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사채(CB)가 처음엔 사채 쓴다는 말인 줄 알았는데 투자자가 회사에 투자하는 것이란 점을 오늘 제대로 알게 됐네요."
공시줍줍 뉴스레터로 보내온 독자 댓글을 읽으면서 그동안 전환사채를 다룰 때 중요한 설명 하나를 소홀히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환사채란 용어를 더 분명하게 설명하지 않고 정보를 전달하려던 저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고요.
우리가 흔히 '사채 쓴다'고 말할 때 사채는 개인이 은행과 같은 공식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 무허가 대부업체나 개인에게 빌리는 돈을 뜻하죠. 이때는 '사사로울 사(私) 빚 채(債)'란 한자를 사용한 사채.
전환사채란 단어에는 '모일 사(社)'란 한자를 사용해요. 즉 회사채를 의미해요. 회사가 채권을 발행해서 투자자에게 돈을 받고 파는 것이죠. 투자자는 회사 가치를 믿고 돈을 투자하고, 회사는 투자자에게 이자를 지급하고 약속된 날짜(만기일)에 원금을 돌려주는 방식.
사채(私債)와 사채(社債)는 한글로는 같은 단어인데 한자가 담고 있는 뜻은 다른 것이죠. 그럼 처음부터 회사채라고 이름 붙이면 헷갈리지 않았을 것을 왜 '회'자는 쏙 빼고 '사채'라고만 해서 사람 헷갈리게 만드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텐데요.
일반적으로 말하는 회사채는 전환사채처럼 주식과 연결고리가 없고 오직 이자만 지급하는 순수 채권 성격을 가진 금융상품을 말해요. 또 회사채에는 일반회사가 발행하는 채권 뿐만 아니라 은행이 발행하는 은행채, 신용카드사나 할부금융사 등 여신금융회사가 발행하는 여전채(여신전문금융채권) 등으로 나뉘기도 하고, 보증이나 담보가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무)보증사채, (무)담보사채와 같은 방법으로 구분하기도 해요.
흔히 주식연계채권이라고 부르는 전환사채, 신주인수권부사채, 교환사채도 그러한 구분 방법 가운데 하나인데요.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회사채는 전환사채, 신주인수권이 붙어있는(붙을 부: 附) 회사채는 신주인수권부사채,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회사채는 교환사채.
일반적으로 주식과 연결고리가 없는 순수 회사채는 신용등급이 높은 대기업이나 금융회사가 주로 발행해요. 예전에는 신용이 다소 좋지 않은 기업도 자주 발행하곤 했지만, 그 유명한 동양 사태(이병헌 배우 주연의 영화 싱글라이더의 배경이기도 했던) 이후로 신용이 낮은 기업이 순수 회사채를 발행해도 투자자를 모으기 어려워졌어요.
그래서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은 투자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전통적인 보상(이자 지급) 외에 추가 보너스를 더한 상품을 내놓는데요. 그 중 하나가 바로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전환사채), 또는 신주를 인수할 권리(신주인수권부사채)를 붙인 회사채이죠.
물론 신용등급과 관계없이 기업이 경영상 판단에 따라 전환사채나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하기도 해요. 어느 정도 신용도를 갖췄거나, 당장 신용도는 낮아도 회사가 성장성을 가진 유망주라면, 투자자에게 주식전환권이나 신주인수권을 주는 대신 일반 회사채보다 낮은 금리로 채권을 발행해 자금조달 비용(이자 비용)을 줄이는 방법이거든요. "우리가 지금 돈이 없지 성장성이 없냐. 나중에 우리 회사 주식을 가질 기회를 줄 테니까 한번 믿고 채권을 사봐" 이런 얘기죠.
지난 3월 12일 김보라 기자가 쓴 [공시요정]네오셈, 이자 없는 전환사채 발행…이 자신감 무엇? 기사를 다시 읽어보면, 코스닥 상장회사 네오셈은 220억원어치 전환사채를 발행하면서 이자를 한 푼도 주지 않겠다고 선언했어요. 마트에서 물건을 사는 것도 아니고 엄연히 이자를 주고받는 채권인데 말이죠. 그런데도 220억원어치가 몽땅 다 팔렸어요. 이 상품을 돈 주고 투자한 사람은 금융상품을 1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전문투자자인 이들은 왜 이자 한푼 받지 못하는 상품에 투자했을까요. 이유는 전환사채란 단어 중 '사채' 보다는 '전환'의 가치를 믿은 것이죠. 지금 당장 채권자로서 이자를 받지 못하더라도 나중에 주식으로 바꿔서 그 주식을 팔면 큰 이익을 남길 수 있겠다는 판단으로 투자한 것이죠.
