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호 국민은행장이 마지막 배수진을 쳤다.
최근 KB금융 내부 갈등에 재차 기름을 부었다는 비판과 함께 사퇴 여론이 거세자 자신의 거취 카드로 정면돌파를 시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과정에서 임영록 KB금융 회장과의 주도권 다툼도 사실상 인정했다.
이제 공은 국민은행 이사회로 넘어갔다. 다만 이사회가 이 행장과 대립관계에 있긴 하지만 은행장 경질을 위해선 충분한 명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결국 주전산기 교체 논란에 대한 검찰 고발 결과가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 이건호 행장, 거취는 이사회 판단에
이건호 국민은행장은 1일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해 “자신의 거취를 이사회의 판단에 맡기겠다”고 밝혔다. 이 행장은 “주전산기 교체 과정에서 생긴 잡음에 대해 사과한다”면서 “이사회에서 조직에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하고 물러나라고 하면 받아들이는 것이 제 의무”라고 밝혔다.
이 행장이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면서 자신의 거취문제를 이사회로 넘기긴 했지만 자진 사퇴 의사를 밝힌 건 아니라는 관측이다. 우선 미얀마 출장에서 돌아온 지난 일요일까지만 해도 자진 사퇴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이날도 “조직을 이끄는 수장으로서 사퇴를 거론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그래서 오히려 자신과 대립관계에 있는 이사회에 거취를 일임하면서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우선 최근 비판 여론에 대한 맞대응으로 볼 수 있다. 이 행장은 최근 ‘템플스테이 스캔들’과 주전산기 교체 임직원에 대한 검찰 고발 건이 맞물리면서 내부 갈등에 다시 기름을 부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면서 자진 사퇴 여론이 거셌다. 검찰 고발 후 출장을 갔다가 지난 주말 귀국해보니 자신을 둘러싼 여론이 급격하게 나빠져 있는 걸 보고 뭔가 행동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했다는 해석이다. 금감원이 최종 징계 결정을 미루면서 이 행장을 압박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 임영록 회장과 주도권 싸움 인정
실제로 이 행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자신의 결정은 잘못되지 않았으며,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검찰 고발은 조직 기강과 진실규명 차원이었다는 얘기다.
이 행장은 “만약 주전산기에 문제가 생겨 시스템이 마비되면 은행의 존망이 걸리게 된다”면서 “은행장으로서 문제점을 알고도 도저히 넘어갈 수 없었다”고 밝혔다. 또 “은행장으로서 의사결정 과정에서 왜곡이 있었고, 범죄 혐의가 있다면 규명하는 게 당연하다”고도 말했다.
이 과정에서 임 회장과의 주도권 싸움도 인정했다. 이 행장은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에서 임 회장이 지난해 말 국민은행 IT본부장 교체를 주도했으며, 주전산기 교체 과정에도 개입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고 소개했다.
실제로 두 사람은 이미 지난해 말부터 사이가 틀어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 임 회장이 이 행장의 의견을 무시하고, 국민은행 IT본부장 교체를 밀어붙이면서 주도권 싸움이 시작됐다는 얘기다. 주전산기 교체 논란 역시 같은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 국민은행 이사회의 선택은
이 행장이 거취문제를 떠넘기면서 이제 국민은행 이사회의 선택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부에선 이 행장과 이사회가 주전산기 교체 과정에서 첨예하게 대립했다는 점에서 당장 이 행장을 경질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국민은행 이사회 역시 은행장 경질을 위해선 충분한 명분을 갖춰야 한다는 점에서 무작정 경질 카드를 꺼내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많다. 그렇다면 결국 검찰로 넘어간 주전산기 교체 논란이 결국 중요한 잣대가 될 전망이다.
만약 검찰 수사에서 뚜렷한 범법행위가 드러나지 않는다면 이 행장은 당연히 경질 수순을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반대의 경우엔 오히려 주전산기 교체를 주도한 임 회장이 역공을 당할 수 있다.
결론은 단정하기 어렵다. 국민은행이 교체를 추진했던 유닉스 환경은 기존 메인프레임보다 다양성과 확장성은 뛰어나지만, 안정성은 떨어진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따라서 이 사실을 이사회에 보고하는 과정에서 단순히 불리한 내용을 빠뜨린 것인지, 아니면 사실관계 조작이나 비리 등 범법행위가 있었는지가 쟁점이 될 것 전망이다.
이건호 행장은 “진실을 알면서도 (주전산기 교체 건이 이사회에 보고되는 과정에서) 왜곡되는 걸 방조한 분이 있다면 수사 과정에서 나올 것”이라면서 사실상 임 회장을 겨냥해 결국 검찰 고발 결과가 승부처가 될 것임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