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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강국' 새 길 열었던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

  • 2020.08.04(화) 09:55

'국내 최초' 국산 개량신약 개발 및 기술수출
혁신 신약 R&D에 전력…'제약강국' 밑거름 마련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의 신약 연구개발에 큰 족적을 남긴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이 숙환으로 지난 2일 타계했다. 임 회장은 최초로 국산 개량신약을 개발하고 적극적인 연구개발로 대규모 기술수출을 이뤄내는 등 혁신 신약 연구개발(R&D) 열풍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그동안 복제의약품으로 내수 시장 공략에만 혈안이 돼 있던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을 글로벌화로 이끈 선구자다.

◇ 격변의 시기, 제약산업에 뛰어든 약사

임 회장은 1940년 3월 경기도 김포에서 태어나 1965년 중앙대 약학대를 졸업한 약사 출신이다. 졸업 후 서울 종로구 동대문에 ‘임성기약국’을 개업했던 그는 1973년 ‘한미약품’의 모태가 된 ‘임성기제약’을 설립하면서 제약산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세계 석유파동과 경기침체 등 악조건 속에서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지속하며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던 시기다. 정부는 원료의약품 육성정책을 강화하면서 국산화를 진척시켰다. 그 결과, 제약업계도 1971년부터 1975년 사이에 연평균 34.7%에 달하는 성장세를 거뒀다.

국내 제약산업에 찾아온 격변의 시기를 임 회장은 ‘기회’로 만들었다. 그는 타 제약사들과 마찬가지로 특허가 만료된 오리지널 의약품을 복제한 '제네릭'을 판매하면서 회사를 키웠다. 당시 국내에서는 물질특허가 인정되지 않았던 탓에 의약품 관련 특허는 대부분 제조방법으로 등록됐다. 제조방법특허만 침해하지 않으면 오리지널과 동일한 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었다.

이렇게 원료의약품 제조 및 생산 기술이 성장하면서 국내 의약품 시장은 그야말로 제네릭 춘추전국시대를 맞았다. 그러나 1986년 물질특허제도가 도입되면서 오리지널 의약품의 물질에 대한 법적인 보호가 이뤄졌고 제네릭 출시가 어려워졌다.

◇ 국내 최초 기술수출개량신약’…제약산업 새 역사

임 회장은 ‘한국형 R&D 전략을 통한 제약강국 건설’을 목표로 연구개발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국내 제약업계의 ‘기술수출’ 포문을 연 것도 그의 꿈에서 비롯됐다. 임 회장은 지난 1989년 국내 제약업계 최초로 기술수출을 이뤄낸 장본인이다.

자체 개발한 제3세대 항생물질 주사제인 ‘트리악손’의 제조기술을 글로벌 제약기업인 '로슈(Roche)'에 당시 550만 달러에 기술수출한 바 있다. 이어 1997년에는 노바티스에 면역억제제 ‘네오플란타’의 제제화기술(마이크로 에멀전)을 수출했다. 수출 규모는 6300만 달러로 당시 최대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이었다.

특히 2004년에는 국내 최초로 고혈압 치료제 개량신약인 ‘아모디핀’을 개발하면서 ‘개량신약’의 활로를 열었다. 물질특허로 제네릭 출시가 어려운 시기가 이어지던 때에 기존 약물의 물질 중 하나인 염을 신규 염으로 변경해 특허회피를 도모하는데 성공했다.

‘아모디핀’은 국내 제약산업을 연구중심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정부는 2008년 ‘개량신약 허가제도’를 도입했다. 임 회장이 국내 '개량신약'의 역사를 쓴 셈이다.

◇ 혁신 신약 기술수출 바람 불어넣은 한미약품

임 회장은 '기술수출'에서도 남다른 역량을 발휘했다. 한미약품은 국내 최초로 글로벌 제약사에 제조기술을 기술수출한 데 이어 2011년 신약 플랫폼 기술인 ‘랩스커버리’와 ‘오라스커버리’ 개발에 성공했다.

현재 개발 중인 호중구감소증치료 바이오신약 '롤론티스', 당뇨 신약 '에페글레나타이드' 등에 적용한 랩스커버리는 투여 횟수 및 투여량은 줄이면서 짧은 반감기를 늘려주는 기술이다. 오라스커버리는 주사제를 경구용 제제로 바꿀 수 있는 기술로, '포지오티닙', '오락솔' 등에 적용해 개발중이다.

2011년 당시 한미약품은 2개의 플랫폼을 모두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임상시험에 필요한 막대한 비용에 비해 투입할 수 있는 자금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때마침 미국 바이오기업 아테넥스(옛 카이넥스)에 ‘오라스커버리’를 기술수출하면서 수취한 기술료를 더해 혁신 신약 연구개발에 온 힘을 쏟았다.

그의 선택은 탁월했다. 2015년 보유 중인 플랫폼 기술을 적용한 신약 후보물질 8건의 기술수출에 성공했다. 이어 2016년에도 1건의 기술수출을 올렸다. 현재 9건 중 7건의 계약이 해지됐지만 5년간 기술료로 얻은 수입만 6629억 원에 달한다.

특히 2011년 아테넥스사에 기술수출한 ‘오락솔’과 스펙트럼사에 2012년 기술수출한 ‘롤론티스’의 미국 품목허가가 가시화되고 있어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들 품목이 미국 출시에 성공하면 기술수출한 제약사로부터 매출에 따른 로열티를 지속적으로 받게 된다.

◇ 제약업계, 제약강국 향한 혁신경영정신 잇는다

임 회장은 ‘제약강국을 위한 혁신경영’을 주창해왔다. 이를 증명하듯 한미약품의 기술수출은 자사뿐만 아니라 국내 제약산업계 전반에 변화를 불러왔다. 유한양행, GC녹십자, JW중외제약 등도 줄줄이 기술수출 성과를 냈다. 자체 연구개발 기술에 대해 폐쇄적이었던 국내 제약업계에 한미약품이 개방형 혁신(오픈이노베이션)의 본보기가 됐다.

임 회장은 2018년 신년사에서 “한미약품의 창조와 혁신, 도전은 대한민국이 제약강국으로 도약하는데 밑거름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며 “창립 50주년이 되는 2023년까지 한미는 세상이 깜짝 놀랄만한 일들을 해낼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임 회장은 안타깝게도 우리나라가 글로벌 제약강국으로 우뚝 서는 모습을 보지 못한 채 떠났지만 그의 정신은 국내 제약바이오기업들의 혁신 신약 개발을 향한 발걸음 속에 여전히 깃들어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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