네오셈의 전환사채 발행조건을 보면, 1주당 3546원에 주식으로 바꿀 권리(전환청구권)가 붙어있어요. 가령 이 회사의 전환사채에 1억원을 투자했다면 나중에 주식 2만8200주(1억원÷3546원=2만8200주. 나머지 잔액은 현금 지급)로 바꿀 수 있어요. 네오셈의 현재 주가는 3500원이어서 지금은 주식으로 바꾸더라도 투자자가 이익을 볼 수는 없지만 나중에 주가가 4000원, 5000원 식으로 올라간다면 투자자는 시세와 관계없이 3546원에 주식을 확보해서 이익을 남기는 구조가 되죠.
전환사채 투자자가 주식으로 바꿔 달라는 요구(전환청구권 행사)를 하면 회사는 새로운 주식을 찍어서 줘야 해요. 그럼 전환사채에 투자하지 않은 일반 주주는 이때 어떤 생각이 들까요.
일단 자신이 주식을 보유한 회사의 발행주식수가 늘어나면, 기존 주식이 희석되는 부작용이 나타나죠. 또한 싼 가격에 새로운 주식을 대량 확보한 전환사채 투자자들이 이익 실현을 위해 주식을 매도하면 주가에도 부담이 되겠죠. 흔히 얘기하는 주식 수급(수요와 공급)에 부정적인 흐름.
그래서 전환사채를 발행한 회사에 관심을 가지는 분들이라면, '전환청구권 행사'라는 제목의 공시를 유심히 살펴봐야 해요.
공시줍줍 독자 한 분은 뉴스레터를 통해 이런 질문도 남겨주셨어요.
"제가 투자한 종목에 전환청구권 행사로 인한 신주발행이 있다는데요. 이럴 때 주가는 떨어지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공시를 하나 살펴볼까요.
전환청구권 행사주식수 누계 항목이란, 전환사채 투자자가 전환권을 행사해 798만7220주에 해당하는 주식을 새로 발행한다는 내용이고, 그 밑에 발행주식총수 대비 항목은 798만7220주가 기존 발행주식의 7.76%에 해당한다는 내용이에요. 즉 전환사채 투자자가 주식 전환을 하면서 발행 물량이 8% 가까이 늘어나는 것이죠.
아래 항목을 보면 전환가액 626원. 상장일은 4월 23일. 이 얘기는 1주당 626원에 발행하는 새로운 주식 798만7220주가 4월 23일부터 거래 시작한다는 얘기예요. 거래를 시작한다는 것이 반드시 당일 매물로 나온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전환사채를 가지고 있다가 주식으로 바꾼 투자자들이 상장일 즉시 매각할 수도 있고, 좀 더 주가 흐름을 지켜보고 팔 수도 있으니까요.
전환청구권 행사 공시가 나왔을 때 이 회사의 주가는 1070원. 전환청구권 행사로 발행한 신주가 상장한 23일 주가는 1125원. 따라서 이런 흐름을 보면 아직은 주가에 큰 영향은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전환가액과 현 주가가가 약 두배 차이가 난다는 점에서 잠재적인 물량이 남아있어요.
해당 공시 바로 아래에는 전환사채 잔액이라는 항목도 나오는데요.
11회차부터 13회차까지 총 5055만주에 해당하는 전환가능 주식이 남아있다는 내용이에요. 5055만주는 총발행주식의 절반에 육박하는 숫자여서 잠재적 물량부담이 상당하죠. 이 가운데 현재 전환청구권 행사 기간에 들어온 전환사채도 있고 아직 행사 기간이 남은 채권도 있어요.
전환사채는 상장회사 입장에서는 이자부담을 줄이면서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이고, 전환사채에 투자하는 사람들도 주식 전환시 투자수익을 기대할 수 있지만, 대부분 전환사채는 사모(私募) 즉 특정 투자자만 대상으로 발행해요.
따라서 대다수의 일반 주식투자자는 잠재적 물량부담이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관련 공시를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참고로 사모 형태로 발행한 전환사채는 발행일(납입일)로부터 1년 지나서 전환청구권 행사, 즉 주식으로 바꿀 수 있어요. 이때부터는 물량부담 우려가 서서히 고개를 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죠.
독자 피드백 적극! 환영해요. 궁금한 내용 또는 잘못 알려드린 내용 보내주세요. 열심히 취재하고 점검하겠습니다.
[보너스 트랙- 전환사채 공부할 때 좋은 공시줍줍/공시요정 기사]
① 2020년 12월 8일자 [공시줍줍]HMM 전환사채에 관한 거의 모든 것
② 2021년 3월 29일자 [공시줍줍]HMM, 투자자에 판 전환사채 되사겠다는 사연
③ 2021년 4월 4일자 [공시줍줍 피드백]HMM, 전환사채 주식전환 물량 언제 나와요?
④ 2021년 3월 12일자 [공시요정]네오셈, 이자 없는 전환사채 발행…이 자신감 무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