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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담뱃세 인상? 아니 땐 굴뚝일까

  • 2020.08.26(수) 16:29

민간 학회 학술대회서 '물가에 맞춰 매년 인상' 주장
"액상형 전자담배 세금 인상 논란이 초래한 '불신'"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담뱃세를 매년 3% 정도 상승하도록 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지난 21일 한국지방세학회에서 '2020 하계학술대회'를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담배소비세에 '물가연동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는데요. 쉽게 말해 그간 해왔던 것처럼 5년, 10년 주기로 담뱃세를 한꺼번에 올리는 것보다는 물가에 연동해 매년 꾸준히 올리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의견입니다. 통상 물가는 조금씩 오르게 마련이니 '물가연동제'라는 건 담뱃세도 지속해 올리자는 말과 같다고 보면 됩니다.

그러면서 물가와 연동해 매년 3%가량 담뱃세를 올리는 게 '합리적'일 거라는 의견도 덧붙였는데요. 단순히 물가연동제를 적용할 경우 최근처럼 물가가 많이 오르지 않는 상황에서는 연간 1% 인상에 그칠 수 있으니 여기에 2%포인트 정도를 더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그래야 담뱃세를 올리는 '효과'가 있을 거라는 설명입니다. 통상 정부는 흡연율을 낮춰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담뱃세를 올리곤 하는데요. 연간 1% 올린다고 흡연율이 낮아지겠냐는 겁니다. 

이런 주장이 알려지자 담배 업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최근 담뱃세가 오른 건 5년 전인 2015년인데요. 이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으니 세금을 다시 올리려는 움직임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겁니다. 담뱃세를 올리면 당연히 담뱃값도 올라갑니다. 요즘처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등으로 서민 경제가 어려운 와중에 담뱃값을 또 올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하지만 의아한 점도 있습니다. 이런 주장이 나온 건 민간 학회의 학술대회입니다. 학술대회라 하면 학자나 전문가들이 모여 연구 결과 등을 토대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자리입니다. 물론 이들처럼 오피니언 리더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사회적인 논의가 시작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이걸 정부의 본격적인 증세 움직임으로 연결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학술대회가 정부 정책 방향을 엿볼 기회가 되는 경우가 있긴 합니다. 정부 관계자가 학술대회나 세미나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정부가 정책을 결정하기에 앞서 연구 용역을 준 연구소 등이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경우도 그렇습니다. 이럴 때는 발표 내용이 사실상 정부가 조만간 내놓을 정책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지난 2014년 12월 애연자 커뮤니티 아이러브스모킹 회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담뱃값 인상 저지를 위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하지만 이번 학술대회는 다릅니다. 정부 관계자가 참석하지도 않았습니다. 정부가 담뱃세 인상을 위해 연구 용역을 진행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담배소비세에 물가연동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발표한 이도 법무법인 율촌의 이강민 변호사였습니다. 이 변호사가 조세 분야의 전문가 중 한 명으로 여겨지긴 하지만 정부 정책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인물은 아닙니다.

이런데도 업계에서는 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걸까요. 한 가지 짐작되는 점은 있습니다. 바로 최근 정부가 액상형 전자담배 세금을 올리면서 보였던 모습입니다.  

정부는 지난달 2020년 세법 개정안을 발표했는데요. 개정안에는 액상형 전자담배에 붙는 세금을 현재의 두 배로 인상하는 방안이 담겼습니다. 그런데 이 인상안을 마련하면서 다소 잡음이 있었습니다. 정부가 개정안을 내놓기 전에 한국조세재정연구원과 한국지방세연구원이 개최한 토론회에서 액상형 전자담배 세율을 두 배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토론회는 정부가 액상형 전자담배 세율 조정을 위해 연구용역을 맡긴 담당자들이 개최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습니다. 실제 토론회에서 나온 주장대로 정부는 두 달 뒤 액상형 전자담배 세율을 두 배로 높이겠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토론회라고 해놓고 사실은 여론을 살펴보기 위해 미리 정책을 슬쩍 발표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토론회 이후 전자담배 관련 단체들은 격하게 반발했는데요. 세율 인상의 근거로 제시된 자료도 잘못된 데다가 업계와의 소통도 없었다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두 달 만에 세법개정안을 그대로 밀어붙였습니다.

지난 2015년 1월 초 서울에 위치한 한 대형마트의 담배진열대가 텅 비어 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결국 담배 업계에서는 이번 학술대회 역시 이런 움직임이 아닐까 하고 우려하는 겁니다. 학술대회를 통해 여론을 살펴보고, 큰 문제가 없으면 이후 단계적으로 담뱃세 인상 절차를 밟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겁니다. 

물론 이번에는 정부가 실제 연구용역을 의뢰한 단체가 개최한 행사가 아닌만큼 직접적인 연관성을 짚어내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액상형 전자담배 세율 인상 과정을 되돌아보면 업계의 우려도 이해는 됩니다.

이런 지적도 있습니다. 앞서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올해 상반기 액상형 전자담배의 유해성 분석 결과를 내놓겠다고 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식약처가 액상형 전자담배에 대한 세금 인상 방안을 의식해 발표를 미뤘다고 보고 있습니다. 액상형 전자담배의 유해성이 일반 담배보다 현저히 낮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을 경우, 세금 인상의 '명분'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 아니냐는 겁니다. 통상 담배에 과세를 하는 이유는 담배가 유해하다는 이유 때문입니다.관련 기사 ☞ 액상 전자담배 '세금 인상'…고민에 빠진 식약처

결국 정부가 액상형 전자담배 세금을 올리면서 보였던 모습이 업계의 '불신'을 조장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대한 '저항'은 정책 자체가 잘못됐을 때 나타나기도 하지만 정부에 대한 불신에서 초래되기도 합니다. 담뱃세 인상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업계와의 소통과 투명한 절차 등을 통해서 신뢰를 쌓아가면서 추진해야 합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요즘 증세 방안을 찾느라 골몰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담뱃세에 대한 업계의 우려 이면에는 정부에 대한 '불신'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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