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주식시장 상장폐지 제도를 손본다. 시장 진입은 쉬운 반면 상장폐지는 지난한 흐름이 이어져 저성과 기업을 퇴출시키기 어려운 상황을 고치려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그동안 운영해 온 상장폐지 제도가 기업에 회생기회를 부여하고 상장폐지로 인한 투자자 손실을 막기 위해 투자자 보호에 초점을 맞춰왔지만 이로 인해 문제 있는 기업의 적절한 퇴출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봤다.
이에 금융당국은 저성과 기업을 제때 시장에서 퇴출할 수 있도록 상장폐지요건을 완화하고 복잡했던 폐지 절차 역시 효율성을 높일 방침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0일 주식시장의 질적 수준 제고를 위한 IPO 및 상장폐지 제도개선방안을 발표했다. 금융위는 "현행 제도는 상장폐지 시 기업 및 투자자 피해로 직결된다는 인식 때문에 폐지 요건은 완화적이고 폐지 절차는 길게 끌고 갈 수밖에 없는 구조로 운영 중"이라며 "이러한 문제를 이번에 바꾸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브리핑을 맡은 고상범 금융위 자본시장과장은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가 상장사 퇴출이 지연되면서 상장회사 수 증가율이 높은 편"이라며 "우리도 주식시장 질적 개선을 하자는 의견들이 많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시총‧매출액 요건 상향…기준 못 맞추면 상장폐지
금융위는 먼저 15년~20년 전에 설정해 놓은 시가총액, 매출액 기준부터 바꾸기로 했다. 현재 코스피, 코스닥 시장 상장폐지 요건 중 시가총액 기준은 코스피 50억원, 코스닥 40억원 미만이다. 매출액 기준은 코스피 50억원, 코스닥 30억원 미만이다.
상장사들이 계속 성장하면서 기준치는 높아졌지만 시가총액, 매출액 기준은 과거에 만들어 지난 10년 간 해당 기준에 못 미쳐 상장폐지가 된 사례가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저성과 기업 역시 상장폐지 기준 자체가 낮아 스스로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에 금융위는 시가총액 및 매출액 기준을 단계적으로 올릴 방침이다. 먼저 시가총액은 △2026년 200억원(코스피), 150억원(코스닥) △2027년 300억원(코스피), 200억원(코스닥) △2028년 500억원(코스피), 300억원(코스닥)으로 끌어 올린다.
매출액 기준 역시 △2027년 100억원(코스피), 50억원(코스닥) △2028년 200억원(코스피), 75억원(코스닥) △2029년 300억원(코스피), 100억원(코스닥)으로 기준을 높인다. 매출액은 2026년이 아닌 2027년부터 기준을 높이는데 시가총액 대비 실제 조정에 시간이 많이 필요한 만큼 적응기간을 고려해 1년씩 지연해 실행하기로 했다.
개선된 기준을 적용하면 코스피는 62개사, 코스닥은 137개사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 이는 전체 코스피 상장사 중 약 8%, 전체 코스닥 상장사 중 약 7%에 해당하는 수치다. 2년 연속 감사의견 미달이면 즉시 상장폐지 시킨다
금융위는 시가총액‧매출액 기준을 높이면서 동시에 비재무적 부분에서 감사의견 미달요건의 기준을 강화하기로 했다. 고상범 자본시장과장은 "감사의견 미달이 상장폐지 사유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감사보고서에 적시하는 감사의견은 △적정 △한정 △부적정 △의견거절로 나뉘는데 이중 △한정 △부적정 △의견거절이 감사의견 미달에 해당한다. 현재는 다음 또는 다다음 사업연도 감사의견이 나올 때까지 해당 상장사에 개선기간을 부여하면서 사실상 상장폐지를 미뤄주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충분히 개선기간을 주는 제도적 허점을 이용해 또 다른 상장폐지 사유(자본잠식 등)를 회피하고 심사 지연을 위해 고의적으로 감사의견 미달을 받는 사례도 나온다는 점이다.
