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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째 예금만 하는 펀드매니저가 K-기업"...밸류업 의무화 해법 될까

  • 2026.04.16(목) 16:26

16일 'PBR 1배 미만 상장사 공시 의무화' 관련 국회 세미나
투자 대신 현금 쌓은 기업들, ROE 하락·저평가로 이어져
공시 의무화냐 인센티브냐…'주가정상화법' 쟁점 올라

연 10% 수익을 기대하고 유명 펀드매니저에게 돈을 맡겼는데 정작 운용자금의 90%를 10년 내내 예금에만 넣어뒀다면 어떨까.

김형균 차파트너스자산운용 본부장은 1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PBR 1배 미만 상장사 기업가치 제고 공시 의무화를 통한 자본시장 선진화 방안' 세미나에서 한국 저PBR 기업의 현실을 이렇게 빗댔다. 투자자가 위험을 감수하고 맡긴 자본을 기업이 생산적으로 쓰지 않고 쌓아두기만 하면서도 시장에서는 제값을 인정받길 기대하는 건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PBR 1배 미만 기업이 많은 국내 증시의 구조적 저평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논의가 이뤄졌다. 전문가들은 자본효율성 제고와 기업의 설명 책임 강화를 중심으로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쌓아둔 자본이 저PBR의 원인"

PBR(주가순자산비율)은 주가를 주당 순자산으로 나눈 값이다. 기업의 시장 가치가 장부상 자산 가치 대비 얼마나 평가받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1배 미만이면 시장이 그 기업을 청산 가치에도 못 미치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현재 국내 증시에는 PBR 1배 미만의 저PBR 기업이 과도하게 많다. 올 2월 말 기준 코스피 상장사 805개 중 508개(약 63%), 코스닥 1702개사 중 704개(약 41%)가 PBR 1배 이하다. 글로벌 비교에서도 한국은 PBR 1배 미만 상장사 비중이 50%에 달해 일본(30%대), 미국(20%대)을 크게 웃돈다. 특히 PBR 0.5배 미만 기업 비중도 한국이 독보적으로 높다.

이날 토론에서는 '자본비용'에 대한 인식 제고가 핵심 과제로 부각됐다. 자본비용이란 투자자가 자본을 공급하는 대가로 요구하는 최소한의 수익률을 뜻한다. 차입금에 이자 비용이 붙는 것처럼, 자기자본도 기업이 대가 없이 써도 되는 자금은 아니란 의미에서 나온 개념이다. 투자자가 위험을 감수하고 자금을 맡긴 만큼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을 기대하기 때문에 기업은 자기자본에 대해서도 그 기대수익률을 충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국내 기업 평가가 여전히 매출이나 영업이익 같은 외형 지표에 치우쳐 있다는 점이다. 이날 발제를 맡은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그동안 우리는 이익이 늘어난 것만 보고 투입 대비 얼마나 성과를 내는지는 안 봤다"며 "100억원을 버는 회사가 1억원을 들여서 버는지, 1000억원을 들여서 버는지는 안 봤다"고 지적했다. 매출 증가나 영업이익 개선만으로는 기업가치를 제대로 판단할 수 없고, 이제는 투입 자본 대비 성과를 따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우진 교수는 자본비용에 대한 국내 기업의 인식이 지나치게 낮다고도 지적했다. 그는 "우리는 자기자본을 0원, 공짜라고 생각한다"며 "투자자의 요구 수익률을 맞춰줘야 하는데 그 인식이 너무 없다"고 일갈했다.

1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PBR 1배 미만 상장사 기업가치 제고 공시 의무화를 통한 자본시장 선진화 방안' 세미나에서 김형균 차파트너스자산운용 본부장이 발표하고 있다./사진=백유진 기자 byj@

두 번째 발제에 나선 김형균 차파트너스자산운용 본부장은 저PBR 기업을 산업 쇠퇴로 구조상 ROE(자기자본이익률)가 낮은 유형과 자본배분에 문제가 있는 유형, 두 가지로 분류했다. 김 본부장은 한국에는 두 번째 유형이 더 많다고 진단했다. 투자와 주주환원 대신 순현금과 비영업자산만 과도하게 쌓아두는 구조가 저PBR로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국내 기업들의 평균 ROE(자기자본이익률)는 현재 5%대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ROE는 기업이 주주가 투자한 자본으로 얼마나 많은 이익을 냈는지를 나타내는 수익성 지표다. 기업의 이익이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더라도 배당이나 자사주 소각 같은 주주환원이 이뤄지지 않아 자기자본이 커지면 ROE는 낮아질 수 있다.

