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백질 보충제'라고 하면 헬스장에서 땀흘리며 근육을 키우는 사람들만 마시는 것으로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수입산 파우더를 텀블러에 넣고 물에 타 먹는 광경은 보통 사람들에겐 생소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단백질 음료를 마시지 않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더 어려울 정도다. 어느덧 4000억원짜리 시장이 된 단백질 보충제 시장은 젊은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과 노인 인구까지 모두 잡을 수 있는 유업계의 '치트키'로 자라났다. 그 중심에 서 있는 브랜드가 바로 일동후디스의 '하이뮨'과 매일유업의 '셀렉스'다.
태초에 '셀렉스'가 있었다
매일유업은 2000년대 들어 꾸준히 제품 카테고리를 확장해 왔다. 우유·분유 시장의 최대 고객인 어린이가 매년 눈에 띄게 줄고 있는 상황에서 신규 고객과 시장을 창출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에 꺼내든 카드가 바로 '노년층'을 공략할 수 있는 단백질 보충제였다. 파우더 타입의 단백질은 소화력이 떨어지고 씹는 힘이 약한 노년층에게 최적의 제품이 됐다.
3년여의 연구개발 끝에 내놓은 단백질 파우더 '셀렉스'는 2018년 10월 첫 선을 보인 후 이듬해 매출 250억원을 기록하며 '되는 시장'임을 증명했다. 2020년엔 단숨에 매출 규모를 두 배로 불렸다. 지난해에도 연매출 900억원을 기록하며 성장률 80%를 기록했다.
코로나19의 확산에 따른 건강 트렌드도 시장 성장을 북돋았다. '근손실'을 우려하는 건 젊은 '헬스남' 뿐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2019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7명은 칼슘 섭취량이 필요량을 밑돌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5060 여성의 경우 일일 권장량 대비 섭취량이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시장이 예상 밖으로 빠르게 성장하자 매일유업은 지난해 10월 셀렉스 사업부를 독립시켜 '매일헬스앤뉴트리션' 법인을 세웠다. 이를 통해 건강기능식 사업을 본격적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하 하 하이뮨이야
셀렉스가 성공 가도를 달리면서 남양유업, 일동후디스, hy, 빙그레 등 다른 유업계도 일제히 '단백질' 제품군 강화에 나섰다. 대부분 셀렉스와 비슷하게 노년층을 타깃으로 한 파우더·드링크 제품을 주력 제품으로 삼았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일동후디스의 하이뮨이다.
하이뮨의 성장세는 놀라웠다. 2020년 2월 론칭 후 첫 해 매출 300억원을 기록하더니 지난해엔 단숨에 1000억원 고지를 밟았다. 론칭 2년여 만에 매일유업 셀렉스를 누르고 시장 1위 브랜드로 뛰어오른 것이다. 올해 5월엔 누적 매출 2000억원을 돌파했다. 5월까지 700억원을 더 벌어들였다는 의미다. 연말까지 1500억원 돌파가 무난하다는 계산이다.
하이뮨의 1위 등극은 론칭부터 함께 하고 있는 브랜드 모델 장민호의 힘이 컸다. "하~하~하이뮨이야~"를 반복하는 장민호의 CF송이 주 고객층인 노년층에게 각인되면서 하이뮨은 자연스럽게 '장민호 단백질'로 이름을 알렸다. 일동후디스는 이달 중순 장민호와 전속 모델 재계약을 맺었다.
산양유단백질을 강조하며 기존 우유 단백질과의 차별화를 노린 것도 주효했다. 분유 시장에서 '프리미엄 분유'로 꼽히는 산양유를 단백질 보충제에 사용해 자연스럽게 프리미엄 제품임을 인지시켰다. 주 타깃인 노년층이 즐겨 보는 홈쇼핑 채널을 집중 공략한 것도 '신의 한 수'가 됐다.
단백질 보충제 시장 미래는
업계에 따르면 단백질 보충제 시장 규모는 2018년 890억원에서 2020년 2400억, 지난해 3400억원으로 커졌다. 올해엔 4000억대 시장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시장이 커지면서 타깃 소비자도 노년층에 머무르지 않고 다변화하고 있다. 매일유업 셀렉스는 라인업을 분말·음료·바·영양제 등으로 세분화한 것은 물론 연령층·성별에 따라 제품군을 나눴다. 뼈건강을 강조한 '셀렉스 골든밀크', 프로바이오틱스를 넣어 장건강을 강화한 '셀렉스 썬화이버' 등이다.
매일유업 관계자는 "셀렉스는 올해에도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며 "주력인 분말은 물론 젊은층 타깃의 음료, 스포츠 음료도 성장세"라고 말했다.
또다른 트렌드인 '비건'과 결합한 '비건 프로틴'도 앞으로 시장을 이끌어 갈 카테고리가 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실제 콩·아몬드 등을 이용한 식물성 단백질은 우유업계의 화두이기도 하다. 식물성 단백질 이슈 역시 '건강'과 결부돼 있는 만큼 단백질 보충제 시장에도 '비건' 바람이 불 것이란 예측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식물성 단백질 시장은 12조원 규모의 거대한 시장"이라며 "국내는 아직 수백억대의 작은 시장인 만큼 초기 기반을 잘 다지면 미래 성장동력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