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정비사업 추진 7년 차인 경기도 안산시 소재 '안산중앙주공6단지'. 지난해 12월 포스코이앤씨를 시공사로 선정하며 본격적인 사업 시작 기대감이 부풀었는데요. 빠른 사업진행을 기대했던 조합원(소유주)들의 바람과 달리 5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척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유는 조합원들로부터 사업시행을 수탁한 신탁사, 그리고 시공사로 선정된 포스코이앤씨 간 갈등으로 도급계약이 체결되지 읺아서죠. 안산시에 제출된 정비계획변경안도 조합원 간 이견이 많아 현재 인허가 검토가 중단된 상태랍니다.
주변 단지들이 재건축을 통해 올해 입주를 기다리는 터라 사업 지체는 더욱 도드라집니다. 입장이 엇갈린 신탁사와 시공사를 각각 지지하는 쪽으로 조합원이 나뉘면서 갈등도 심해질 우려가 보입니다.
시공사 뽑아두고 도급계약 아직…왜?
조합의 입찰참여 규정대로라면 본래 3개월 내 공사 도급계약이 체결됐어야 합니다. 5개월이 넘게 계약이 체결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공사비'입니다.
포스코이앤씨는 입찰 당시 3.3㎡(평)당 578만원의 공사비를 내세워, 대우건설(3.3㎡당 599만원 제시)을 제치고 시공사로 선정됐습니다. 공사비 총액은 3000억원대, 공사기간은 37개월을 제안했습니다.
최근 재건축 공사비가 평당 800만~900만원대에 이르는 걸 감안하면 한참 낮은 수준입니다. 이는 사업시행을 조합이 직접 하는 것이 아니라 신탁사에 맡긴 점이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단지의 시행사는 한국토지신탁과 무궁화신탁이 공동으로 맡고 있습니다.
신탁사가 시행사인 경우 시공사는 공사진도(공정률 등)에 따라 공사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시공사가 조합원 및 일반 분양을 통해 공사비를 회수하는 일반적인 방식에 비해 공사비를 못 받을 위험이 적죠. 그래서 시공사가 더 낮은 공사비를 제시할 수 있다고 합니다.
갈등은 포스코이앤씨가 입찰참여 당시 내용과 다르게 도급계약서 변경을 요구하면서 불거졌다는 게 신탁 측 주장입니다. 포스코이앤씨는 도급계약서에 '철거지체상금과 책임준공 내용'을 삭제하고, '준공에 임시사용승인 포함', '착공 후 공사비 인상 가능' 조항 등을 추가해줄 것을 요구했답니다.
조합원들로 구성된 정비사업위원회(이하 정사위) 위원 몇몇이 이 요구를 받아들여 공사도급계약서 수정 전체회의 개최를 신탁사에 요구했는데요. 조합원 대신 사업주체(시행)가 되는 신탁사는 "소유주에게 불리한 내용"이라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계약이 체결되지 않았습니다.
시행사 측은 도급계약서 변경안을 받아들일 경우 평당공사비가 700만원대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또 임시사용승인 단계에서 준공을 인정하면 매매나 임대 등이 불가능해 담보대출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소유주에게 불리한 데다 공사비 증가로 사업성이 낮아져 사업 진행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게 정사위 계약 수정안에 대한 시행사 측 입장입니다.
공사비 갈등에 멈춘 '재건축 시계'
반면, 시공사인 포스코이앤씨는 근거 없는 공사비 증가 예상액으로 시행사가 분담금 증가를 주장한다는 입장인데요. 불가항력 상황에 해당하는 급격한 물가상승이 발생해 공사진행에 지장이 발생하는 경우 정도를 빼고는 도급공사비에는 변동이 없다는 입장입니다.
포스코이앤씨 측은 정사위가 요구한 도급계약서 변경안 관련 전체회의를 시행사가 개최하지 않고 있는 탓에 기한을 넘도록 도급계약을 체결하지 못했다는 입장입니다. 시행사가 오히려 소유자들에게 사업 지연 피해를 안기고 있다고도 주장합니다.
또한 정사위와 소유주들에게 시행사가 안산시에 제출한 정비계획변경안이 과도한 기부채납 등으로 소유주에게 불리할 수 있다는 등의 문제점도 지적하고 있죠.
포스코이앤씨 측은 최근 소유자들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에서 "시행사가 정비계획 변경을 하지 않아 소유주에게 100억원 이상 분담금 폭탄을 떠안게 하고 있다"면서 "시행사가 이를 거부하고 대안 없는 시공사 해지안을 상정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포스코이앤씨, 내달 1일 시공사 선정 철회 기로
시행사는 포스코이앤씨의 시공사 선정 철회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지난달 17일 포스코이앤씨에 '4월30일까지 도급계약을 입찰참여규정(안)대로 체결하지 않으면 입찰보증금(대여금)을 몰취하고 시공사 선정 무효절차를 진행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전달했죠.
