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가 최근 철도 사고가 급증하고 있어 현장점검을 한 결과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안전 관리 체계가 눈에 띄게 부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수를 미루거나 신입 직원들에게 위험한 업무를 많이 맡기는 등 안전 우선의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판단이다.
이에 따라 국토부 내에 안전 전담 조직을 만들고 코레일의 안전 관련 조직과 체계를 뜯어고치는 등의 대책을 마련했다. 또 코레일 내에 독립적인 안전 조직을 만드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기본 안전 수칙 안 지켜…준비 없이 근무 체계 변경"
국토부는 지난해 말 발생한 오봉역 사망사고와 무궁화호 궤도이탈 등 최근 급증하는 철도 사고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철도안전 강화대책'을 수립했다고 17일 밝혔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해 철도 사고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1월에 발생한 KTX 탈선 사고 등 세 차례의 궤도 이탈 외에도 코레일 작업자가 4명이나 사망하는 등 부실한 안전 관리 체계가 도마 위에 올랐다.
실제 그간 꾸준히 감소하던 철도 사고는 지난 2021년부터 다시 늘어나기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레일에서 벌어진 안전 사고는 지난 2012년 222건에서 2020년 40건으로 지속해 줄었는데 2021년 48건, 지난해 66건 등 다시 증가하는 추세다.
이에 따라 국토부는 민간 철도안전 전문위원단 현장 점검과 관계 기관 대책회의 등을 통해 코레일의 철도 안전 체계의 문제점을 짚었다.
우선 무궁화호에서 지난 3년간 총 6회의 궤도틀림이 발견됐는데 코레일은 보수를 지연하거나 누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신호가 계획대로 전환됐는지 확인을 하지 않고 기관차를 운행하는 등 기본 안전 수칙이 지켜지지 않았다.
안전도 평가 등 충분한 사전 준비 없이 근무 체계를 변경하기도 했다. 체계 변경으로 인해 현장에 투입되는 하루 평균 인력은 줄었다. 특히 경험이 부족한 신입 직원들이 위험한 업무를 많이 맡는 등 조직 관리에 있어 안전 우선의 원칙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차량이 고속화하고 선로가 연장하는 등 철도 여건이 변화하고 있는데도 인력 위주로 차량을 정비하고 시설을 유지보수하는 구시대적인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열차 운행을 통제하고 지시하는 '관제 기능'도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레일이 전담하는 관제는 구로에 있는 철도교통관제 센터를 비롯해 각 철도역과 본사 등에 기능이 분산해 있다. 사고나 운행 장애시 열차 운행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독립적으로 수행하기 어려운 체계라는 지적이다.
심지어 코레일 내에서는 관제 업무 특성상 책임은 크고 권한과 처우는 나쁜 영향으로 직원들이 기피하는 경향까지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코레일에 관제·유지보수 전담 조직 신설 추진
국토부는 이런 부실한 안전 관리 체계를 뜯어고치는 방안을 마련했다. 우선 철도 현장에 안전 문화가 뿌리내릴 때까지 민간철도안전 전문위원 100여 명과 청년 제보단 100여 명 등을 통해 안전 취약 요인을 상시 점검할 계획이다.
또 코레일 자체적으로 차량 정비와 시설 유지보수 작업 품질을 감독·검수할 수 있도록 현장 견제 기능을 보완하고, 이러한 감독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중장기적으로는 국토부 지방국토관리청에 철도안전관리를 전담하는 조직을 보강할 예정이다.
열차의 운행 속도와 밀도(통과톤수) 등을 고려해 점검 및 유지보수 기준을 차등화하는 '선로 등급제'도 도입한다. 작업자의 업무와 책임을 명확히 하는 유지보수 실명제를 강화하고, 철도시설의 운영 이력을 DB화해 외부에 공개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업무량이 많은 역사에 중견 직원과 신입 직원이 균형 있게 분포할 수 있도록 하고, 경험이 많은 중간관리자가 현장 책임을 맡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내놨다. 신입 직원의 현장 교육을 확대하고 교육 훈련 주기를 단축하는 한편, 신규 광역 기관사에 대해서는 선로 등 현장에 익숙해진 후 차량을 운전할 수 있도록 전철 차장 업무를 거쳐 기관사로 투입하도록 한다.
현행 도보 점검을 원격감시와 검측차량 등으로 단계적으로 대체하는 등 인력 위주의 업무 전반을 자동화·첨단화하는 '스마트 유지보수 마스터 플랜'을 올해 하반기에 수립한다. 선로 내부 결함을 조기에 파악하는 초음파 장비를 확충하고, 그간 수동으로 취급하던 선로 전환기를 자동 방식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차량 기술이 고도화됨에 따라 정비 분야의 안전성과 전문성 제고를 위해 원천기술을 보유한 제작사의 정비참여를 활성화하고 제작·정비·운영 간 명확한 사고 책임 분담 기준도 마련한다.
관제 업무 체계도 개편한다. 우선 코레일 본사와 주요 역 등에 흩어진 관제 기능을 통합해 기능을 강화하고 관제의 전문성도 향상시켜 비상 대응 역량을 강화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109개역에 흩어진 로컬 관제 기능을 단계적으로 중앙 관제로 수용하도록 한다.
터널, 교량 등 고난도 기술이 필요한 시설유지보수 업무는 국가철도공단의 관리·감독을 강화한다. 공단 내 전문 심의위원회를 설치해 주기적인 유지보수 실적 검토 등 외부 모니터링 체계를 마련한다.
관제와 유지보수 등 철도 안전을 위한 기능이 정상적으로 수행될 수 있도록 코레일 내 안전 부사장 신설 등 독립적인 안전조직으로 통합, 운영하는 방안도 기획재정부 및 코레일과 협의를 거쳐 추진한다.
국토부는 '철도안전 강화대책'과 관련, 주요 10대 과제를 선정해 발표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안전관리체계 점검‧개선 ▲차량정리 자동화 ▲선로작업시간 확보 ▲선로유지관리지침 강화 ▲철도시설 종합정보시스템 개통 ▲전문컨설팅 결과 발표 ▲관제선진화 방안 ▲차량정비 책임 명확화 ▲스마트 유지보수 마스터 플랜 ▲시설유지보수 체계 개선방안 등이다.
또 전문 컨설팅 용역을 통해 관제‧시설유지보수 등 철도안전 체계를 원점에서 심층진단하고, 올해 7월까지 근본적인 개선 방안도 내놓을 계획이다. 코레일에 집중된 관제·시설유지보수 등의 기능을 재편하는 방안이 담길 전망이다.
어명소 국토부 제2차관은 "이번 '철도안전 강화대책'이 현장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지속해 이행 상황을 점검할 것"이라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철도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