김형균 본부장은 "한국의 주주환원율은 29%로 미국의 92%에 비해 턱없이 낮아 과도한 현금이 쌓이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짚었다.'주가정상화법' 해법 될까

현재 국회에는 2개 사업연도 연속 PBR 1배 미만인 상장사에 대해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를 의무화하는 '주가정상화법'이 논의되고 있다. 기업이 배당 및 자기주식 처분 계획, 사업구조 개선 계획 등을 의무적으로 공시해 시장의 평가를 받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해당 법안을 대표발의한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번 개정안은 기업의 경영활동을 직접적으로 제한하는 규제가 아니라 시장과 주주에 대한 설명 책임을 강화하는 공시 중심의 제도 개선"이라며 "저평가된 이유를 기업 스스로 설명하고 향후 개선 계획을 시장과 공유하도록 함으로써 투자자와의 소통을 확대하고 신뢰를 회복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김형균 본부장은 법안 취지에 찬성하면서도 공시 내용의 구체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 기업들의 경우 과도한 순현금과 투자 부동산 등 비영업자산이 ROE를 떨어뜨리는 주요 원인인 만큼, 비영업자산의 시기별 활용 방안을 상세히 공시하도록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 법 적용 대상을 정할 때도 이미 장기간 저평가 상태가 이어진 기업부터 우선 포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일시적으로 PBR이 낮아지는 경우도 있어 2개 사업연도 이상 연속 1배 미만을 기준으로 삼는 건 합리적"이라면서도 "법 시행 이후부터 2년을 기다리기보다는 시행 시점에 이미 2개 사업연도 이상 연속으로 1배 미만인 기업을 즉시 대상으로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1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PBR 1배 미만 상장사 기업가치 제고 공시 의무화를 통한 자본시장 선진화 방안'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사진=백유진 기자 byj@

다만 이날 진행된 토론에서는 법안 의무화에 대한 신중론도 나왔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밸류업 공시를 법적으로 의무화하는 방안은 다소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패널티 중심으로 제도를 설계할 경우 기업들이 질 높은 계획을 내놓기보다 PBR 1배를 겨우 넘기는 수준의 관리에 그칠 수 있고, 공시 품질도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이효섭 위원은 "최근 밸류업 공시 기업에 배당소득 분리과세 혜택을 부여하기로 하면서 일부 기업들이 밸류업 공시를 간소화하는 등 부작용이 관찰된 바 있다"며 "일본의 경우에도 다수 기업이 PBR과 ROE 중심으로만 공시를 하는 등 한국 밸류업 공시에 비해 품질이 다소 낮다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공시를 적극적으로 하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법을 제안했다. 이효섭 위원은 "PBR 1배 미만 기업에게 상속세 부담을 가중하기 보다 오히려 밸류업 공시를 잘하면 상증세를 깎아주고 법인세를 할인해주고 코스피 지수 등 대표 지수의 편입 비중을 늘려주는 혜택을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반론도 이어졌다. 최준철 브이아이피자산운용 대표는 인센티브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봤다. 그는 "시가총액의 2배에 달하는 현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배당 성향이 한 자릿수이고, 최대주주 일가가 보유한 특수관계 법인으로 터널링을 하고 있는 회사도 아직 있다"며 "이런 회사들이 상당수 존재하는 한 제도적인 강제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도 효과가 지속되려면 최대주주의 인식 전환이 전제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김우진 교수는 "회장님이 주가 상승을 반기지 않으면 '도로아미타불'"이라며, 주가 상승이 최대주주 본인에게도 이득이 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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