이에 금융위는 감사의견 미달 사유 발생 이후 다음 사업연도에도 감사의견 미달이 나오면 즉시 상장폐지 시키기로 했다. 즉 2년 연속 감사의견 미달을 받으면 상장폐지되는 것이다.
다만 너무 많은 기업들이 상장폐지가 되면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있기 때문에 예외적으로 회색 및 워크아웃 기업에 대해서는 1년의 추가 개선기간을 부여하기로 했다. 존속법인 최소요건 못 맞추면 코스피도 상폐심사사유
금융위는 기업분할 후 신설법인이 재상장할 때 존속법인의 최소요건을 미충족할 경우 이 역시도 상장폐지 실질심사 사유에 넣기로 했다.
현재 인적분할(기업을 분할비율에 따라 존속회사, 신설회사로 나누는 방식) 후 신설법인이 상장하면 코스피 상장사의 경우 존속법인에 대해서는 별도의 요건적용 및 심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반면 코스닥은 분할재상장 시 신설법인에 대해 상장심사와 별개로 존속법인의 최소 요건 미충족을 실질심사 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이때 최소요건이란 자기자본 30억원을 총족함과 동시에 자본잠식이 없어야 한다. 아울러 매출액 100억 또는 당기순이익 20억원 또는 자기자본이익률 10% 셋 중 하나를 충족해야 한다. 존속법인을 껍데기로 만들어 놓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문제는 코스피 상장사 사이에서 심사를 받지 않는 다는 점을 이용해 존속법인은 부실해지고 이로 인해 존속법인 기존 주주들이 피해를 입는 경우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위는 코스피의 경우에도 분할재상장 시 존속법인의 최소요건 미충족을 실질심사 사유에 추가할 예정이다. 코스닥과 마찬가지로 존속법인은 자기자본, 매출액, 당기순이익 등의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상폐 심의기간 줄이고 개선기간 부여도 감축한다
금융위는 여러차례 개선기간을 부여하면서 점점 길어지는 상장페지 심의단계 및 개선기간 부여도 축소하기로 했다.
현재는 이의신청이 불가능한 형식적 사유를 제외하면 대부분 개선기간을 부여받고 상장폐지를 심의하는 위원회를 거친다. 개선기간 역시 기업에 충분한 회생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 때문에 부여가능한 최대 개선기간이 코스피는 4년, 코스닥은 2년으로 긴 편이다.
여기에 개선기간과는 별개로 위원회 심의기간도 최소 20일에서 최대 30일까지 걸리며 속개제도(결론이 나지 않아 다음 회의 시 논의를 계속하는 것)를 이용해 개선기간을 추가로 부여(속개기간을 늘려 사실상 개선기간 추가부여로 이어지는 것)하는 사례도 있는 상황이다.
이에 금융위는 코스피 개선기간을 최대 2년, 코스닥은 최대 1년 6개월로 단축할 방침이다. 다만 개선계획 이행이 임박하거나 조만간 법원판결이 예정되어 있는 등 예외사유가 발생하면 심의단계별로 3개월을 추가해 부여할 예정이다.
아울러 개선기간 추가 부여 성격의 속개는 허용하지 않는다. 오로지 재논의를 위한 속개기간만 허용한다는 것이다. 또 1심 심의결과가 명확한 경우에는 2심에서 추가 개선기간도 부여하지 않을 계획이다.
그 밖에 금융위는 형식‧실질 사유가 동시에 발생하면 두 가지 심사를 병행하면서 하나라도 먼저 상장폐지 결정이 나오면 최종적으로 상장폐지하기로 했다.
또 늘어나는 상장폐지로 인해 받을 투자자 손실을 줄이기 위해 상장폐지 후 비상장주식의 거래가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K-OTC 등을 활용한 제도지원을 할 방침이다. 상장폐지기업부도 신설해 상장폐지기업을 6개월간 거래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상장폐지 심사 중에도 투자자 정보제공 확대를 위해 개선계획의 주요 내용을 공시하도록 할 예정이다.
이번 상장폐지제도 개선안은 올해 1분기 거래소 세칙 개정, 2분기 거래소 규정 개정 등을 완료하고 올해 하반기 이후 상장폐지 심의단계 축소 등의 개선방안을 적용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