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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률이냐, 안정성이냐…디폴트옵션 둘러싼 '시각차'

  • 2021.12.14(화) 17:24

[디폴트옵션 시대 개막]③
최근 성과 실적배당형 상품이 '판정승'
금투업계 vs 은행·보험 이해 관계 충돌
글로벌 트렌드도 금융 투자 상품 선호

이르면 내년부터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에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 제도가 도입될 전망이다. 그동안 퇴직연금이 주로 예·적금에 방치되면서 '쥐꼬리 수익률'이라는 비난을 받아온 가운데 디폴트옵션 도입시 근로 소득자 퇴직연금의 전체 수익률이 개선될 것이라는 데 기대가 모인다.

디폴트옵션 도입이 가시화되면서 드디어 한국도 퇴직연금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벗게 될 전망이다. 그동안 OECD 국가 중 한국 등 4개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가 모두 이미 디폴트 옵션 제도를 도입·운영해 오며 퇴직연금 수익률 제고 효과를 톡톡히 내왔다. 

자산운용업계는 환호하는 분위기다. 디폴트옵션 도입시 자산운용사의 주요 퇴직연금 상품인 타겟데이트펀드(TDF)로 자금이 많이 유입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동학개미운동에 힘입어 은행에서 금융투자업계로의 자금 이동이 한차례 일어난 가운데 이번 디폴트옵션 도입에 따른 '제2차 머니무브'도 점쳐진다.[편집자]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정부가 디폴트옵션 도입을 예고한지 2년여 만에 퇴직급여법(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근로자들은 당장 내년 6월부터 자신의 노후자금을 사전에 동의한 대로 자산운용사와 같은 전문기관의 체계적인 관리를 받을 수 있게 됐다.

급여소득자들은 전문적인 운용을 통해 개인 노후자산에 대한 추가적인 과실을 기대해 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개정안에 디폴트옵션의 핵심 쟁점중 하나인 원리금보장형 상품이 포함되면서 유관업계에서는 시각이 엇갈리는 모습이다.

금융투자업권에서는 수익률 개선이라는 법안의 취지를 비춰봤을 때 원리금보장형 상품이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인 반면, 은행·보험 업계에서는 금융소비자들의 상품 선택권과 투자자 보호를 위해 필수적이라는 반응이다.

현재 원리금보장상품을 디폴트옵션의 범주에 포함해 운용중인 일본 사례와 그간의 성과, 전 세계적인 퇴직연금 제도 흐름 등을 고려했을 때 시사하는 점이 분명한 만큼 각 개인의 노후자산 관리에 있어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나온다.

기본 성과는 실적배당형 상품이 우세
     
14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확정급여형과 기여형, 개인형 퇴직연금(IRP)을 합산한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올해 9월말 기준 266조원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원리금보장형 상품 비중은 226조원을 넘어서며 전체 86.4%를 차지하고 있다.

국내 퇴직연금은 예금과 적금같은 원리금보장형 상품 비중이 큰 탓에 소위 '쥐꼬리' 수익률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실제 지난 2016년부터 올해 상반기말까지 집계된 원리금 보장형 상품의 평균 수익률은 1.54%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펀드 또는 상장지수펀드(ETF)와 같은 실적배당형 상품이 포함된 증권사의 확정 기여형(DC) 계좌의 수익률은 4.17%로 원리금보장형 상품을 앞지른다. 다만 5년 평균 성과에서 앞설 뿐 세세히 들여다보면 실적배당형 상품은 지난 2016년과 2018년에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한 바 있다. 

