이라며 "아마 내년 상반기쯤 되면 원래 수준으로 돌아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원자력 공장은 현재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 원전 시장에서 SMR(소형모듈원자로)이 새로운 먹거리 사업으로 떠오르면서 이에 대한 본격 채비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5개 구역으로 나뉘어진 원자력 공장 중 2개 구역을 SMR 용접 조립 공간으로 개조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 공장장은 "뉴스케일파워와 체결한 SMR 6기 주기기를 생산할 준비를 진행 중"이라며 "향후 추가 주문이 들어오게 된다면 공장을 신축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육상보단 해상풍력에 주력"
풍력 사업은 두산에너빌리티가 또 다른 미래 먹거리로 키우는 분야다. 이날 마지막으로 방문한 풍력공장에서는 탐라해상풍력발전단지에 공급할 발전기 제작이 한창이었다. 2005년 풍력 산업이 뛰어든 두산에너빌리티는 뚝심있게 이 사업을 추진해나가고 있다.
육상 풍력보다는 해상 풍력이 앞으로 더욱 경쟁력 있다는 게 두산에너빌티 측 생각이다. 육지보다 바다에서 부는 바람이 전기를 생산하는데 더 유리해서다. 국내에서 운영 중인 해상 풍력 발전기(98기)는 모두 두산에너빌리티의 손을 거쳤다.
신동규 풍력 서비스설계 상무는 "육상보다 해상이, 또 육지에서 멀어질수록 바람의 퀄리티(질)가 높다"며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제주도, 전라남도에서 부는 바람의 품질이 좋다"고 말했다.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원리는 선풍기가 바람을 발생하는 구조의 역순이다. 선풍기가 전기 에너지를 이용해 모터를 돌리고 바람을 만든다면, 풍력발전기는 부는 바람을 이용해 전자석을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신 상무는 "풍력 발전기는 바람에너지를 회전에너지(토크)로 전환하는 블레이드(날개), 전달된 토크를 증속기로 전환하는 허브, 각 부품이 들어가있는 직육면체 나셀 등 크게 세 부품으로 이뤄져 있다"며 "날개 역할을 하는 블레이드는 국내 기업에 외주를 맡겨 생산하는 등 국내 중소 부품업체와 동반 성장해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풍력 발전기의 용량을 점차 확대해나가고 있다. 2010년 3MW급 해상풍력발전기, 2019년 5.5MW급 해상풍력발전기 개발을 완료하는 등 그 규모를 점차 키워나가고 있다. 지난해에는 8MW급 해상풍력발전기 실증을 마쳤다.
하지만 세계 풍력 발전 기업과 견주면 두산에너빌리티의 기술력은 아직 부족한 수준이다. 풍력 시장을 선두하는 업체들은 현재 15~20MW급 대형 풍력 발전기를 선보이고 있다.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신 상무는 "내년 정부가 계획하는 15MW급 이상 차세대 모델 개발에 참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며 "하지만 세계적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는 20MW급 모델이 개발돼야 할 것으로 보고 있어 정부 기관에 이에 대한 의견을 꾸준히 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