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아파트를 원하는데…….'
정부가 도심 내 주택공급 확대 차원에서 비(非)주택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신속한 공급을 위해 아파트 대신 도시형생활주택, 주거용 오피스텔 등의 규제 완화를 검토 중이다.
공급 부족으로 인한 집값 상승세가 꺾이질 않자 급한대로 '유사 아파트'라도 공급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아파트와 비교해 시장의 선호도가 낮은 상품인 데다 분양가상한제 적용 제외, 풍선 효과 등으로 가격이 더 불안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주택 수요 흡수 효과도 제한적일 것이란 전망이다.
아파트 달랬더니 '유사 아파트' 검토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9일 열린 주택공급기관 간담회에서 도시형생활주택 등의 비주택 건설규제 완화 검토 방침을 밝혔다.
서울 집값 상승세가 좀처럼 잡히질 않자 빠르게 공급할 수 있는 아파트 대체 상품을 통해 활로를 찾으려는 모습이다.
도시형생활주택은 지난 2009년 폭증하는 수요(당시 1~2인 가구)를 흡수하기 위해 첫 등장했다. 전용면적 85㎡·300가구 미만으로 허용된 소규모 공동주택으로 주거형태에 따라 △단지형 연립주택 △단지형 다세대주택 △원룸형 등 3가지 종류로 분류된다.
단지형 연립·다세대주택은 가구당 주거 전용면적 85㎡·4층 이하, 연면적 660㎡초과로 건축한다. 원룸형은 가구별 주거 전용면적이 14㎡이상 50㎡이하로 욕실을 제외한 하나의 공간으로 구성한 형태다.
도시형생활주택은 각종 부동산 규제에서 자유롭다는 게 특징이다.
아파트와 달리 분양가상한제를 적용받지 않는 데다 청약통장이 없어도 만 19세 이상이면 누구나 청약이 가능하다. 추첨제로 당첨자를 선정하고 재당첨 제한이 없다. 실거주 의무도 없어 바로 전·월세를 놓아 임대수익을 낼 수도 있다.
규제도 조금씩 완화돼 왔다. 지난 2011년부터는 원룸형 도시형생활주택도 전용 30㎡가 넘을 경우 침실을 나눠 2개 공간으로 분리하는 이른바 '분리형 원룸', '1.5룸'을 만들 수 있게 됐다. 올해 3월부터는 도시형생활주택 중 아파트형(5층 이상)도 매입임대로 등록할 수 있게 했다.
그럼에도 아파트와 비교하면 면적이 좁아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원룸형의 경우 가장 큰 면적이 20평 정도(전용 50㎡)로 3~4인 가구가 살기엔 좁은 편이다.
이에 업계에선 도시형생활주택이 아파트의 대체재로 작용하기 위해선 일부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원룸형 도시형생활주택 구획 제한을 없애고 면적 상한을 전용 60㎡ 수준으로 확대하는 등 면적을 넓히는 쪽으로 규제가 완화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태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기본적으로 비주택은 1인 가구가 거주하는 상품이라 도시형생활주택 공급을 늘린다고 해도 근본적인 시장의 수요를 흡수하긴 힘들 것"이라면서도 "주택 공급이 워낙 부족한 상황이라 비주택 공급 확대도 긍정적으로 보이고, 바닥면적 규제를 완화해서 면적이 넓어지면 신혼부부 등 2인 이상 가구 수요가 일부 소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틈새 벌어질수록 가격도 벌어지나
도시형생활주택의 면적을 일부 넓히는 것만으로 시장의 수요를 끌어들이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아파트에 비해 주거의 질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도시형생활주택은 가구수, 단지규모가 작아 커뮤니티 시설이나 조경 등이 부족하고 주차장 기준이 가구당 0.6대(전용 30㎡ 이하는 0.5대)에 불과해 '주차난'에 시달릴 수 있다. 여기에 지난해부터는 도시형생활주택도 주택 수 산정에 포함되면서 투자 매력도 떨어진 상태다.
이같은 이유로 주택시장 불장에도 도시형생활주택에선 미분양이 나오기도 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미분양 주택은 △구로구 오류동 11가구 △강동구 천호동 9가구 △강동구 길동 39가구 △광진구 자양동 1가구 등 총 59가구에 불과한데 이중 자양동 1가구를 빼고는 모두 규모가 작은 도시형생활주택과 초소형 주상복합이었다.
윤지해 부동산114 수석연구위원은 "대규모 단지형 오피스텔이나 주상복합은 수요가 있지만 규모가 작은 도시형생활주택은 시장에서 선호하는 주택 유형이 아니다"며 "최근 취득세 등 세금 부담이 커 어설픈 주택을 소유하는 것보다는 똘똘한 한 채를 선호하는 분위기"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아파트 시장이 워낙 과열되니 생활형 숙박시설 등 틈새시장으로 우회하는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도시형생활주택의 규제가 완화해서 지금부터 착공한다고 해도 입주까지 2년은 걸린다"며 주택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할 것이라고 봤다.
'또 다른 불장'도 우려되고 있다. 도시형생활주택이 분양가상한제를 적용받지 않아 가뜩이나 분양가가 높은데 규제가 완화되면 풍선효과까지 생기면서 가격이 불안해질 것이란 전망에서다.
실제로 지난 3월 강남구 역삼동에 들어서는 도시형생활주택 '원에디션강남'(총 234가구)은 3.3㎡(1평)당 7128만원 수준에 분양했다. 전용 49㎡가 15억~16억원대로 최고 19억원에 책정되기도 했다. 강남권에서 역대 최고 분양가를 받은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총 2678가구)의 평당 5688만원보다도 평당 1440만원이나 높았다.
오피스텔도 이미 아파트값 상승으로 인한 풍선효과 등으로 가격이 꾸준히 상승세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오피스텔 매매가격지수는 지난해 8월 100.11이었으나 1년 만인 지난 7월 100.59로 0.48포인트 올랐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도시형생활주택은 분양가 자체가 높은 편인데 규제가 완화되면 지금 넘치는 유동성이 그쪽으로 흘러들어갈 수밖에 없다"며 "단기적으론 풍선효과 때문에 가격이 오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