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크리스마스를 엄청 좋아하긴 하나 봐요. 한 달도 더 전부터 길거리 곳곳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는가 하면, 커피숍에서 캐럴도 간간이 흘러나오기 시작하네요.
개인적으론 곧 한 살 더 먹는다는 생각에 썩 유쾌하진 않지만, 사람들이 잠시나마 팍팍한 현실을 잊고 마음이 순두부처럼 몽글몽글해지는 이 시기가 그리 나쁘지만도 않아요.
이 시기되면 매년 질리지도 않고 어김없이 돌아오는 것들이 몇 가지 있죠. 각설이나 꼴뚜기 왕자 이야기는 아니고요.
지금 말하려는 건 송년회, 망년회, 단합대회, 워크샵 등 다양한 이름으로 위장한 연말 술자리들, 집에서 TV 켜놓고 꾸벅꾸벅 졸다가 시작 부분을 꼭 놓치곤 하는 제야의 종소리, 별 의미 없이 주고 받는 신년인사 같은 연례 행사인데요.
그 중에서도 어느새 우리 연말 문화 중 한 자리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는 카페 다이어리 이야기에요.
그래요. 올해도 어김없이 다이어리 시즌이 돌아왔군요. 연말 다이어리 사은 이벤트는 지금이야 커피 좀 판다 하는 카페 치고 안 하는 곳이 없는, 거의 국민 이벤트 수준인데요.
이걸 맨 처음 시작한 곳은 역시나 카페 업계 1위 업체 스타벅스. 2003년부터 했다고 하니 벌써 올해로 17년째 이벤트네요. 너 오래되긴 했구나.
수많은 카페 다이어리 중 가장 인기 있는 녀석도 역시 스타벅스 다이어리죠. 사실 17번이나 다이어리 받았으면 질릴 만도 하잖아요? 그런데 어째 스벅 다이어리 인기는 점점 더 올라가기만 하는 것 같아요.
인기 색상은 삽시간에 품절되고, 온라인 중고장터에서도 활발하게 거래되는 이 다이어리. 심지어 다이어리를 받기 위해 모아야 하는 쿠폰인 프리퀀시를 낱개로 사고팔기도 한다는데요.
도대체 이게 뭐길래 사람들이 난리가 났을까. 궁금하지 않으세요? 그럴 것 같아서 직접 쿠폰 모아서 다이어리 받는 전 과정을 독자 여러분 대신 체험해봤어요.
'이거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해서 인터넷 막 두들기다 보니까 이 다이어리를 하루 만에, 그것도 최저가로 구매하는 방법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기왕 하는 거 '극한의 가성비로 스타벅스 다이어리 얻기'. 이름하여 '에스프레소 신공'을 직접 시도해봤어요. 싸게 살수록 좋은 일 아니겠어요? 물론 예산이 부족해서 그런 건 절! 대! 아니에요.
다이어리를 받으려면 커피 마실 때마다 주는 스타벅스 쿠폰 'e-프리퀀시'를 모아야 하는데요. 10장도, 20장도 아닌 딱 17장이 필요해요.
스타벅스 말로는 "일주일에 두 번 이상씩 한 달 평균 8회 정도 매장을 방문하는 고객을 단골로 분류하는데 다이어리 증정 이벤트가 2달 정도 진행되는 것을 고려해 8잔X 2달에 1잔을 추가해 17잔으로 정했다"라고 하네요.
자 이제 본격적으로 다이어리를 향한 대장정을 시작해볼게요. 일단 스타벅스 어플을 통해 결제할 수 있는 선불카드인 e-gift 카드에 돈을 충전해야 해요.
정확히 7만원을 충전하세요. 제 전자두뇌로 계산해보니 다이어리를 얻으려면 6만 2700원이 필요해요. 근데 충전은 만원 단위로만 할 수 있거든요.
왜 귀찮게 현금이나 신용카드로 안 하고 e-gift 카드로 결제하냐고요? 다 이유가 있죠. 이렇게 결제하면 에스프레소 샷이나 시럽 같은 걸 공짜로 하나 받을 수 있어요. 한 잔 가격으로 두 잔을 받는 셈. 핵이득인 부분 인정?
자, 여기에 개인컵, 텀블러 혜택을 추가할거예요. 개인컵을 쓰면 300원 할인을 받을 수 있거든요. 환경을 보호한 보상으로 말이죠.
