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성장펀드가 대기업 지원에 나선 것을 두고 적절성 논의가 이어지는 가운데 기업 규모보다 첨단산업 생태계 파급효과를 봐야 한다는 전문가 진단이 나왔다. AI(인공지능)·반도체 등 첨단전략산업은 대규모 장기 자금과 위험 분담이 필요한 만큼 정부가 초기 리스크를 나눠 민간 투자를 끌어들여야 한다는 설명이다."첨단산업은 자본 경쟁...제때 대규모 자금 투입해야"
이병윤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18일 한국산업은행 IR센터에서 열린 '국민성장펀드 성과점검 및 발전방향 세미나'에서 국민성장펀드 지원 방향과 최근 제기된 쟁점을 평가했다.
이 연구위원은 "첨단전략산업은 연구개발부터 상용화까지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고 투자 회수기간도 길다"며 "민간에만 맡겨 놓으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수준에 비해 과소투자가 이뤄질 수 있어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중국·일본 등 주요국이 반도체와 AI 등 전략산업에 보조금과 정책자금을 투입하고 있는 만큼 한국도 국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국민성장펀드가 자체 자금 조달 능력이 있는 대기업까지 지원하는 게 적절하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국민성장펀드가 중소기업 지원 중심의 일반 정책금융과는 다른 목적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위원은 "국민성장펀드는 중소기업 지원해서 활성화하는 정책금융이 아니라 미래 성장 사업 지원을 통해 우리나라의 성장 동력을 준비하는 펀드"라며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가능성이 높은 산업에 지원하는 것이기에 대기업 중소기업이든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AI나 반도체는 기술력의 싸움을 넘어 자본을 어느 정도 투입하느냐의 승부로 들어가고 있다"며 "대기업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면 생태계 내 수많은 소부장 중소기업들의 동반 성장이 가능하다"고 부연했다.
이날 진행된 토론에서 국민성장펀드의 직접투자 1호 기업인 리벨리온의 박성현 대표도 같은 취지의 의견을 냈다.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는 국민성장펀드가 자금을 넓게 나눠주는 방식이 아니라 글로벌 경쟁에 필요한 기업에 제때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는 방식으로 운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국민성장펀드 지원은) 삼성 같은 대기업에 들어가는 게 맞다"며 "우리나라 대기업도 글로벌 기업과 비교하면 갖고 있는 캐피탈이나 리소스가 부족하기 때문에 사회적 약자들에게 n분의 1로 나눠주는 게 아니라 정말 필요한 곳에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민간자금 선순환 구조 만들려면…"제도적 유인책 필요"
하건형 신한투자증권 연구위원은 국민성장펀드가 '국가 자본주의 1.0'에서 '2.0'으로 넘어가는 전환점이 돼야 한다고 평가했다. 과거 국가가 산업의 관리자와 후원자 역할에 머물렀다면 앞으로는 위험을 함께 부담하는 투자자와 동반자로 역할이 바뀌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 연구위원은 이를 위한 국민성장펀드의 핵심 역할 중 하나로 민간 자금의 선순환 구조 확보를 꼽았다. 정책금융이 민간을 대체하는 방식이 아니라 민간이 들어가기 어려운 초기 시장과 초기 위험을 공공이 먼저 감당해 민간 자금이 뒤따라올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다.
그는 "정책금융의 목적은 민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 진입이 어려운 초기 시장과 초기 위험을 공공이 감당해 민간 자금의 선순환 구조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가의 역할도 관리자와 후원자에서 투자자와 동반자로 바뀌는 것이 2.0의 취지"라며 "성공 지표도 물동량, 수출액, 가동률이 아니라 유니콘 기업 수, 기술 이전, 자본 회수율 등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증권업계에서는 국민성장펀드 참여 확대를 위한 제도적 유인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황병준 미래에셋증권 종합금융본부장은 "국민성장펀드는 모험자본으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증권사, 특히 종투사에서도 관심을 가질 수 있고 투자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다만 종합금융투자사업자의 참여 범위와 규모를 확대하려면 유동성 비율, 약정금액에 대한 우발채무 한도, 레버리지 비율 등 규제 지표에서 합리적으로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발행어음과 IMA(종합투자계좌)를 운용하는 종투사는 모험자본 공급 의무가 있는 만큼 국민성장펀드 투자 여력 확대를 위해 규제 부담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황 본부장은 "단기 자금으로 장기 기업금융과 모험자본에 투자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만기 미스매칭과 특정 자산 쏠림 우려를 완화할 수 있도록 규제 효율 측면에서 합리화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종투사들의 추가 투자도 가능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국민성장펀드 투자 기업과 금융기관을 연결하는 네트워크 플랫폼 필요성도 제기했다. 황 본부장은 "직간접 투자 과정에서 기업별 투자 한도 문제로 추가 투자가 어려워지거나 예상치 못한 일시적 자금 수요가 발생할 수 있다"며 "국민성장펀드에 투자한 금융기관과 기업을 연결할 수 있는 네트워크 플랫폼이 있다면 자금 조달과 중개가 더 원활해질 것"이라고 첨언했다.
금융위도 민간 금융기관 참여 확대 필요성에 공감했다. 강성호 금융위 국민성장펀드 총괄과장은 "더 많은 민간 금융기관이 참여하기를 바라고 있다"며 "민간 자본이 더 적극적으로 펀드에 출자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이어 "자본 규제 완화와 관련해 모자란 부분이 있으면 더 검토하겠다"며 "민간 주도 협의체나 플랫폼을 통해 금융기관과 투자 대상 기업을 연결하는 방안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모두발언에서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국민성장펀드는 단순한 정책펀드가 아니라 우리 경제가 직면한 구조적 도전을 넘어서기 위한 미래산업 투자 플랫폼이자 금융의 관성을 바꾸는 생산적 금융 전환의 대표 모델"이라며 "제기된 여러 의견을 면밀히 검토해 국민성장펀드가 대한민국 미래성장을 뒷받침하는 핵심 기반이 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