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호 국민은행장이 잇단 돌출행동과 무리수로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의 제재 후 근신하면서 조직을 추슬러야 할 최고경영자가 되레 갈등과 혼란을 더 부추기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면서 KB금융 사태를 둘러싼 분위기도 급반전하고 있다. KB금융 스스로 내부 갈등을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 분명히 드러나면서 이건호 국민은행장은 물론 임영록 KB금융 회장에 대한 사퇴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금감원의 중징계 조치에도 다시 힘이 실리고 있다. 최수현 금감원장은 임 회장과 이 행장에 대한 제재 수위를 중징계에서 경징계로 낮춘 제재심의위원회의 결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어 어떤 선택을 할 지 주목된다.
◇ 이건호 행장, 검찰고발 등 잇단 무리수
이건호 행장은 지난 26일 KB금융지주 전산담당 임원 등 3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KB금융지주는 물론 본인들에겐 일언반구도 없었다. 그리곤 훌쩍 해외출장 길에 올랐다. 금감원의 제재 수위가 아직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금감원에 이어 검찰까지 끌어들여 내부 분란에 다시 기름을 부은 셈이다.
그러자 이 행장이 최고경영자로서 기본 자질이 떨어지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내부 분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이유로 징계를 받고서도, 여전히 조직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이 스스로 부여한 정당성에 집착해 계속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얘기다.
사실 주전산기 교체 논란이 시작될 때부터 리더십 논란이 불거졌다. 김재열 KB금융 전무가 주전산기 교체를 추진하면서 무리수를 둔 정황은 여러 곳에서 드러난다. 반면 이 행장 역시 이 과정에서 대화와 설득의 리더십을 발휘하긴보단 감정적인 대응으로 일관했다.
제재심의 징계가 의결된 후 이뤄진 KB금융 경영진의 백련사 회동에서 임 회장에게만 독방을 배정했다는 이유로 언쟁을 벌이고, 또 일정 도중에 혼자 귀경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된다는 평가도 나온다.
어윤대 전 KB금융 회장이 중국 베이징에서 사외이사들에게 술잔을 집어던진 '베이징 스캔들'에 이어 '백련사 스캔들'로 불릴 판이다.
◇ KB금융 사태 둘러싼 분위기도 급반전
이건호 행장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KB금융 사태를 둘러싼 여론도 급반전하고 있다. 지금까진 주로 금감원이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무리하게 중징계를 추진하려다가 헛발질을 하면서 KB금융의 경영 공백만 초래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하지만 이 행장의 잇따른 무리수로 KB금융이 다시 분란에 휘말리자 오히려 금감원을 두둔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금감원의 애초 안대로 중징계를 내려야 한다는 얘기다. 우선 금융노조가 내달 총파업을 앞두고 두 사람의 동반퇴진을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 26일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금융노조와 만난 자리에서 임 회장과 이 행장에 대한 사퇴 문제가 나오자 “아직 끝나지 않은 사안인 만큼 지켜봐 달라”고 밝혀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도 솜방망이 제재를 질타하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그러면서 최수현 금감원장의 선택이 주목받고 있다. 최 원장은 현재 제재심의 제재 수위가 타당했는지 여부에 대한 법률 검토를 진행 중이다. 그동안 제재심의 결정을 뒤집은 사례는 없었지만, 최근 분위기를 보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거부권 대신 재심을 요청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건호 행장의 최근 행보는 솔직히 잘 이해가 안된다”면서 “최고경영자 자리에 올랐으면서도 아직 학자 스타일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