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에는 감세나 증세처럼 납세자의 세금 부담을 직접 변화시키는 법안 외에도 다양한 제도개선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주로 탈세와 체납 등 조세 체계의 근간을 위협하는 문제를 바로잡거나, 납세자가 억울한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구제 장치를 만들었다.
고액 체납자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고, 탈세제보 포상금을 10배 늘리는 법안이 대표적이다. 기업이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을 때 겪는 '을(乙)의 비애'를 해소하기 위해 세무조사를 법적 테두리 내에서 실시하자는 법안도 나왔다.
최근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조세피난처' 용어를 '조세도피처'로 바꾸거나, 세금을 걷을 수 있는 기간(제척기간)을 늘려 비자금 조성이나 탈세 행위를 끝까지 추적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이런 제도개선 법안은 상반기에만 31건 제출됐다.
◇ 세금 빼돌리고 밀리는 꼴 못 본다
국회의원들이 세금 제도를 손질하면서 가장 주목한 부분은 탈세를 효과적으로 방지하는 수단이었다. 특히 조세피난처로 재산을 빼돌리는 역외탈세에 대해 과세당국뿐만 아니라 국회도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재오 의원(새누리당)은 국제거래를 통한 탈세범에게 5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과 포탈세액의 5배 이하 벌금을 물리는 조세범처벌법 개정안을 냈다. 조세피난처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하는 경우에는 전액 국고로 환수하는 규정도 넣었다.
윤호중 의원(민주당)도 재산을 해외로 은닉하거나 국제거래 가격을 조작해 조세를 포탈하는 경우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윤 의원은 세법상 '조세피난처'라는 용어 자체도 부정적 환경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로 오해할 수 있으니 '조세도피처'로 개정하자는 개정안도 냈다.
같은 당 홍종학 의원은 '조세도피처'를 활용한 역외탈세에 대해 국세부과의 제척기간을 적용하지 않고 끝까지 세금을 걷도록 하는 국세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김영환 의원(민주당)은 역외탈세를 차단하기 위해 해외 금융계좌 신고 의무를 대폭 강화했고, 김재연 의원(통합진보당)은 해외 금융계좌 외에 부동산이나 법인 지분, 귀금속, 미술품 등 재산을 신고하도록 규정했다.
탈세나 체납을 적극적으로 막기 위한 법안도 쏟아졌다. 이만우 의원(새누리당)은 탈세제보 포상금 한도를 1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대폭 인상하고, 같은 당 이노근 의원은 국세를 체납한 대기업의 경우 금액에 관계 없이 명단을 공개하기로 했다. 김동완 의원(새누리당)은 금융기관이 고액체납자의 금융거래정보를 국세청에 제공해 세금을 확실하게 걷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
멀쩡한 기업에 대해서는 세무조사 부담을 줄이는 법안도 나왔다. 홍종학 의원과 박원석 의원(진보정의당)은 각각 국세청의 세무조사 권한과 범위를 명확화하고, 세무조사 대상 선정과 과세자료 공개 근거를 마련하는 국세기본법 개정안을 내놨다. 이만우 의원은 아예 세무조사 절차와 기본사항들을 법률에 규정한 세무조사법을 신설하자고 주장했다.
[출처: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 결혼중개료·기숙사비도 소득공제 넣자
사회 곳곳의 애틋한 사연을 풀어주기 위한 아이디어도 세법에 다양하게 녹아들었다. 김동완 의원은 결혼 적령기를 놓친 근로자가 결혼중개서비스에 가입해 수수료나 회비를 낼 경우 연말정산에서 100만원 한도로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유은혜 의원(민주당)은 대학생 자녀를 둔 부모의 학비와 주거 부담을 줄이기 위해 등록금 대출 원금과 이자를 상환하거나 기숙사비를 지급한 경우 특별공제 혜택을 부여하는 법안을 냈다. 자녀를 군대에 보낸 근로자에게 군인 자녀 1인당 150만원의 추가공제 혜택을 주는 법안(새누리당 송영근 의원 발의)도 나왔다.
이학재 의원(새누리당)과 김동완 의원은 각각 순직 공무원과 의사상자(義死傷者)의 유가족에게 지급되는 위로금에 대해 증여세를 비과세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최근 자살자를 구하려다 순직한 정옥성 경감의 유족이 한 기업으로부터 증여받은 위로금에도 증여세를 부과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것이 법안의 발의 배경이었다.
저소득자의 근로를 지원하기 위해 도입된 근로장려금의 개선 법안도 있다. 이인영 의원(민주당)은 국가가 근로장려금을 환급할 때 체납된 세금을 떼고 난 후 지급하지 않도록 했다. 저소득 근로자의 경우 밀린 세금이 있으면 근로장려금을 받지 못하는 문제가 있어 조금 더 기회를 주자는 취지다. 이 의원의 법안은 1일 기획재정위원회가 근로장려금의 30% 한도까지만 체납 세금을 충당하도록 수정해 가결했다.
근로장려금의 기준이 되는 부양자녀에 배우자의 재혼 전 자녀를 포함시키자는 법안(새누리당 이재영 의원 발의)도 제출됐다. 최대 200만원이 지급되는 근로장려금은 부양자녀가 많을수록 유리하다. 재혼 가정의 근로장려금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실질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고안된 법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