수익률 vs 선택권·노후자산 보호

실적배당형의 경우 금융시장 상황에 따라 투자원금에 대한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 부분이 은행·보험 업권에서 주장하는 예금상품 포함에 대한 당위성으로 작용하고 있다. 퇴직연금은 국민들의 은퇴후 노후자산인 만큼 수익률의 안정성 보장을 위해 상품 선택권이 부여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은행업계 한 관계자는 "금융투자업계에서 얘기하는 수익률이라는 게 장이 좋을 때야 양호하겠지만 반대의 상황에서는 금융 소비자들이 손실을 감내할 수 있을지도 고민해봐야 한다"며 "그렇기 때문에 운용 수익은 결과일 뿐이지 고객이 자기 자산에 대해서 본인의 의사가 반영될 수 있도록 선택권을 주는 게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디폴트 옵션에 운용 수단으로서 원리금보장 상품이 빠졌다면 오히려 제도적인 불안정성만 부각시킬 뿐 국민들의 노후 자산관리에 득이 될 게 없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또 다른 보험업계 관계자는 "수익률 향상이라는 디폴트옵션의 대전제를 고려하면 금융시장 상황에 따라 특정시점에서는 펀드와 같은 주식투자 상품이 유리할 수도 있고, 반대로 예·적금에 대한 선호도가 올라갈 수도 있다"며 "다만 원리금보장 상품을 배제해 금융시장의 변동성에 노후자산을 고스란히 노출시키는 게 금융소비자 보호 측면에서 바람직한지 생각해 보면 판단이 쉬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원리금보장 상품이 이번 디폴트옵션에 포함된 게 전반적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은행·보험 업계에서 주장하는 근로자들의 상품 선택권과 수익률 안정성과 관련한 논리에 모순이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실적배당형 상품이 그렇게 위험하다면 보험사에서는 왜 변액보험을 파느냐"고 반문했다. 변액보험을 판매할 때는 유가증권과 같은 주식투자 상품에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권유하면서 퇴직연금에서는 왜 그렇게 못하는 지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그래픽=비즈니스워치

글로벌 추세는 실적배당형 상품

국내에서는 디폴트옵션에 원리금보장형 상품 포함 여부를 놓고 각 업권간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있지만 해외에서는 일본을 뺀 대부분의 국가가 이를 제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내놓은 2020년 연금 전망에 따르면 회원국 가운데 DC형 상품에 디폴트옵션을 채택하지 않은 나라는 체코, 에스토니아, 슬로바키아 3개국이고, 나머지 34개국이 이를 도입한 상태다.

이중 대부분 국가가 적격디폴트투자대안(Qualified Default Investment Alternatives· QDIA)을 설정해 디폴트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는 상품을 한정해 놨다. 이중 원리금보장상품이 포함된 국가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안정적인 수익률을 고려해 만기 3개월 짜리의 보수적 펀드(Conservative Fund)만 허용한 국가는 이탈리아, 라트비아, 뉴질랜드 등이다. 보수적 펀드는 우리나라로 치면 단기금융 상품이나 국채 등에 주로 투자해 안정성 확보를 우선시 하는 머니마켓펀드(MMF)와 비슷한 상품이다. 즉, 수익률의 안정성을 추구하지만 원리금보장형 상품은 아니다. 

나머지 국가들은 혼합형 펀드(Diversified Fund)나 생애주기형 펀드(Life-cycle) 펀드 등을 허용하고 있고 미국은 QDIA에 둘 다 포함시키고 있다.

운용실적에서도 차이가 있다. 더불어민주당 안호영 의원실에서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우리보다 앞서 디폴트옵션을 도입해 예적금 상품을 포함시킨 일본의 경우 2013년부터 2019년까지 집계된 퇴직연금 수익률은 2.31%다. 

반면 약간의 시차는 있지만 2016년 이후 지난해까지 5년간 집계된 호주와 미국의 개인 퇴직연금 수익률은 각각 5.9%, 6.0%로 일본을 앞지른다. 퇴직연금 전문가는 이와 같은 단편적인 현상들만 고려해도 원리금보장 상품이 디폴트 옵션에 포함되는 게 바람직한 결정은 아니라는 견해를 내놓는다.

해당 전문가는 "일본도 대부분의 퇴직연금 재원이 원리금보장에 집중돼 있어 제대로 운용되지 않고 있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도입했던 것"이라며 "그러나 디폴트 옵션에 예금과 같은 상품이 허용되면서 오히려 원리금보장형 비중은 높아지고 수익률에는 큰 변화가 없는 등 오히려 역효가가 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최근 들어 국내외 경제 전반에 금리 인상 신호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지만 과거 10~15년전과 같은 금리 수준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서 디폴트 옵션에 원리금보장 상품을 넣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라는 입장이다.

이 전문가는 "과거 우리나라는 고금리 국가였지만 지금은 구조적으로 저금리가 고착화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따라서 원리금보장 상품의 수익률도 장기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 확률이 크다"고 진단했다.

이어 "아무리 근로자들의 근속 연한이 짧고, 이에 따른 위험자산 운용손실 우려가 있다고 해도 리스크를 낮출 수 있는 안정형 투자상품으로 운용을 해야지 예금으로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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