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①모른척하고 싶은 이면, 경쟁력 상실

  • 2014.07.14(월) 15:39

21세기 대한민국 관피아 탐구

공무원들이 세월호 참사로 직격탄을 맞았다. 관피아 논란을 피한 부처가 없다. 소위 문민정부가 들어선 뒤로 모든 정부가 관치 개혁을 기치로 내걸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쪽은 항상 공무원이었다. 관치•관피아 논란이 여전한 이유다. 마침 인터넷 매체 슬로우뉴스에서 관피아 논란과 관련한 의미 있는 글(자작나무의 관피아를 위한 변명)을 소개했다. 쟁점의 장•단점을 비교하면서 기존 관피아 관련 기사에선 없었던 시각을 보여 흥미롭다. 이에 관피아 논쟁에 참여하면서 몇 가지 다른 의견을 제시해보고자 한다.[편집자]

관치•관피아 문제는 주로 금융•경제 부문에서 화제였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전 관료사회의 문제로 떠올랐다. 전혀 새롭지 않은 이 문제가 큰 반향을 일으킨 건 ‘생명을 담보로 한 부실’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부 출범 1년여 만에 부처 하나를 날렸다. 그만큼 충격이 컸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아쉬움은 여전하다. 많은 언론도 오래된 이 문제와 관련해 편가르기식 보도에 머물렀던 것을 부인하긴 어렵다. 슬로우뉴스 필명 자작나무의 문제 제기다. 자작나무는 “틀어막으려는 논의만 할 뿐 근본원인을 진단하는 노력은 미흡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적었다. ‘관피아’를 위한 변명 (상): 철밥통이 잘못인가(하): 공직 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

이 글에서 제기한 공무원 조직의 계급제 특성, 이해 충돌이란 관점의 접근(한국방송통신대학 윤태범 교수) 등과 관련해 대체로 공감한다. 이를 근거로 민간부문에서 정년 보장 등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집단 간 이해 충돌이 관피아 문제를 푸는데 장애가 된다는 지적도 중요하다. 결국, 철밥통 담론이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은 ‘자해공갈’ 성격을 띠고 있다는 지적에도 고개가 끄떡여진다.

다만, 이 문제를 진전시키기 위해선 좀 더 냉철한 현실 진단이 필요할 듯하다. 공무원의 정년 보장과 적절한 신분보장의 역사적 맥락을 부인하려는 것이 아니다. 공무원의 헌법적 지위가 그렇지 않다는 얘기는 더더욱 아니다. 분명히 그렇다. 그러나 좋든 싫든 현실과의 괴리도 있다.

◊ 공무원 조직의 현실 괴리

이 괴리가 문제이니 역사적 맥락과 헌법적 지위에 충실하자고 할 생각은 없다. 현재 시점에서 그것은 또 다른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중•장기적으로 민간의 정년 연장이나 보장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은 당위이지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는 것이 문제다. 근대 관료제에서 출발한 직업 공무원제도의 역사적 맥락과 헌법적 지위가 그렇더라도 현실적인 괴리가 왜 생겼는지를 따지는 게 먼저다.

자작나무는 ‘철밥통 담론 역시 국가 역할을 부정하는 신자유주의 논리를 유포하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이것은 그저 ‘효율’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 효율이 큰 틀에서 신자유주의의 범주인지는 모르겠으나, 공무원 조직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자작나무가 지적했듯이 많은 공무원이 꽤 많은 일은 한다. 저녁이 없는 삶을 사는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그렇다. 그러나 한편에선 보직 없이 여기저기 떠도는 인공위원 공무원도 많다. 저녁도 없이 일하는 공무원과 보직이 없는 공무원이 공존하는 이유는 무얼까? 그동안 권력을 잡으려는 정권들은 모두 ‘작은 정부’를 외쳤다. 국민이 모두 허리띠를 졸라매는 상황에서 정부가 흥청망청 조직을 늘리기도 어렵다.


이 ‘작은 정부’도 자작나무가 지적한 공무원의 신분보장만큼 역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작은 정부는 분명히 효율을 중시한다. 자작나무의 지적대로 모든 인공위성 공무원들에게 보직을 나눠 맡기고 민간의 정년 연장(보장)도 하면 금상첨화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최소한 지금은 꿈이다. 이뤄질 수 없는 꿈. 노•사•정 대 합의는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난제다.

공무원 신분보장의 헌법적 가치를 모르는 것은 아니나, 역설적이게도 역대 정권에서 어느 시대의 공무원 조직이 정치 중립적이었나를 되묻고 싶다. 정치적 중립(?)을 지키며 묵묵히 일하는 개개의 공무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조직으로서의 공무원은 국민의 직접 투표로 당선된 대통령이 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현대 정치 시스템으론 이를 입법부와 사법부가 견제한다.

◊ 官의 시대, 民의 시대

우리나라에서 보면 개발경제시대엔 (권력과 함께) 정부와 공무원들이 금융자본을 분배하는 방식으로 경제의 효율성을 추구했다. 그래서 관(官)에 의한 경제였다. 이 과정에서 금융산업은 길들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대신 고도성장을 이뤘다. 그런데 이후 공무원 조직은 민간 조직보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시장 친화, 규제 완화’라는 단어를 보자. 경제 성장의 주도권, 즉 주체세력이 넘어갔다는 방증이다. 공무원이 아니라 민간이 주도하다 보니, 정부가 나서 민간에 “투자 좀 해주세요, 돈 좀 써 주세요” 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다른 말로 써보면 시간이 흐르는 동안 ‘공무원 조직엔 군살이 끼었고, 민간은 효율성을 높여 성장했다’는 말이 아닐까 싶다.

“저 친구는 고시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친구 중에 제일 똑똑하다고 인정받았는데, 20여 년이 흐른 지금은 다른 친구들에 비해 어떤 경쟁력이 있는지 모르겠다.” 한 고위 공무원과 고등학교 대학교 동기 동창인 한 은행 임원의 말이다. 그는 “우리나라 학생들이 고등학교 때까진 국제 경시대회에서도 잘한다고 난리인데, 대학만 들어가면 뒤처지는 것과 비슷한 것이 공무원 사회에 있다”고 말한다.

그것이 개인의 게으름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어쨌든 공무원 조직이 민간보다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얘기다. 하지만 자작나무가 지적한 대로 여러 이유로 이전에 만들어진 보상체계는 유지한다. 더욱이 인생 2막도 안정적이고 충분하다면 그것만큼 따봉이 있을까?

직업 공무원이 수년째 대학생들이 선호하는 직업의 상위를 차지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솔직히 시집•장가 잘 가고, 잘릴 일 없고, 연금 받아 노후까지 해결하고, 나중에 산하기관으로 잘 빠져 목돈까지 챙길 수 있는 직업을 마다하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은가? 현대 사회에서 직업 공무원에게 막스 베버 시대의 국가관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는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
naver daum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