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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금융을 역사 속에 묻는 게임은 시작됐다

  • 2013.06.26(수) 16:41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정부가 강제로 합병시킨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의 새 이름 한빛은행. 회사명 분쟁을 일으키며 다시 태어난 우리은행과 우리금융그룹. 공적자금을 받고 강제 합병으로 거대 몸집을 자랑해온 우리금융지주. 상업·한일은행을 비롯해 평화·광주·경남은행과 LG투자증권, IMF를 계기로 무너진 종합금융사들을 한데 묶은 하나로종금까지 족히 10여 개의 금융회사를 묶어 놓은 우리금융그룹을 역사 속에 묻는 게임이 시작됐다.

2013년 6월 26일, 1999년 1월 한빛은행 출범 14년 5개월 만에 신제윤 금융위원장의 게임 시작을 알리는 휘슬은 그렇게 울렸다. 액면으로 무려 12조 7663억 원이 들었다. 그동안 정부가 회수한 금액은 5조 7497억 원, 회수율 45%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10년 하고도 5년 가까이 투자한 금액임을 생각하면 회수율 100%는 분명히 성에 차지 않을 거다. 국민의 세금이 들어간 만큼 신 위원장으로서는 국민과의 이런저런 인식 차이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신 위원장이 최근 우리금융지주 매각의 제1 원칙은 ‘가격’이라고 한 말도 같은 맥락이다.

◇ “줄을 서시오~” 이니셔티브 쥔 정부

이를 위해 정부는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시장 친화적인 게임 룰을 제시했다. 팔 수 있는 것부터, 시장에서 사고 싶다는 것부터 차례로 나눠 파는 방법을 제시했다. 가장 매력적인 우리투자증권과 증권 계열사를 먼저 팔고, 광주·경남은행 등 지방은행, 가장 골칫거리인 우리은행을 나눠 팔겠다는 것이다. 한데 묶어 높은 권리금(프리미엄)을 요구할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론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 시장 원리대로 하기로 했다. 한마디로 ‘줄을 서시오~’라는 평가다. 그동안 매각 자문을 해온 회사들이 이런 정부 안에 반발하며 각자 전략적으로 어떤 딜을 주관할 것인지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점도 정부의 휘슬이 갖는 권위다.

최근 양적완화 엑시트(Exit) 스케줄이 나와 전 세계가 유동성을 걱정하는 분위기가 있지만, 자금을 공유하며 전략적 파트너를 찾는 작업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 의지에 따라 어떤 기업과 금융회사도 골을 넣을 기회를 맞고 있다는 분석이다. 인수 희망자가 늘어나면 정부로서는 콧바람을 불 수 있다. 분위기로 본다면 시장의 최대 관심은 우리투자증권에 집중돼 있다. 정부가 만약 이 딜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최대의 실적(높은 가격에 파는 것)을 낸다면, 내년 말까지 우리은행을 파는 것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정부가 회수율에 부담을 덜 느낄수록 실제로는 더 높은 가격을 받아 회수율을 기대할 수도 있다.

이번 게임에서도 첫 골이 중요한 이유다. 다행히도 우리투자증권에 군침을 흘리는 곳은 많다. KB금융을 비롯해 교보생명, 농협 등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해당 회사들은 관심을 숨기지 않고 있다. 단숨에 증권업계에서 1위를 차지할 수 있다는 우리투자증권이 가진 치명적인 매력 때문이다. 대형은행들이 중복 점포와 구조조정에 따른 직원들의 반발 때문에 우리은행에 부담을 느끼는 것은 상대적으로 우리투자증권의 값을 올리는 요인이 될 것이다.

◇ 지방은행과 우리은행은 걸림돌도 많아

광주·경남은행 매각도 그리 큰 난제는 없어 보인다. 이미 광주는 JB금융지주(전북은행)이, 경남은 BS금융지주(부산은행)와 DGB금융지주(대구은행)이 공공연히 관심을 표시하고 있다. 굳이 걸림돌이라면 지방은행이라는 특수성에서 오는 지역 정서 문제가 정치권에 어떻게 투영될지 정도다. 광주와 경남 출신 정치인들이 정역 정서를 고려해 목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지방은행 매각 문제는 미궁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이런 방식의 매각 스케줄이라면 역시 제일 골칫거리는 우리은행이다. 우리은행의 주인을 찾는데 가장 큰 목소리를 내고 있는 노조는 차치하더라도, 앞의 우리투자증권과 지방은행 매각이 잘 되면 잘 되는대로, 안 되면 안 되는대로 우리은행 매각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국면이다. 노조는 이미 주인 찾기가 아닌 독자생존을 외치고 있다.

앞선 스케줄이 잘 풀리면 우리은행의 헐값 매각 논란이, 일이 꼬이면 노조의 목소리는 커지면서 정부의 부담도 늘어 공자자금 회수라는 목표 자체가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실제로는 많은 우리은행 직원과 심지어 정부 일각에서도 내심으로는 이를 반길지 모른다. 일부에선 우리은행의 사모펀드 매각설이 벌써 흘러나오고 있다. KB금융의 우리은행 인수 불참설과 관련된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공적자금 우리은행’이라는 14년이 넘은 주홍글씨를 떼어주는 것이 우리나라의 금융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데 이견은 거의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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