또 기한까지 계약이 진행되지 않자 오는 6월1일 '시공자 포스코이앤씨 계약 이행 최고의 건'을 1호 안건으로 상정해 소유자 전체회의를 소집했어요. '최후통첩'인 셈이죠. 민법(제544조)에서는 일방이 채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 상대방이 상당 기간을 정해 이행을 최고하고 기간 내 이행하지 않을 때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어요.
시행사는 시공사 선정 철회 시 90억원 규모의 입찰보증금 몰취가 가능하고 이후 새로운 시공사를 찾아 다시 재건축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에요.
시행사 측은 "공사도급계약 주체가 시행사임에도 불구하고 포스코이앤씨가 소유주 대표 단체인 정비사업위원회 의결을 근거로 공사도급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이는 입찰참여규정(제8조 제2항, 제5조 제1항) 상 사업선정무효, 입찰보증금 몰취 사유에 해당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정사위가 요구한 전체회의 소집요구는 도급계약서 수정으로 분담금 인상 등을 일으킬 수 있어 개최할 수 없다는 내용을 공문을 통해 밝혔다"고도 했어요.
아울러 전체회의를 앞두고 정사위가 홍보요원을 동원해 소유주들에게 전체회의 안건 반대 서면결의서를 받고 있다면서, 이것이 도정법 제29조에 따라 시행사가 계약하지 않은 홍보요원 계약으로 불법사항이라 지적하고 있죠.
늦어지는 공사…귀책사유 따라 '배상책임'
만약 시공사 선정이 철회된다면 시공사와 조합 간 법적 손해배상책임 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습니다. 재건축 조합(시행사)이 입찰방식으로 총회를 개최해 시공사를 선정했을 경우 도급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더라도 본계약에 대한 의무가 생기죠.
최근 법원은 공사도급계약이나 가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어도 시공사 선정 시 본계약 체결을 위한 일종의 '예약'이 성립된 것으로 보는 판결을 내놨는데요. 이에 시공사 선정 해지와 관련해 이행이익과 관련한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오고 있습니다.
즉 시행사나 시공사 모두 어느 한쪽이 정당한 이유 없이 계약체결을 거부할 경우 상대방에게 '예약' 채무 이행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부동산 정비사업 분야 전문 변호사는 "시공사 선정 총회 즉시 시공사에는 계약체결에 대한 의무가 발생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시공 계약과 관련해 채무 불이행(이행이익)에 대한 손해배상을 해야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계약을 체결해 진행했을 때의 이익만큼 손해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뜻이죠.
이 변호사는 "계약체결을 하지 못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 하는 귀책사유에 따라 손해배상책임 대상은 달라질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시공사 측에서 도급계약을 체결하지 못한 이유가 시행사나 조합에 있다며 귀책사유를 돌린 것이 인정될 경우,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당사자가 바뀔 수 있다는 겁니다.
정비사업 1위 달리는 포스코이앤씨…결과는?
그런데 포스코이앤씨는 최근 부산 촉진2-1구역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맞고 있어요. 시공사 측이 제안한 특화안 적용을 놓고 조합과 공사비 관련 이견이 벌어지며 도급계약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요. 이 때문에 시공사 선정 무효 논란이 일고 있다고 해요.
지난 2월에는 부산 괴정5구역에서 조합과 공사비 협상에 실패하며 시공사 계약이 해지되기도 했습니다. 포스코이앤씨는 올해 1분기 10대 건설사 중 유일하게 수주액 2조원을 넘기며 정비사업 수주 1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재건축 사업장 곳곳에서 공사비 갈등이 일고 있어 앞으로의 상황은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안산주공6단지의 재건축 공은 내달 1일 전체회의로 넘어갔습니다. 소유자들의 투표 결과에 따라 포스코이앤씨의 시공사 선정 여부가 갈릴 것으로 보입니다.
안산주공6단지는 지난 25일에도 신탁사와 시공사 모두 주민 대상 설명회를 열었답니다. 막판에 조합원 표심을 확보하기 위해섭니다. 시행사인 신탁이 먼저 오후 2시 설명회 개최를 알렸고, 이후 포스코이앤씨는 이보다 30분 이른 오후 1시30분에 설명회를 잡았다고 하네요. 며칠 뒤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사업이 순항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