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양적완화 정책으로 불리는 '환매조건부채권(RP) 무제한 매입'이 한국은행 최고의결기구인 금융통화위원회 의결없이 시행된 것으로 확인됐다.
금융시장을 진정시키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해석과 한은 총재에게 지나치게 많은 권한을 줬다는 의견이 동시에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한은이 14일 공개한 '2020년도 제7차 금통위 의사록'을 보면 지난달 26일 금통위는 RP매매 대상기관에 증권회사 11곳을 추가하고 대상증권을 8개 공공기관 특수채로 확대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한은 역사상 처음으로 도입한 '전액공급방식의 유동성 지원제도'는 안건에 포함되지 않았다. 한은이 RP매입을 통해 3개월간 금융기관에 무제한으로 유동성을 공급하는 이른바 '한국판 양적완화' 정책이 금통위 의결 없이 시행된 것이다.
총대는 이주열 한은 총재가 멨다.
한은 관계자는 "기준금리 결정이나 통화정책 체계를 바꾸는 것이면 금통위 의결이 필요하지만 RP매매와 관련한 세부사항은 총재가 정한다"면서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금통위들에게 사전 보고를 했고 금통위원들도 동의해 무제한 공급이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의 공개시장조작규정을 보면 RP매매와 통화안정증권 발행 등 일상적 유동성 조절은 한은 총재에게 위임하고 있다.
위임범위는 ▲금융기관의 지급준비금 적정수준 유지 ▲스왑거래로 발생하는 원화자금 흡수 ▲금통위가 정한 통화 및 금리목표 유지 등 세가지 목적으로 국한했다.
따라서 이번처럼 돈을 찍어 무제한 유동성을 공급하는 조치를 일상적 조절로 볼 수 있을지 논란이 생길 전망이다. 금통위원들은 의사록에 어떤 말도 남기지 않았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본원통화를 무제한 공급하는 조치를 총재가 금통위 의결 없이 단독으로 결정하는 전례를 남긴 것 자체가 적절했는지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차현진 한은 인재개발원 교수는 "RP매입 후 3개월 뒤 재매각하는 조건으로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이라 일상적 유동성 조절의 범주로 봐야한다"며 "해외에서도 RP매입을 통한 유동성 공급은 총재 결정으로 이뤄진다"고 말했다.
한편 한은은 지난 2일부터 이날까지 3차에 걸쳐 11조8800억원어치의 RP 매입을 진행했다. 14일에 실시한 91일물 RP 매입에는 3조1700억원이 응찰해 전액 낙찰됐다. 1차와 2차에서는 각각 5조2500억원과 3조4600억원을 공급했다.