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 시작하는 국정감사를 앞두고 국회의원들의 '홍보'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국회의원과 보좌진들은 정부 부처나 유관기관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재구성해 국민들에게 평소 접하지 못했던 기삿거리를 제공합니다.
행정부는 국민 세금으로 만들어진 예산을 쓰고, 국회는 행정부를 견제·감시하는 기능을 갖고 있는데요. 국정감사 시즌이 되면 의원들이 소관 상임위원회와 관련된 부처·기관에 자료요청을 해서 숨겨진 이슈들을 캐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언론은 이같은 자료에 관심이 많고, 의원들은 이를 통해 본인의 이름을 홍보하는 수단으로 삼기도 합니다.
21일에는 '사(士)'로 끝나는 전문직의 소득 순위가 나와 이목을 끌었습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박명재 의원은 국세청 자료를 바탕으로 변리사와 변호사, 세무사 등 전문 자격사들의 1인당 평균 수입을 공개했습니다.
2005년 이후 9년간 수입이 가장 높았던 직업은 변리사로 1인당 연간 5억8700만원씩 벌었고, 변호사(3억8800만원), 관세사(3억1900만원), 회계사(2억6300만원), 세무사(2억4000만원)가 뒤를 이었습니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직원 1인당 평균 급여가 1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전문 자격사들의 수입 규모가 상당하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 변리사 수입 '뻥튀기'
그런데 자료에는 몇 가지 오류가 있습니다. 국세청이 제출한 자료는 '고소득 전문직의 부가가치세 신고납부 현황'으로 전문직 사업장의 매출을 기반으로 합니다. 인원은 사업장 단위로 계산했고, 여러 사람이 한 사업장에서 공동으로 근무하면 1건으로 계산된다는 게 국세청의 설명입니다.
즉 전문직의 '1인당 수입'이 아니라, '1사업장 평균 매출'이 맞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5명의 변리사가 근무하는 사무실의 지난해 매출이 5억원이었다면, 1인당 매출은 1억원입니다. 그러나 공동사업은 1건으로 계산되기 때문에 '1인당 5억원'이라는 오류가 발생합니다.
매출이 수입으로 둔갑한 점도 문제입니다. 부가가치세는 납세자(의뢰인)가 해당 서비스에 대해 10%의 세금을 국가에 납부하는 것이고, 전문 자격사무실은 이를 대신 납부하는 역할만 담당합니다. 전문 자격사 입장에서는 서비스의 대가로 받는 수수료가 매출이지, 수입은 아니라는 것이죠.
사무실에서 올린 매출은 사무장과 경리직원의 월급부터 주고 난 후에야 수입으로 잡히는 것이 맞습니다. 국세청도 "과세표준은 부가가치세 신고서상 과세분 매출금액이며, 소득금액이 아니다"고 설명합니다.
변리사 사무실이 매출을 많이 올리는 것은 맞지만, 모든 변리사들이 연평균 5억여원을 번다는 얘기는 과장된 것으로 보입니다. 대한변리사회에 따르면 지난해 변리사들의 총수입은 4441억원이고, 개업 변리사수(3623명)로 나누면 1인당 1억2000만원 수준입니다. 사무실 매출을 1인당 수입으로 계산하면서 실제 변리사 수입보다 5배나 부풀려진 셈입니다.
◇ 1인당 세부담도 허수(虛數)?
매년 국가의 세금수입 실적과 전망치가 나올때마다 등장하는 '1인당 세부담'도 끊임없는 논란이 제기됩니다. 1년간 걷는 세수를 인구수로 단순히 나눠 계산하는 방식인데요. 기업이 내는 법인세나 특수 상황에서 발생하는 상속·증여세를 전국민의 세금으로 일반화시키는 것은 무리하다는 지적입니다.
대기업 회장이나 중소기업 근로자, 실업자가 내는 세금이 각기 다른데, 일률적으로 세부담을 계산하는 것이 의미없다는 얘깁니다. 이 때문에 기획재정부에서도 1인당 세부담은 공식적으로 집계하지 않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체감 세부담을 보다 정확하게 집계하려면 근로소득세 수입 대비 근로자 수, 법인세 수입 대비 기업 수 등으로 세분화시켜야 합니다. 전국민의 세금 부담을 하나로 묶는 일은 애초부터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죠.
다만 1인당 세부담에 담긴 의미는 되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의 공식 지표인 조세부담률(총조세/GDP = 20%)로는 세금의 무게를 설명하기 어렵지만, 1인당 세부담(총조세/인구 = 550만원)은 쉽게 와닿습니다. 굳이 무리수를 던지면서까지 '1인당'을 계산하는 이유입니다.
이제 국정감사 시즌을 맞아 국민의 생활을 보여주는 통계 분석 자료가 쏟아질 것입니다. 국회의원들이 만들어낼 '1인당' 수치들이 얼마나 진정성과 공감을 얻어낼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