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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패딩은 진짜일까"…패션업계 강타한 '패딩 게이트'

  • 2025.01.08(수) 15:29

무신사·이랜드 패딩 연이어 적발
계약 전 검수 통과하면 무방비
"협력사와 신뢰관계 구축 중요"

그래픽=비즈워치

패션업계가 연초부터 논란에 휩싸였다. 국내 최대 패션 이커머스 플랫폼인 무신사, 스파오·미쏘·뉴발란스·후아유 등 다수의 패션 브랜드를 운영 중인 이랜드에서 잇따라 내부 충전재 함량을 속인 패딩이 발견됐다. 연매출 수조원을 올리는 기업들의 제품 관리 능력에 구멍이 났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패딩 게이트

지난주 무신사는 홍역을 치렀다. 무신사가 투자한 패션업체 '라퍼지스토어'의 패딩 점퍼의 충전재 비율이 엉터리로 적혀 있던 게 밝혀지면서다. 무신사에서 패딩을 구매한 한 소비자가 사비를 들여 한국의류시험연구원(KATRI)에 검사를 맡긴 결과 오리솜털 80%, 오리깃털 20%로 적힌 것과 달리 오리솜털 비율이 2.8%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오리 솜털은 깃털에 비해 가벼우면서도 보온성이 높다. 당연히 가격도 비싸다. 

무신사뿐만이 아니다. 이랜드월드가 운영하는 패션 브랜드 후아유의 패딩 제품에서도 거위 털 80%, 오리 털 20%로 표기된 제품이 실제로는 거위 털 30%, 오리 털 70%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거위털(구스다운)은 오리털(덕다운)보다 가볍고 밀도가 높아 털 엉킴이 적어 고급 패딩 충전재로 사용된다.

이랜드월드가 후아유 홈페이지에 올린 대표이사 명의의 사과문/사진=후아유 홈페이지

사건이 확산되자 무신사는 혼용률 허위광고 전수조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지난 3일부터 패딩과 코트류를 중심으로 소재 혼용률 상세정보 집중 조사에 착수했다. 또 비슷한 사고가 3번 적발될 시 '삼진아웃' 제도를 도입해 영구 퇴출하겠다고 밝혔다.

이랜드 역시 해당 패딩 제품을 전량 회수 후 폐기하고 구매자들에게는 100% 환불과 구매 금액만큼의 마일리지 적립을 약속했다. 또 향후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품질 관리 체계를 전면 개편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약속이 이뤄질 지는 미지수다. 국내 패션업계는 지난 2013년에도 한 차례 패딩 충전재 비율 논란에 휩싸였었다. 한국소비자원이 주요 10개 SPA 브랜드의 충전재 비율을 조사한 결과 자라·망고 등 해외 브랜드와 이랜드 브랜드인 미쏘의 솜털 함유율이 표기보다 낮았다. 10여 년 만에 비슷한 사건이 또 벌어진 셈이다. 

피해자인 줄

논란이 된 기업들의 태도도 문제다. 제조사가 신뢰관계를 무너뜨리고 판매를 한 것을 몰랐다는 것을 강조한다. 플랫폼의 품질 검수 시스템에 구멍이 뚫려 소비자에게 피해가 돌아간 상황이지만 입장문을 보면 피해자에 가까운 모양새다. 

무신사의 경우 해당 사건이 불거진 후 "고객 기만 브랜드를 뿌리뽑겠다"며 "업계 최초로 혼용률 허위광고 전수조사에 나선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배포했다. 입장문에는 '무신사가 악의적 허위 광고로 고객을 기만하는 브랜드를 뿌리뽑기 위해 대대적인 전수조사에 나선다'는 내용이 담겼다. 

입장문만 보면 무신사가 업계의 병폐를 해결하기 위해 팔을 걷고 나선 것처럼 보이지만 문제가 된 브랜드는 무신사가 직접 투자했던 곳이다. 더군다나 해당 브랜드는 이미 이전에도 워크 재킷에 쓰인 지퍼를 YKK지퍼인 것처럼 위조해 사용한 것이 적발된 바 있다. 비슷한 이유로 적발된 후아유, 디미트리블랙 등도 첫 번째 적발이라는 이유로 지난 5일 판매 금지라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 

무신사가 뉴스룸을 통해 밝힌 입장문/사진=무신사 뉴스룸

업계 관계자는 "이번 패딩 사태는 단순한 오기재 문제나 공정상의 문제가 아닌 의도적으로 소비자를 속인 행위"라며 "소비자들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선 강력한 제재와 사후 대응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3일 대표이사 명의로 사과문을 올린 이랜드월드의 대응은 그나마 나았다. 이랜드월드는 "해외 현지 파트너사의 품질 보증만을 신뢰하고 자체적인 검증 절차를 소홀히 한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었다"고 밝혔다. 입점 후 판매되는 상품의 검사를 진행하지 않은 부분을 드러내고 이후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환불 조치와 함께 구매 금액만큼의 적립금을 지급하기로 한 결정도 대기업에 걸맞는 사후대응이라는 평가다.

일각에서는 이를 계기로 패션업계에 체계적인 제품 검수 시스템이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업계에서는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무작위 검수를 진행하더라도 어느 정도로 조사를 해야 하는지, 기망과 실수의 기준을 어떻게 둘 것인지 등을 결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이 때문에 꼼꼼한 사전 검수와 협력사·제조사 관리·소비자 반응 대응에 인력을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일부 제품의 샘플링을 진행한다 해도 그게 판매된 제품의 품질을 보증하는 건 아니다"라면서 "가장 중요한 건 협력사와의 신뢰관계를 구축해 법과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 제품을 생산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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