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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촉즉발 러시아]① `소련 붕괴`..그땐 무슨 일이?

  • 2014.12.17(수) 15:35

80년대 `연방 붕괴`때 흡사..98년 위기와도 닮은꼴
국제유가 급락에 경제 제재 겹쳐 `엎친 데 덮친 격`

루블화 폭락으로 러시아 경제에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일각에서는 1990년대 후반 모라토리엄을 떠올린다. 1980년대 소비에트 붕괴 당시와 닮은 꼴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러시아는 이미 우크라이나 사태로 서방 세계로부터 경제 제재를 받아온 상황이다. 여기에 유가 하락과 통화가치 폭락이라는 악재가 겹치면서 러시아의 경제 상황이 심각한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러시아가 쓰러지면 세계 경제는 또 다시 휘청거릴 수 밖에 없다. 전 세계가 숨죽이며 러시아를 지켜보기 시작한 이유다. 

 

 

◇ 러시아 모라토리엄 `악몽의 기억`

 

유가 급락이 결국 한 국가를 생사의 기로에 놓이게 만들었다. 유가가 하락하던 초기만해도 중남미와 중동의 산유국들로 시선이 쏠렸지만 더 큰 복병은 유럽에 있었다. 다름아닌 러시아다. 유가의 하락 속도가 가팔라지면서 러시아 루블화 가치도 매섭게 떨어지고 있다. 최근 6개월새 루블화 가치는 거의 반토막이 났다. 전날(16일) 러시아 중앙은행의 대폭적인 금리인상 결정(10.5% → 17%)후 루블화 가치는 반짝 반등했지만 고점과 비교하면 여전히 20%나 빠진 상태다.

 

루블화 폭락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악몽과 자연스레 오버랩된다. 1998년 러시아에 닥친 모라토리엄 사태다. 당시에도 루블화는 최근과 마찬가지로 날개없이 추락했다. 


당시 러시아는 경제 펀더멘털이 악화된 상황에서 1997년에 발발한 동아시아 위기에 손쉽게 전염됐다. 재정적자로 채무 부담이 가중된 상황에서 투자자금이 이탈하면서 루블화 가치는 급전직하했다.  아시아에서 시작된 외환위기는 러시아를 거쳐 결국 중남미까지로 확산됐고 안전지대로 여겨졌던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도 출렁거렸다. 러시아는 결국 모라토리엄을 선언했고, 이후 변동환율제를 도입하는 등 강력한 개혁에 나섰지만 원유에 의존하는 경제 체질 자체가 바뀌진 않았다.

 

▲ 달러대비 러시아 루블화 환율 추이(출처:CNBC)

 

◇ 유가 하락 뒤 소비에트 붕괴 `기시감`

 

최근 러시아 위기는 1985년 소비에트 붕괴 당시와 더 유사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1990년대 초반 러시아 총리를 지낸 이고르 가이다르가 회고한 소비에트 정권 붕괴 상황은 현재와 매우 흡사하다.

 

당시에도 세계 최대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의 영향력이 작용했다. 1985년 9월 사우디아라비아 원유 장관은 유가 방어를 중단하는 급격한 원유정책 변경을 선언한다. 이후 사우디아라비아는 6개월간 원유 생산을 4배로 늘렸고 유가는 현재와 비슷한 수준으로 급락했다. 이는 지난달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이 감산 합의에 실패하고 유가 하락을 용인한 조치와 상당히 닮아있다.

 

1980년대말 소비에트연방은 자금 차입에 상당한 애를 먹었고 식량 부족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는다. 결국 소비에트연방은 서방세계에 손을 벌리게 되고, 경제적으로 취약한 상황에서 동유럽 국가들이 하나 둘씩 먼저 독립의 길을 걷게 된다. 소비에트 연방은 1991년 결국 붕괴에 이른다. 

 

최근 루블화 폭락으로 러시아에서는 루블화를 달러로 바꾸는 달러 사재기 열풍과 함께 내구재 구매 러시가 일고 있다. 위기상황을 눈치챈 시장과 민초들의 본능적 방어기제가 작동한 것이다. 물가가 하늘로 치솟는 하이퍼인플레이션 상황에 대한 우려와 함께 투자자들의 자금도 무섭게 빠져나가는 중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의 최대 위기라는 얘기도 나온다.

 

가이다르 전 총리는 2007년 저서에서 러시아가 소비에트 연방 붕괴로부터 얻은 교훈을 계속 상기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당시에는 전 세계적으로 유가 상승 전망이 대세였다. 그는 러시아 경제가 원유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유가가 높은 수준을 끊임없이 유지해야만 정권이 지속 가능하다고 경고한 바 있다. 최근의 유가 움직임과 러시아 상황을 대입시켜 보면 무섭도록 정확한 지적이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러시아가 1980년대 상황과는 분명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크게 변한 부분도 없다"며 여전히 재정과 수출 대부분을 원유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도 "소비에트 붕괴 전인 1980년대 중반까지 수출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이 3분의 2에 달했다"며 "푸틴 대통령이 권좌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던 데는 국제유가가 크게 올라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 우크라이나 사태후 경제 제재 `설상가상`

 

러시아는 과거 위기때보다 오히려 더 불리한 상황에 놓여있는 지도 모른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서방 세계는 경제제재 카드로 러시아를 압박해왔고, 이로 인해 러시아 경제는 체력이 적잖이 소진된 상태였다. 최근 유가 급락의 파장이 러시아를 위기상황으로까지 밀어넣은 것은 경제제재로 업친데, 유가가 덮친 격이 됐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다.

 

러시아 경제위기 우려가 확산되고 있지만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가 기존 제재를 쉽게 풀어주지는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오히려 러시아 길들이기용으로 제재 카드를 활용할 공산이 더 크고, 러시아가 여기에 강력 반발하다간 러시아 경제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 가능성도 있다.

 

러시아의 외채규모는 지난해말 기준으로 7271억 달러로 내년까지 1250억 달러를 갚아야 한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유가가 60달러 수준에서 지속될 경우 내년 러시아 성장률이 4.7%이상 위축될 것으로 내다봤다 . 미국 등 서방세계의 압박이 지속되고 유가가 단기간내에 반등하지 못할 경우 러시아가 일부 대외채무에 대해 상환불이행을 선언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러시아 경제상황을 보면서 1998년 모라토리엄이 데자뷰로 떠오르는 배경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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