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작은 마을 생 소뵈르에서 자란 콜레트는 자신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소설 편집자 윌리와 사랑에 빠져 파리 생활을 시작합니다. 남다른 여성 편력과 사업 수완을 갖고 있던 윌리는 파리 사교계 파티를 누비고 다니지만 콜레트는 따분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콜레트는 학창시절 경험을 소재로 소설을 써 윌리를 도와보려 하지만 세상 풍파에 찌든 윌리에게 형용어구로 가득찬 콜레트의 소설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윌리의 사업은 삐거덕거리기 시작합니다. 주변 소설가들은 윌리를 떠나고 파산 위기에 몰립니다.
기댈 곳 없던 윌리의 눈이 멈춘 곳은 콜레트의 소설. 윌리는 콜레트와 함께 문장을 다듬고 표현을 고칩니다. 그렇게 탄생한 소설의 제목은 <클로딘의 학창시절>. 외설과 순수 사이 절묘한 줄타기에 성공한 소설은 출판과 동시에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릅니다.
하지만 콜레트가 클로딘을 만들어냈다는 것은 대중에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윌리가 자기 이름으로 소설을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속편 출시를 제촉하는 아우성 속에서 윌리가 콜레트 없이 클로딘 이야기를 풀어내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콜레트에게 글 쓰는 작업을 계속 시킬 수 있을까. 윌리는 파리 인근 한적한 곳에 저택을 마련합니다. 프랑스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생각날 법한 초록 언덕 위의 하얀 2층 집. 시골 출신 콜레트는 '취향 저격' 당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상합니다. 클로딘이 아무리 인기 반열에 올랐다고 하지만 소설 출간 직전까지 도산 위기에서 허우적대던 윌리가 주택 구입 자금을 도대체 어디서 마련한 것일까요. 혹여 누군가의 뒤통수 칠 만한 일을 저지른 것은 아닐까요.
"다음 작품비를 미리 당겨 받았지. 이런 이야기는 접어 두고 집을 보자. 어때, 맘에 들어?"
첫 소설이 워낙 잘 팔린 결과 업계 관계자들은 미리 두번째 소설을 살 비용을 내서 속편에 대한 출판 권리를 차지하고자 한 것입니다. 속편의 인기가 반드시 높으리란 보장은 없지만, 위험을 감내할 만큼 투자 가치가 충분하다고 평가한 것이지요.
윌리 입장에서는 속편 출시 후 예상되는 수익보다는 적더라도 당장 돈을 융통해 집을 마련하면 콜레트가 양질의 작품을 생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고, 이것이 향후 수익으로 이어지면 사업을 확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봤을 겁니다.
영화 속 윌리는 콜레트가 기대치에 부응하지 않자 방 안에 가두는 등 엽기적 행보를 보이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윌리에게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콜레트는 자의든 타의든 소설들을 써 내려갔고, 책들은 성공을 가져다줬기 때문입니다.
영화 <콜레트>의 시공간 배경은 20세기 초 프랑스 파리이지만 자산을 담보로 자금을 유치해 영업을 전개하는 윌리의 자금 유통 방식은 2019년 현재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자산유동화증권(ABS, Asset Backed Securities)이 대표적입니다.
ABS는 현금화하기 어려운 유가증권 부동산 매출채권 등을 담보로 발행하는 증권입니다. 투자자가 만기와 이자율 등 수익 반영 요소를 따져본 후 기업이 발행한 ABS를 사들이면 자금이 기업으로 흘러들어오는 식입니다.
ABS는 자금 확보의 보편적 수단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국내 기업이 지난해 발행한 ABS는 195조원 규모입니다. 2017년 180조원에서 8.3% 가량 확대됐습니다. 거래건수는 1457건으로 전년대비 11.3% 증가했습니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특정 신용카드 매출을 담보로 ABS를 발행해 유동성 확보에 나서기도 했는데요. 지난달 외부감사인 한정의견으로 주식시장 관리종목으로 지정되고 신용평가사가 신용하향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ABS 조기상환 이슈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돈을 버는 방법은 참 다양합니다. ABS가 존재하지 않던 당시 무형의 미래 자산을 담보로 더 큰 부를 창출한 윌리의 아이디어는 상당히 기발해보입니다. 하지만 윌리와 콜레트의 관계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콜레트로 하여금 글만 주구장창 쓰게 한 윌리의 모습에서 많은 관객들이 파국을 예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