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유통]은 한주간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있었던 주요 이슈들을 쉽고 재미있게 정리해 드리는 콘텐츠입니다. 뉴스 뒤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사건들과 미처 기사로 풀어내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여러분께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편집자]
줄 서세요 줄
지난 주말, 집 인근에 새로 생긴 샤브샤브 매장을 방문했습니다. 일정 금액을 내면 뷔페식으로 음식을 자유롭게 가져다 먹는 무한리필 샤브샤브였죠. 별 생각 없이 7시쯤 매장을 방문하곤 깜짝 놀랐습니다. 키오스크로 예약을 걸어 두고 근처에서 대기 중인 손님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매장이 생각보다 작아서인듯 했죠.
근처까지 갔으니 안 먹을 수도 없고, 일단 대기를 걸었습니다. 40분 정도 기다려야 하더군요. 길고 긴 기다림 끝에 매장에 들어섰는데, 200명 이상은 들어갈 법한 대형 매장이었습니다. 이렇게 큰 매장인데도 대기가 30분 이상 걸릴 정도로 인기가 많다니, 놀랐죠.
하긴,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집 근처에는 꽤 오래 다닌 무한리필 고기집 '명륜진사갈비'가 있습니다. 이전에는 무한리필 콘셉트가 아닌, 그냥 저렴한 돼지갈비 브랜드였는데 코로나19로 외식업계가 휘청일 즈음 무한리필로 콘셉트를 바꿔서 대성공을 거뒀죠.
대학교 인근인 영향도 있어서 이 매장은 늘 북적입니다. 주말 식사 시간에 방문하면 대기 없이 들어갈 수 있을 때가 거의 없죠. 무한리필 매장이 되기 전엔 이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최근 근처에 또다른 무한리필 고기집 '고기싸롱'도 오픈했습니다. 놀랍게도 두 곳 모두 북적입니다. 불황이 길어지면서 가격 부담이 적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무한리필 고기집, 일명 '고기뷔페'를 찾는 것이란 분석이 나옵니다.
불황형 외식
불황형 소비를 상징하는 외식업의 변화는 또 있습니다. 최근 수도권에서 급격히 세력을 불려가고 있는 '테바나카 전문점'입니다. 테바나카는 일본어로 닭날개 튀김을 의미하는데요. 저렴한 닭날개 튀김이 메인 안주인 술집입니다. 일본에서 나고야를 중심으로 한 '세카이노 야마짱'이 전국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생마차 등의 브랜드가 확장세죠.
테바나카 전문점의 특징은 '초저가'입니다. 닭날개 튀김 한 개에 990원, 생맥주 한 잔에 1900원 등 초저가 주점을 콘셉트로 잡고 있고요. 다른 요리 안주들도 대체로 1만원을 넘기지 않습니다. 취하도록 길게 마시기보다는 맥주 한 잔이 생각날 때 가볍게 1만~2만원으로 즐기고 1~2시간 안팎 즐기고 가는 주점입니다.
이랜드그룹의 뷔페 브랜드 애슐리 역시 불황을 타고 떠오른 브랜드입니다. 아웃백, 빕스 등과 함께 패밀리 레스토랑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애슐리는 패밀리 레스토랑의 몰락과 함께 사라지는 듯했죠. 한 때 140개가 넘었던 매장이 절반 이하로 줄었습니다.
그런데 외식 물가가 치솟고 불황이 길어지면서 애슐리는 반등합니다. 평일 점심 1만9900원, 주말 디너 2만5900원(성인 기준)인 가격이 '가성비'를 획득한 겁니다. 이에 50여개까지 줄었던 애슐리 매장은 올해 80개를 넘어설 전망입니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패밀리 레스토랑 체인 전문점 시장은 전년대비 성장률이 30%를 기록했습니다. 명륜진사갈비, 애슐리와 같은 합리적인 가격대를 내세운 뷔페형 외식 전문점이 성장을 이끌었다는 분석입니다.
짧은 유행가 아니다
물론 이런 현상을 모두 '불황'때문만으로 치부할 수는 없습니다. 다른 요인들도 있습니다. 예컨대 가족, 친구끼리 식사를 하러 가더라도 같은 메뉴를 먹는 게 아닌 각자 자기 입맛대로 음식을 고르는 문화는 다양한 고기를 골라 먹을 수 있는 고기뷔페에 딱 맞습니다. 만취하기보다는 가볍게 반주를 즐기는 음주 문화의 변화는 닭날개 한두 개에 생맥주 한 잔을 마시고 일어나도 눈치를 보지 않는 테바나카 전문점을 성장시킵니다.
일각에서는 이번 불황형 매장들의 인기도 짧은 유행에 그칠 것이란 우려를 내놓습니다. 지금 인기라고 매장을 거침없이 늘려가다가 트렌드가 다시 바뀔 수 있다는 겁니다. 앞서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확장일로를 걷다가 무너진 수많은 브랜드들의 예시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는 분석 또한 많습니다. 앞선 초저가·무한리필 트렌드가 '유행'이었다면 이번엔 시장의 한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최근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의 흥행으로 초고가 외식인 파인다이닝이 다시 살아나고 있음에도 여전히 초저가 트렌드가 유지되고 있다는 게 근거 중 하나입니다. 파인다이닝은 '유행'이지만 초저가는 시장의 한 축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유행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불황이 지나간 후에도 무한리필·초저가 음식점이 여전히 인기를 끌 것으로 보는 이유입니다.
모두가 동의하는 건, 당분간 무한리필의 인기는 식지 않을 거라는 점입니다. 국내 경기의 침체는 날로 심화되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이제 '성수기'라는 표현을 쓰는 것도 꺼립니다. 성수기도 비수기와 별반 다를 게 없어서입니다. 코로나19 때보다 지금이 더 어렵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립니다. 무한리필 고기뷔페 앞의 줄은 앞으로도 길게 이어질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