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헤지펀드가 빠르게 성장하며 4조원 시대를 열었다. 여기에 정부가 지난해 헤지펀드 문턱을 확 낮춘데 이어 오는 9월부터는 증권사들의 헤지펀드가 봇물을 이룰 예정이어서 증권업계의 제2라운드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증권사의 새 수익원으로 떠오르고 있기도 한 한국형 헤지펀드 현주소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과제를 짚어본다[편집자]
한국형 헤지펀드의 역사는 길지 않지만 남다른 먹성을 자랑한다. 지난 2011년 태동 후 5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4조원대로 급성장했다. 잘 나가는 펀드 하나가 수조원대를 넘나드는 것은 일도 아니지만 헤지펀드에 투자할 수 있는 요건이 제한되는 점을 감안하면 눈부신 속도다.
아울러 기존에는 헤지펀드가 자산운용사의 전유물이었지만 프라임 브로커리지 서비스(PBS)를 제공하는 자산 3조원 이상의 대형 증권사들에게는 어느덧 적지 않은 수익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정부가 헤지펀드를 포함한 전문투자형 사모펀드 활성화에 팔을 걷어붙인 후 증권사들도 본격적으로 발을 담글 채비를 하고 있어 한 단계 더 도약이 기대되고 있다.
◇ 5조원대 '시간문제'
지난 2011년 12월 정부 주도로 처음 도입됐을 당시 헤지펀드 시장은 12개 펀드, 1490억원 규모에 불과했다. 그러나 1년 반만에 설정액이 1조5000억원을 돌파하며 10배 가까이 성장했고, 지난해 5월 3조원 돌파에 이어 지난 4월말에는 4조4000억원으로 뛰며 4조원대 시장에 진입했다. 특히 올해 들어서는 석달 사이 7000억원이 유입되면서 지난해 전체 유입 규모인 9000억원에 육박하는 등 속도를 내고 있다.
헤지펀드 성장 속도가 가팔라진 데는 지난해 10월 금융당국이 내놓은 사모펀드 활성화 방안이 큰 역할을 했다. 정부는 일반 사모펀드와 헤지펀드를 전문투자형 사모펀드로 묶어 진입 장벽을 기존 5억원에서 최소 1억원(레버리지 200% 이하, 초과할 경우 3억원)으로 대폭 낮춘 바 있다.
이 덕분에 소규모 헤지펀드가 늘면서 설정액과 펀드수도 빠르게 몸집을 불렸다. 헤지펀드 운용사는 작년말 17개에서 지난 3월말 26개로, 펀드 수는 46개에서 78개로 뛰었다. 최창규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형 헤지펀드 설정액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조만간 증권사의 가세가 기대돼 5조원 돌파는 시간문제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 증권사 PBS 쏠쏠한 수익원
비록 간접적 수혜이기는 하지만, 증권사들은 이 같은 헤지펀드 성장으로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다. 헤지펀드를 포함해 사모펀드를 직접 운용할 수는 있었지만 PBS 업무는 가능했던 것. 자기자본 3조원 이상의 '종합금융투자사업자' 면허를 가진 5개 대형 증권사가 대상이다.
PBS는 헤지펀드 운용에 필요한 신용공여, 증권대차, 컨설팅 등 종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무로 증권사 입장에서는 다양한 수수료를 챙길 수 있다. 올 4월말 헤지펀드 설정액(4조4000억원) 기준으로 PBS 점유율은 NH투자증권(1조5000억원)이 36%로 1위를 기록하고 있고, 대우증권(1조2000억원)과 삼성증권(9500억원)이 뒤를 잇고 있다. 이들 5개사는 지난해 헤지펀드 PBS 수수료로 300억원가량을 벌어들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게다가 헤지펀드 시장은 앞으로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보여 전체 시장의 파이가 커지는 것과 맞물려 5개 대형사는 물론 증권사의 새로운 주요 수익원으로 자리매김할 개연성이 크다.
금융위원회는 11일 발표한 자산운용사 인가정책 개선방안에 따라 오는 6월부터 겸영신청을 받을 예정이다. 신청 후 두달 가량의 심사기간을 감안할 때 이르면 9월 중 증권사 사모펀드가 첫 선을 보일 것으로 보인다. 증권사의 헤지펀드 직접 운용이 가능해진다는 의미다. 현재 증권업계에서는 NH투자증권이 일찌감치 헤지펀드 진출을 선언한 상태다. NH투자증권을 비롯해 삼성증권, 신한금융투자 등 15개 내외의 증권사들이 헤지펀드 진출을 준비 중이다.
투자 측면에서도 문이 더욱 활짝 열릴 전망이다. 하반기부터 국민연금의 헤지펀드 투자가 시작될 예정으로 당장은 해외 재간접 헤지펀드로 시작되지만 한국형 헤지펀드로도 투자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지난해 도입이 무산됐던 일반 투자자들의 재간접 헤지펀드 투자가 향후 허용될 가능성이 높아진 점도 기대를 모으는 부분이다.
손미지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일반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재간접 헤지펀드 판매 허용 시 국내 헤지펀드 시장 저변이 크게 확대될 전망"이라며 내년 한국형 헤지펀드 설정액을 6조8000억원으로, 펀드수를 130개로 각각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