정리 한번 할게요. 최고의 가성비를 위한 눈물겨운 노력으로 원래 금액인 3600원-개인컵 할인 300원=3300원의 가격으로 에스프레소 투 샷을 받을 수 있었어요. 자, 이제 이 과정을 총 14번 반복할 거예요. 커피를 한! 잔! 씩! 한! 잔! 씩! 주문할 거거든요.
왜냐! 그것은 스타벅스의 또 다른 쿠폰, '별'때문이에요. 별을 12개 모으면 스타벅스 음료 1잔으로 교환할 수 있어요.
이번 기획의 슬로건이 뭡니까? '극한의 가성비로 스타벅스 다이어리 얻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별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죠.
그거랑 음료 한 잔씩 주문하는 거랑 뭔 상관이냐고요? 아이 참. 다 이유가 있죠. 이건 스타벅스 정책 때문인데요. 스타벅스는 음료를 10잔 사든, 20잔 사든 한 번에 결제하면 별을 하나밖에 안 줘요. 많이 구매하는 것보다 자주 구매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 기업 정책 때문이래요.
별은 3분에 한 번씩 받을 수 있는데요. 그래서 음료 한 잔 시키고... 타이머로 3분 재고... 시간 되면 한 잔 또 시키고... 이렇게 14번 해야 별을 최대한 많이 받을 수 있는 거죠.
...여차여차 그렇게 해서 에스프레소 14잔을 받았어요. 하.. 사실 좀 힘들었어요. 3분마다 음료 시켜서 개인컵으로 받으러 왔다 갔다 하니 나중에는 점원이 제 얼굴을 외우더라고요. 그래서 아예 큰 개인컵 하나를 맡겨 두고 주문 들어올 때마다 거기에 담아달라고 했더니 저를 바라보는 그 묘한 눈빛이란...
다행인 건 스타벅스 직원분의 말에 의하면 이렇게 하루 만에 에스프레소 신공을 통해 다이어리를 얻어 가는 분들이 꽤 많다고 하더라고요.
아무튼 커피를 산 총 금액은 에스프레소 14샷 해서 4만 6200원. 여기에 엑스트라 추가 혜택을 받아서 총 28샷의 에스프레소를 얻었고요. 여기에 가장 저렴한 시즌음료(토피넛 라떼/홀리데이 민트초콜릿) 5800원-개인컵 할인 300원=5500원x3잔=1만 6500원을 추가로 구매했어요.
그래서 다이어리를 얻는 데 쓴 돈은 총 6만 2700원. 별을 모아서 추가 무료 음료를 받으려고 각각 한 잔씩 주문하다보니 1시간이 조금 넘게 걸리더라고요.
...알아요. 여기까지 읽은 분 중엔 "저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이냐"라고 생각하는 분 있다는걸.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근데 하다 보니까 이게 은근히 재밌더라고요. 한 장 한 장 프리퀀시를 모을 때마다 뭔가 게임 퀘스트 깨는 느낌도 나고요.
의외로 성취감도 느껴져요. 어렵사리 얻은 스타벅스 다이어리가 더 예뻐 보이기도 하고요. 아직도 회사 냉장고에서 잠자고 있는 막대한 양의 에스프레소는 덤이고요.
스벅 다이어리 좋아하시는 분들은 저희가 소개해드린 방법을 통해 최저가로 구매하시고요. 아직도 '스벅 다이어리 얻으려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분들은 기사와 영상으로 대신 즐겨주세요. 지금까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스타벅스 편이었습니다. 그럼 이만 총총.
ps. 아 참, 28샷이나 되는 에스프레소를 어떻게 하냐고요? 뭘 어떻게 해요. 먹어야죠. 아니 뭐 그럼 이 아까운 걸 버리려고 했어요? 그럼 어떻게 먹느냐. 얼립니다. 얼려서 두고두고 먹을 거예요.
얼음틀에 에스프레소를 부어주세요. 잠깐만요. 그냥 막 부으면 백 프로 흘러 넘치고 난리 부르스 추거든요? 가급적이면 작은 컵이나 깔때기를 사용해서 부어주세요. 이렇게 얼리고 나면 짠. 에스프레소 큐브가 완성됩니다. 이 큐브를 담고. 큐브에 우유를 부어 맛있게 즐겨주시면 됩니다. 그럼 이제 진짜로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